영화와 샷
21세기는 영상의 시대다.
하루에도 세계에서 엄청난 양의 영상(영화)들이 만들어 지고 있다.
영상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들은 어떻게 영화를 받아들이고, 어떤 방식으로 영상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지, 좋은 영상은 무엇이고, 영화 콘텐츠가 풍부한 영화는 어떤 영화를 말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된 내용은 샷(Shot)의 기본적 이론이다.
수많은 영상(영화) 자료들이 쏟아져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샷(Shot)의 이론이 전무한 상태다. 현재 샷(Shot)의 이론은 인상비평수준의 이론에 머물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필자는 현장에서 40년 동안 샷(Shot)에 대해서 고민하고 논문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논문의 주요 내용은 샷(Shot)에서 심리적(心理的) 요인이 발생한다는 기본적인 이론이다. 영화의 태동이 프랑스라면, 샷(Shot)의 이론적 원형은 일본 헤이안(平安)시대의 두루마리 그림이다. 두루마리 그림에서 샷의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이론으로 영화를 만든 대표적 일본 영화감독으로는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나루세 미키오 감독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회화의 삼원법(三遠法)과 삼경법(三境法)을 카메라 워킹에 인용해 영화를 만들었다. 로우 앵글(Low angle)과 픽스 샷(Fix Shot), 사이드 앵글(Side angle), 피사계 심도 기법, 크레인 샷(Crane shot), 달리 샷(Dolly shot) 등이 구현됐다.
컷(Cut)은 영화의 최소 단위이며, 샷(Shot)은 화면의 종류나 구도상의 용어라 할 수 있다. 샷(Shot)의 특성에 따라 영화의 심리 상태가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크게 두 가지 특성으로 나타나는데 객관적 심리를 표출해 주는 롱 샷(Long Shot: 롱 샷은 템포가 느리고 완만하면서 심리적으로 편안한 감정을 나타낸다)과 주관적 심리의 클로즈 업(Close up: 클로즈 업은 템포가 빠른데다 주관적 사고를 유발해 심리적인 불안감을 화면에 표출한다)이다.
이런 기법을 사용한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나루세 미키오, 빅토르 에리세, 벨라 타르 감독의 작품들이 어떤 특징으로 화면에 나타나는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일본 헤이안(平安) 시대의 두루마리 그림을 원형으로 삼고자 했던 세 감독과 스페인 출신 감독 빅토르 에리세(Victor Erice)의 작품들을 통해 실증적으로 샷이 어떻게 심리적 표현기법으로 작용하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샷의 기본을 등외시한 영상이론은 설계도 없이 건축한 건물과도 같다. 시대에 따라서 샷의 특성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그것은 당대의 문화나 사회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샷은 그 시대의 거울과 같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전 시기에 샷의 사이즈나 템포가 크고 느리게 나타났다면, 현대 영상에서는 샷의 크기 면에서 변화가 많으며 영화적 템포가 빠르게 나타난다. 만약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현대에 와서 영화를 만들었다면 전혀 다른 영화가 나왔을 것이다.
나는 영화를 처음 접하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영화에서도 기본이 없는 명작은 없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은 영상 미학은 겉만 화려한 그림의 나열에 지나지 않다. 즉, 거짓된 영상일 뿐이다. 혼(魂)이 없는 영상은 단순한 그림의 연속적 편집만이 있을 뿐이다.
왜 롱 테이크(Long take)기법이 필요한가? 에리세 감독에게 물어보았고,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로우 앵글(Low angle)과 픽스 샷(Fix shot),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크레인 샷(Crane Shot),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달리 샷(Dolly shot)기법들은 영화의 형식을 더욱더 진보시킬 수 있었다. 더 큰 바람으로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은 감독들이 나오기를 고대한다. 영화의 뛰어난 콘텐츠와 무한한 상상력은 영상 미학 특히 샷(Shot)의 형식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도움을 준 최광호 사진작가, 나의 인생과 영화의 멘토이신 박평식 영화평론가님,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김학순 교수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 우명은, 동예지, 동예원에게 이 책을 바친다. 끝으로 나의 원고를 정성스레 책이라는 그릇에 담아 준 ㈜컬처플러스 강민철 대표와 편집진, 디자이너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벨라 타르(Bela Tarr, 헝가리), 알렉산드로 소쿠로프(Aleksandr Sokurov, 러시아), 파벨 포리코브스키(Pawel Pawlikowski, 폴란드) 같은 영화 작가들을 능가하는 영화감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부족하나마 이 책이 우리나라 동량들이 그러한 꿈을 이루는데 작지만 유용한 도구로 쓰임새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영화감독들이 많이 탄생하기를 기대하면서….
2017년 늦여름
동중우 호원 영상 연구소에서
동 중 우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