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 강도들이 우글거리는 우범 지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
다가 강도를 만나매”(눅 10:30).
‘예루살렘’과 ‘여리고’ 하면 현대의 성경 독자들에게도 무척이나 익숙하고 친근한 도시지만, 실제로 이 두 도시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두 도시 간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이 길이 당시 무엇으로 악명 높았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마치 미국 사람이 한국의 소설을 읽으며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다가’라는 구절을 읽을 때 받는 느낌과 비슷하다.
당시 청중들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로 시작하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하고 오금이 저리며 식은땀이 흘렀을 것이다. 그것은 예루살렘과 여리고를 잇는 이 길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강도들이 우글거리는 우범 지역’으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이다.
주전 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기 위해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했는데, 그는 본격적인 출정에 앞서 선발대를 보내 도로 주변에 있는 강도들의 소굴을 먼저 소탕해야 했다.
주후 11세기 이후 2세기 동안 유럽의 십자군들이 이스라엘을 통치할 때도 예루살렘과 여리고를 잇는 길은 순례객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강도들의 온상이었다. 궁여지책으로 십자군 왕국은 이 도로의 중간 지점에 요새를 만들었고, 이로써 강도로부터 순례자들을 보호하고 안전한 여행을 도울 수 있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서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로 시작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게 각색해 보면 아마도 이러지 않을까 싶다.
“어떤 사람이 뉴욕 맨해튼의 할렘 가 뒷골목을 걸어가다가….”
해발 600~800m에 위치한 예루살렘에서 해발 ?250m에 위치한 여리고로 가는 길은 1km의 고도차를 현기증 나게 느끼며 가파르게 내려가야 하는 27km의 길이다. 이 정도의 거리는 당시로서는 나귀를 타거나 걸어서 갈 수 있는 하룻길에 해당한다. 지금은 차를 타고 3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급격한 고도차로 인해 웬만한 사람들은 비행기의 이착륙 시에나 느끼는 귀가 멍멍해지는 현상을 체험한다. --- pp.106-107
강도 만난 무명의 여행객은 유대인일까, 이방인일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등장하는 첫 번째 인물은 한마디로 무명의 여행객이다. 스토리텔러이신 예수님은 그 사람의 이름도, 직업도, 그 어떤 것도 밝히지 않고 있다. 여행이 목적인지, 사업이 목적인지, 아니면 제사장과 레위인들처럼 종교적인 목적인지 우리는 아무도 이 무명의 여행객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여행객에 대한 다양한 궁금증은 잠시 뒤로하고, 일단 우리는 최소한 그가 유대인인지, 아니면 이방인인지부터 가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많은 비유 해석가들은 이 여행객이 유대인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토리의 전개상 당연히 유대인일 것이고 굳이 유대인임을 밝힐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객석에 무심하게 앉아 있는 유대인 청중들을 무대 위로 끌어올리는 비유의 수사학적 기법을 고려해도 이 여행객이 유대인일 때 더욱 설득력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이 여행객이 강도를 만나 완전히 나체로 발가벗겨진 채 버려졌기 때문에 ‘할례 자국’이 보였을 것이라는, 약간은 지나치다 싶은 해석을 덧붙이기도 한다.
비록 소수 의견이긴 하지만, 이 여행객의 신원과 정체를 밝히지 않은 것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이 가르치고자 하신 교훈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일종의 연막 작전이라는 주장도 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내가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할 이웃의 한계를 제한하지 않으셨다. 내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민족, 인종, 종교, 성별 등 그 무엇도 가리지 않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초월적인 사랑과 인류애를 가르치기 위해 이 사람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이 맞다면 이 여행객이 유대인인지 아니면 이방인인지를 밝히는 일은 무익한 논쟁일 수 있다. --- pp.116-117
사마리아인의 유래
역사적으로 본다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정체성은 아래와 같은 변천 과정을 거치며 형성되었다.
통일 왕국시대: 이스라엘인
이때에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구분이 없었다. 우리나라도 남한과 북한이 나뉘기 전에는 한국인(또는 조선인)으로 불렸던 것과 같다.
