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사회경제적 비용은 매우 크다.
불평등과 경제 상황은 별개라는 주장도 흔히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어떤 분야에서든 불평등이 심화되면 경제적 효율성은 떨어진다.(...)경계선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오랜 안정기를 거쳐 심화 단계에 접어든 불평등과 싸우는 일은, 사회 정의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의 안정과 경기를 받쳐주는 안전장치로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불평등을 방치하는 것은 도박과 다름 없다.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 혹은 현존하는 경제 질서를 위협하는 움직임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경계선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경계선이 존재하며, 그것을 넘어서면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거라는 사실만은 장담할 수 있다. 최근 선진국에 닥친 경제 위기가 극심한 불평등 때문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이미 그 경계선을 넘어서고 있는 중이다.(213쪽)
세계의 불평등, 그렇게 심한가?
글로벌 차원에서 2008년 기준 상위 10%와 하위 10%의 생활수준 격차는 무려 90배가 넘는다.(1820년에는 이 격차가 20배였다.) 인원수로 보자면 하위 10% 즉 가난한 6억 명은 연간 처분가능소득 평균이 270달러인 반면, 상위 10% 즉 부유한 6억 명은 생활수준이 25,000달러 이상이다. 다시 브라질을 생각해 보자.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이 심하다는 브라질에서도 상하위 10%의 격차는 “단지” 50배에 불과했다.(47쪽)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세계 경제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국제 무역이 확연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는 특히 중국이 중요했고,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로 넘어올 때는 소비에트 연방과 인도가 중요했다. 이들 거대 국가들이 국제 무역 시장에 문호를 개방하자 거의 10억 명에 달하는 비숙련노동자가 국제 무대에 새롭게 등장했다. 동시에 다른 생산요소들, 즉 자본, 숙련노동자, 원자재 등은 상대적으로 공급 부족에 직면했다. (...)새로운 선수들이 등장하자 세계 시장에서 경쟁도 달아올랐다. 선진국들은 직접 투자를 늘렸고, 규제 완화, 무역 자유화, 그리고 유럽 “단일 시장”의 출현 등으로 경쟁 은 더욱 강화되었다.
(...)요약하자면, 인구가 많은 국가들이 개방됨으로써 비숙련노동자가 국제 무역 시장에 대거 유입되었고, 그 결과 상품생산지가 재조정되었다. 동시에 선진국에서는 두 가지 차원에서 임금의 변화가 초래되었다. 첫째, 하위층의 임금이 다른 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이들이 개발도상국의 대규모 비숙련노동자들과 경쟁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둘째, 중위층 기술 인력의 경쟁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이들 또한 임금의 상대적 하락을 겪었다. 하위층과 중위층의 격차는 줄어든 반면, 상위층과 중하위층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이러한 현상과 동시에, 노동력을 제외한 다른 생산요소들은 가격이 올랐다. 국제 무역이 증대하고 선진국 경제에서 생산 구조조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생산요소 소유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들은 주로 상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며, 대개는 그 중에서도 최상위층에 위치하는 사람들이다.(124-125쪽)
세계화가 문제라면, 보호무역을 해야 할까?
보호무역을 통해 저소득층의 임금이나 고용 면에서 유리한 부분이 있겠지만, 그들의 구매력은 현저하게 떨어지고 생활비는 상승할 것이다. 유리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직접적인 이익이 있는지 는 미지수다.
더욱이 “수입품”과 “수출품”이라는 개념 자체가 오해의 소지가 많다. 오늘날 가치사슬(value chain)은 매우 길고 복잡하다. 어떤 상품이 국산인지 수입품인지 구분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이폰이다. 이 기기는 신기술과 유통이 합해져서 가치를 만들어낸다. 제품 개발은 주로 미국에서 하지만 부품을 생산하는 나라는 20개국이 넘는다. 그 중 대부분은 아시아에 분포하고 있다.
이 부품들이 중국에 모여 조립이 된다. 아시아에서 들어오는 상품을 “보호”해버리면 아이폰의 경우 선진국에서 수출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보호무역 정책을 실시했을 경우, 서구에서 진작에 포기했던 시장, 즉 의류, 장난감, 요리 기구 같은 상품들에 높은 관세를 매겨야 할 것이고, 그러면 자국 내 소비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보호무역은 현재 선진국과 신흥국의 경쟁이 진행중인 품목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 의약, 항공기 등의 분야다. 그러나 이 품목들은 선진국 입장에서 현재 상당히 재미를 보고 있는 분야인데 무엇하러 보호무역을 해서 무역보복의 위험을 감수한단 말인가?(262- 263쪽)
돈만 있으면 해결이 될까남녀 차별, 인종 차별 등의 문제에 대하여
지금까지 언급한 불평등 문제는 어쨌거나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화폐성, monatary) 것들이었다. 임금, 소득, 생활수준, 부 등이 모두 그렇다. 그러나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비화폐성,non-monatary) 불평등 문제도 존재한다. 그 중에는 측정 가능한 것도 있고 측정 불가능한 것도 있다. 이런 문제들은 사회 정의의 관점에서 사회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들이며, 일반 대중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바로 이런 문제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기회의 불평등 문제다.(102쪽 이하)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과도한 불평등의 부정적 측면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신용이나 적당한 교육 등 유리한 경제적 여건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서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 혹은 노동, 상품, 용역 시장 등 시장의 실패로 인한 불평등은 모두 경제시스템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이러한 문제들을 부분적으로만 개선하더라도 경제 전체의 산출과 소득은 크게 증가할 수 있다. (...)
둘째, 불평등 심화를 막을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이 우리 손 안에 있다. 시장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정책들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이러한 정책을 통해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동시에 경제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을 포함해서 아직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 교육과 직업훈련은 물론 불평등 완화에 기여할 것이다. 최근 선진국에서 불평등 심화의 원인이 되었던 시장의 관행, 특히 금융 시장을 좀더 엄격하게 규제하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다.
셋째, 성별이든 인종이든 소득이든, 모든 종류의 차별에 맞서야 한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교육정책 하나만 보더라도 그 성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불평등 심화의 직접적 원인, 즉 세계화나 기술적 진보 등에 대응하는 정책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반대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문제의 뿌리를 보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최소한 잠시만이라도 증상 악화를 막을 수는 있다.(268쪽)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