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6, 9쪽)
역사 속에서 형성된 동아시아, 즉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지역세계는 지금 위기를 맞고 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북한 문제와 더불어 역사수정주의의 반동이 국가의 정치?외교를 혼미하게 만들며 대외적으로 강경해지고 있는 일본의 문제, 그리고 점차 거대한 힘으로 떠오르면서 미국과의 공동 지배를 목표로 삼는 한편 이웃나라와 충돌하고 내정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중국의 문제, 동아시아에서 정치적?군사적 존재감을 유지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경제질서를 확대하려는 미국의 문제, 미?중?일 3국이 갈등을 빚고 있고 미군기지와 주민의 대립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오키나와 문제, 이러한 문제들의 접점에 위치하면서 민주주의 혁명을 이룬 국민이 기대하는 헤게모니를 발휘하지 못한 채 고민하고 있는 한국의 문제, 이 모두가 흔들리고 꼬이며 위기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중에서 영토 문제는 언제라도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군사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대체 어떠한 상황인가? 이 현실은 어떤 역사 흐름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인가? 여기에서 어떻게 진행해나갈 것인가? 선택지는 무엇이고 어떤 선택이 바람직한가? 이러한 점들을 생각할 때, 역사를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좋은 역사의 방향성을 가지려면 동아시아의 역사상을 가지는 것, 스스로 자신의 역사상을 형성하는 것이 반드시 요구된다.
… 이 책의 저자들이 서술한 동아시아의 근현대사와 문답을 나누고, 여기에서 자신의 동아시아 역사상을 끄집어내길 바란다. 그리고 이 역사상을 자신을 이끌어주는 끈으로 삼아 잃어버린 세월을 향해 돌파하기 바란다. 그럴 때 화해와 평화의 새로운 동아시아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맺는 글(522~523쪽)
이 강좌의 기획도 ‘화해와 협력의 미래’에 대한 낙관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미래가 봉쇄되는 것에 대한 염려와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 1990년대 이후 분열과 통합 사이에서 삐걱거리는 아시아에서의 역사인식 문제는 아카데미즘만이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의 정치와 여론이 개입된 국가 간의 대립과 배타적 내셔널리즘을 자극하는 불씨가 되었다. 이 강좌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협소한 자국사를 넘어서 역사적인 자료와 실증을 동반한 통사적 총서를 편찬함으로써 하나의 아카데믹 스탠더드를 확립하는 것이 동아시아의 현상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의도와 바람에서 기획되었다.
1장 동아시아의 근대: 19세기(발문, 15쪽)
동아시아의 19세기는 근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해당한다. 18세기에는 토지가 적고 인구는 많아 자본이 적게 드는 노동집약적인 발전 형태를 가진 동북아시아에 많은 은이 유입되면서 번영기를 맞았다. 인구가 적고 사회 유동성이 높았던 대륙의 동남아시아에서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걸쳐 새로운 국가가 형성된 동북아시아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여러 국가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예컨대 청에서 아편이 유행했던 것처럼, 동아시아에서는 사회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또 서양의 대표적인 공업국가였던 영국은 중국 시장을 목표로 삼으면서 해협식민지 등 동남아시아에 거점을 만들어나갔고, 1840년대 초에 청과 아편전쟁을 벌여 승리했다. 그리고 영국이 세계에 제공하고 있던 교통과 통신, 무역 관리, 역병 관리, 결제기능 등의 국제 공공재가 동아시아에도 제공되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특히 동남아시아에서는 서양 국가들이 식민지를 구축하여 영역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에는 일본과 시암(지금의 태국)이 서양식 근대국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하여 동아시아에서 최초의 식민지 보유국이 되었으며, 근대 모델을 동아시아에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종교적인 요소를 비롯한 가치관과 세계관을 지닌 기층사회의 자장(磁場)과, 국경을 넘는 사람들의 이동 등으로 인해 동아시아의 공통체험으로서 근대는 각각의 기층사회에 스며들게 되었다.
2장 러일전쟁과 한국병합: 19세기 말~1900년대(발문, 69쪽)
청일전쟁으로 동아시아는 제국주의 시대를 맞이했다. 독일, 러시아, 영국 등 삼국은 간섭으로 일본의 힘을 억누르면서 청나라로부터 조차지를 획득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미국은 필리핀을 획득했다. 위기를 느낀 청 황제는 변법개혁에 나섰지만 좌절했다. 1900년 의화단 운동이 폭발하자, 열강의 군대는 베이징을 점령하고, 러시아군은 만주를 점령했다. 이때 일본은 조선을 장악하고 남만주 진출을 획책했다. 러시아는 만주를 제압하면서 중립국이 되기를 바라는 조선의 황제를 지지하려고 했다. 러?일 양국은 1903년 여름부터 교섭하기 시작했지만, 대립이 여실히 드러났을 뿐이었다.