분열 왕국시대: 북왕국은 북이스라엘인, 남왕국은 남유다인
이스라엘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왕국이 분열되면서 변화가 뒤따랐다. 북왕국은 ‘북이스라엘인’, 남왕국은 ‘남유다인’으로 불린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에서도 남북이 나뉜 후 남한 사람, 북한 사람으로 불린 것과 같다.
남북 왕국 멸망과 포로기 이후: 북왕국은 사마리아인, 남왕국은 유대인
남북 분열기가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민족의 동질성은 점차 희석되었다. 동질성을 잃어버린 하나의 민족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서로를 향해 경멸과 무시를 표출하게 된다. 이런 적대감이 표출된 것이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이란 호칭이다. 결국 유대인들의 경멸적인 뉘앙스가 숨겨진 ‘사마리아인’이라는 호칭은 가치 중립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북이스라엘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다. 물론 이들 중 상당수가 북이스라엘 토착민과 앗수르 이주자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긴 하지만 말이다. --- pp.143-144
다이너마이트 같은 폭발력을 지닌 인물 등장
예수님은 청중들과 율법사의 기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전혀 의외의 인물을 드라마 3부, 즉 최종회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바로 유대인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사마리아인이다. 이로써 예수님은 사두개파, 바리새파, 더 나아가 다수의 평민들, 즉 동시대 이스라엘 사회의 구성원 모두를 자신의 적으로 돌려세우고 말았다. 이것은 웬만한 담대함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다수의 반제사장파와 소수의 친제사장파로 나뉘던 청중들도 공동의 적인 사마리아인의 등장으로 인해 서로 의기투합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성직자 그룹의 저항은 노골적인 반란으로 바뀌고 거기에 평민들도 합세한다. 그만큼 최종회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사마리아인의 출현은 놀라운 파급력을 발휘한 것이다.
사마리아인의 등장은 율법사를 비롯해 다수의 청중들을 비유의 스토리 속으로 더욱 빨려들게 만드는 강력한 촉매제가 되었을 것이다. 과연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나 거의 죽게 된 여행객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사마리아 지방에서 뭐 선한 게 나오겠어? 저 재수 없는 사마리아인도 별 수 없는 속물이겠지!’
청중들은 저마다 속으로 사마리아인을 무시하며 그에게서 별반 선한 행동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일본인에 대해 느끼는 민족 감정을 훨씬 능가하는, 당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에 대해 느끼던 민족 감정을 이해할 때 우리의 이런 예상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예수님의 비유는 사마리아인의 등장과 그가 보인 일련의 믿기지 않는 행동들을 통해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심지어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 pp.183-184
사마리아인은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는 상황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여행객에게 보인 선행에는 자신이 속한 종파의 교리적 한계를 뛰어넘은 것 외에도 또 다른 위대성이 숨어 있다.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의 적대감이 절정에 달하던 1세기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알 때, 사마리아인이 보인 선행은 차후에 어떠한 보답을 받기는커녕,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는 진퇴양난의 위험을 감수한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왜 그런가?
첫째, 강도 만난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 사망했을 경우
이 경우에 벌어질 상황을 유추해 보면 아마도 이러하지 않을까? 유대인 부상자를 나귀에 태우고 사마리아인이 유대인 마을의 여관에 다급히 도착한다. 그런데 나귀에 실린 유대인이 그 순간 숨을 거둔다. 이를 본 유대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마리아인을 의심의 눈초리로 주시할 것이다. 강도의 인상착의를 아는 사람도 없고 이 사람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목격한 증인도 없다. 즉 사마리아인은 자초지종을 설명할 틈도 없이 자칫 모든 누명을 뒤집어쓰게 될지도 몰랐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간의 적대적인 감정은 사마리아인이 보인 동정심을 오히려 살인으로 몰아갔을 것이고, 결국 사마리아인은 민족적 감정의 희생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은 현대 이스라엘에서도 비슷하게 재현될 수 있다. 과연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마을 한복판을 지나다가 팔레스타인 응급환자를 발견했다고 해서 그를 싣고 무턱대고 팔레스타인 병원에 찾아갈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은 행동이다. 이것은 동정과 선행의 차원을 넘어서 자칫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반대의 상황도 동일한 결과를 초래한다.
--- pp.195-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