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남조선으로 내려가면 아빠가 더 반동분자로 몰려 곤란해질 게 뻔하다우. 캐나다에서 난민 신청만 받으면 모든 게 풀린다니까니, 너 먼저 캐나다 영주권을 얻은 뒤에 엄마 아빠를 초청하라우. 언젠가는 우리가 뭉쳐 살게 될 날이 올끼라우. 너도 큰 나라에서 맘껏 공부할 수 있고. 난민 신청만이 우리가 살길이라우.” 무지에서 온 현실치고는 억이 막혔다. 하지만 엄마의 말을 심의관에게 할 수는 없었다. ‘진짜로 국제 미아가 된 셈인가…….’ 길가에 버려진 갓난쟁이 같은 기분이 들었다. --- p.24
‘내게 미용은 버거운 건가? 내가 꿈꾼 남조선 생활이 무너지면 안 되는데…….’ 자유의 땅인데도 자유롭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밧줄에 얽매인 느낌이랄까. 국경 지대에서 꽃제비로 생활할 때는 먹는 것과 중국 공안의 눈만 피하면 됐는데, 지금은 마음이 길을 잃을 때가 많았다. 외롭고 고독했다. --- p.89
“추궁? 걱정? 나는 지금 성공해 잘 살고 있어. 그런데 너를 보면 무너질 것 같으니까 다시는 보지 말자고.” 나는 멍하니 뒤돌아 가는 언니의 모습을 보았다. 확실한 건 언니가 나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나를 보면 자기 거짓말이 탄로 날까 봐 걱정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러라고 온 게 아니었는데…….’ 언니 마음과 내 마음이 달라서 씁쓸했고, 사과 한마디 없는 언니가 서운하기도 했지만 언니에게 도움 되는 거라면 난 일없었다. --- p.115
“어휴, 우린 또 떨어지는 거야? 만나자마자 이별이 우리 운명인가?” 은우가 진지한 듯 장난처럼 말했다. 뭐지? 싶으면서도 은우의 이런 반응이 참 좋았다. “새삼스레 뭘, 어차피 너 캐나다 가잖아. 내 핑계는.” 나도 은우 식으로 말했다. 은우가 활짝 웃었다. “은우와 함께하는 동안 시간이 쏜살처럼 빨리 지나갔다. 한 시간쯤 만난 것 같은데 벌써 밤이 깊었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처음 알았다. --- p.119
‘아, 내 조국은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걸까?’ 나도 모르게 조국이라는 말을 쓰는 내가 낯설기 시작했다. ‘조국? 내 조국은 어디일까? 남조선? 북조선? 엄마 아빠가 있는 곳인가, 여권을 발급해 준 대한민국인가? 내게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내 몸의 일부를 자르거나 심장을 떼지 않고선…….’ 북조선, 남조선, 중국, 캐나다 그리고 지금 다시 중국 연길에 선 내가 누구인지 되물었다.
아빠가 정치수용소에 갇히자 위험을 피해 북한을 떠나는 도희와 엄마. 목숨 건 탈북도 잠시 엄마는 도희 혼자 캐나다로 보낸다. 캐나다에서 만날 브로커에게 사기당한 도희는 낯선 땅에서 혼자가 되지만 다행이 한국 음식점 사장님의 도움으로 머물 곳을 마련한다. 난민 신청은 꼬여만 가고 엄마가 위험에 처했다는 전화를 받는 도희. 엄마의 행방을 알 수 있다는 희망으로 도희는 대한민국으로 간다. 서울에서도 엄마 소식은 없고 냉혹한 남한살이에 지쳐 가는 도희. 환상촌 원장님의 도움으로 엄마가 있다는 중국 연길로 향하는데……. 과연 도희는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