1904년 2월, 일본은 영일동맹을 배후로 전쟁을 개시했다. 일본은 조선의 전시중립 선언을 무시하고, 우선 진해만과 서울을 점령했다. 일본은 뤼순(旅順)과 펑톈(奉天)전투에서 승리했고 동해 해전에서 완승했다. 포츠머스 강화회의에서 일본은 조선의 ‘보호국화’를 인정받음과 동시에 남만주를 손안에 넣었다. 러일전쟁을 축으로 가쓰라?태프트 협정과 영국?프랑스 협상이 맺어졌고, 전후 미국과 대립하는 가운데 러일?영러 협상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고종은 일본의 지배에 더욱 저항했고, 의병운동이 확대되었다. 마침내 일본은 고종을 퇴위시키고 1910년 8월 대한제국을 병탄했다. 이로써 동아시아의 제국주의적 분할이 완성되었다.
5장 새로운 질서의 모색: 1930년대(발문, 213쪽)
세계공황으로 막을 연 1930년대에는 만주사변(1931년 9월)과 루거우차오(盧構橋)사건(1937년 7월)이 일어났고, 독일의 폴란드 침공(1939년 9월)으로 유럽에서는 2차 세계대전에 돌입하는 위기의 시대가 되었다. 이는 공황 타개책으로 추진한 블록경제권의 형성에 대해 ‘가지지 못한 나라’인 일본과 독일 등이 베르사유체제와 워싱턴체제를 타파하는 것을 ‘신질서’의 수립으로 정당화하여 국제질서의 재편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다른 한편 세계공황의 타격을 받은 아시아 세계에서는 버마의 농민 반란과 인도의 ‘소금 행진’으로 상징되는 비폭력운동, 베트남의 응에띤 소비에트 수립, 필리핀의 삭달 봉기 등 다양한 형태의 저항운동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더욱이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일상생활의 ‘개신(改新)’으로부터 시작하여 국가개조, 동아시아 광역질서 구상, 국제정치?경제체제의 재편 등 다양한 차원에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한 시기이기도 했다.
또한 생활의 ‘개신’은 점차 총력전 수행을 향해 여성을 포함한 총동원체제의 편성으로 변화했고, 조선과 타이완의 황민화 운동에서는 ‘인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사회보장의 정비를 추진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중일전쟁이 전면화되는 가운데 항일을 둘러싼 경쟁과 국경의 인적 교류 사이에 새로운 정치 공간이 만들어졌다.
9장 경제발전과 민주혁명: 1975~1990년(발문, 403쪽)
1975년 베트남전쟁은 미국의 패배로 끝났다. 이것은 ‘아시아 전쟁의 시대’의 끝이기도 했다. 베트남의 승리는 전쟁에 가담하고 있던 나라들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한국에서는 민주화운동이 시작되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아세안을 강화하여 자립하려고 했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승부에 만족하고 베트남에 대해 반발했다. 그 결과 1978년에는 중일 평화우호조약과 미중 국교수립에 의해 미국, 중국, 일본의 삼국동맹이 형성되고,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한 소련, 베트남, 아프가니스탄의 삼국동맹이 그것과 대항하는 구도가 생겼다. 다음 해에는 2개 동맹의 접점에서 캄보디아전쟁, 중월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이 일어났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는 전쟁과 함께 눈부신 경제성장이 진행되었다. 한국, 일본, 타이완,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이어 마지막으로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취해 경제성장의 길로 들어섰다. 이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이 제3세계에서 사회주의 권위의 실추를 가져왔다. 소련에 대항하는 미국은 1983년부터 ‘신냉전’을 개시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전쟁에 개입하여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을 원조했다. 1986년과 1987년 필리핀과 한국에서는 민주혁명이 성공한다. 이들 모두 사회주의 이념과 관계없이 진행된 새로운 시민혁명이었다. 체제의 한계에 이른 소련에서는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어 한국, 미국, 중국과의 화해가 진행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이 철수하고, 캄보디아에서 베트남군이 철수했다. 세계사적으로 냉전이 끝나고, 1991년 소련은 국가사회주의 체제를 종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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