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되던 해에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어머니 손에 이끌리어 전통예인의 문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순을 넘기신 선생님 밑에서 가야금 줄을 뜯으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가야금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전통음악을 배우고 그 후 가야금을 위해 새로이 작곡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한 곡 한 곡 새로운 곡을 만날 때마다 이 곡에서는 가야금의 또 어떤 새로운 소리가 울려날지 앞에 주어진 선물포장을 뜯듯이 항상 두근거리곤 하였습니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가야금 곡을 만나 가야금의 새로운 음향과 가능성들을 느끼면서 가야금이 매우 전통적인 악기이지만 또한 매우 현대적인 악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독일,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작곡가를 위한 가야금 워크숍을 열면서 외국 작곡가들이 보이는 깊은 관심에 제가 오히려 놀라면서 가야금이 전통악기의 한계를 넘어 이 시대 악기로서의 가능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전 세계 작곡가들에게 가야금을 좀 더 쉽게 만나게 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바람으로 지난 10여 년 간 작곡가를 위한 가야금 워크숍을 열면서 틈틈이 만들기 시작한 원고를 정리하여 책을 엮게 되었습니다. 가야금 작품의 원고를 쓰기 시작하며 나에게 글재주가 있다면 가야금의 아름다움을 좀 더 멋지게 그려낼 수 있을 텐데 하며 그렇지 못한 자신을 한없이 탓하기도 하면서 이 부족한 졸고를 세상에 펴 놓습니다. 한없이 무미건조한 문장이지만 가야금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전달되기를 부디 기도합니다.
작곡가를 위한 현대가야금기보법에서는 우선 가야금의 역사, 종류, 음악 등 가야금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에 대하여 기술할 것입니다. 현대 가야금 기보법에 대하여서는 우선 가야금의 기본 조현법을 기술한 후 현대작품 기보에 사용되는 여러 부호들을 오른손과 왼손 연주법으로 나누어 설명하겠습니다. 그 후 가야금 작품의 작곡에 있어 알아두어야 할 가야금의 특수 주법과 고유한 특성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가야금 연주법의 이해를 위해 전통음악을 비롯하여 전 세계 46명 작곡가들의 77곡 가야금 작품들에서 뽑은 230개의 예시 악보와 동영상을 함께 수록하여 손의 움직임을 보면서 소리를 들어 이해하기 쉽도록 하였습니다. 가장 전통적인 연주법으로부터 가장 현대적인 연주법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야금의 모든 소리를 이 책에 실으려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화면을 통하여 한국의 깊이 있는 전통문화를 느끼고 최고 음질의 가야금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작곡가는 새로운 가야금 곡을 작곡할 때 꼭 알아두어야 할 기본적인 지식과 상상을 뛰어넘는 가야금 소리의 다양함과 가능성을 알 수 있으며 가야금 연주가는 가야금의 다양한 새로운 현대주법에 대하여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으로 아름다운 가야금 소리가 세계에 더욱 널리 퍼져 나가길 소망합니다.
이 책의 출판을 맡아 주신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과 이 책의 중요한 의미를 이해하시고 제작에 참여해 주신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고흥곤 국악기 연구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책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영어 번역의 김희선 교수님과 번역과 감수를 도와주신 Hilary V. Finchum-Sung 교수님, 동영상의 촬영과 녹음에 저보다도 더 최선을 다해 주신 김영찬, 오수정, 한승환 선생님, 깊이 있는 악기 사진을 맡아 주신 이종근 선생님과 모든 촬영을 주선해 주신 악당이반의 김영일 대표님, 예쁜 악보 만들기에 너무나 고생을 한 박성희 선생님, 원고와 수많은 악보, 사진의 편집을 맡으신 최유식 선생님과 책의 디자인을 맡아 주신 백승민 선생님, 동영상에 서 함께 연주해 주신 김웅식 선생님과 여러 제자들께 무한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서양음악 이론의 부족한 부분에 답해 주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의 이돈응, 전상직, 이신우 교수님과 첼리스트 박정민, 작곡가 김남국 동학에게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원고 교정과 촬영에 세심한 신경을 써 준 토끼 같은 제자들 세연, 소라, 민아, 현채, 화영, 은선, 도희, 지선, 지언, 수연, 서은이와 서울대학교 작곡과의 양수철, 이용석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여기에 있기까지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을 주시는 은사님들, 이말량 · 황병기 · 최충웅 · 이재숙 · 김정자 · 양연섭 · 강정숙 선생님께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졸고에 악보 게재를 허락해 주신 46분의 작곡가 선생님들과 그동안 무한한 상상력으로 가야금의 새로운 음향을 추구하고 아름다운 곡을 써 주신 온 세상의 작곡가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나의 딸 항아에게도 따로운 애정을 보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의 전통음악이 고단한 시련을 겪던 시대에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그러나 너무나 소중한 이 길로 이끌어 주신 이미 고인이 된 어머니에게 늦었지만 손을 꼭 잡고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2010년 12월
이지영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