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론의 코펜하겐 해석은 역설에서 시작한다. 물리학의 모든 실험은, 일상생활의 현상이든 원자 수준의 사건이든, 모든 사건은 고전 물리학을 이용해 서술해야 한다. 모든 과학자는 고전 물리학의 개념으로 구성된 언어를 이용해 실험을 설계하고 결과를 서술한다. 여기서 고전 물리학의 개념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고, 대체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개념의 적용은 불확정성원리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결국 우리는 상당히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관찰이 사건의 결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현실이 우리의 관찰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점을 명확하게 판별하기 위해서는 관찰이라는 행동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자세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우선 자연과학의 관심사는 우리를 포함하는 우주 전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우주의 특정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그 부분을 연구 대상으로 지정한다. 원자물리학에서 그 부분이란 보통 매우 작은 물체, 즉 원자라는 입자나 그 입자가 모여 만든 구조지만, 크기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기에 상당히 큰 구조체도 포함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포함한 우주의 많은 부분이 해당 연구의 대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양자론은 보어의 말대로 ‘삶의 조화를 찾으려면 자신이 존재라는 연극에 참여하는 배우이자 그 모습을 지켜보는 관중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옛 격언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과학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볼 때, 그것도 가장 정교하고 복잡한 기구를 이용해야만 확인할 수 있는 자연의 일부를 볼 때는 우리 자신의 행동이 상당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데모크리토스의 철학에서 원자는 영원하며 파괴되지 않는 물질의 구성 단위이며, 다른 형태로 변화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현대 물리학은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에 단호하게 반대하며 플라톤이나 피타고라스학파와 같은 편에 선다. 기본 입자는 분명 파괴 불가능하지 않고 영원한 물질의 구성 단위가 아니며, 다른 입자로 변화하는 일도 가능하다. 사실 두 개의 기본 입자가 매우 높은 운동에너지를 가진 상태로 공간 속을 이동하여 충돌하게 되면, 충돌 에너지로부터 수많은 새로운 입자가 탄생하고 예전의 입자는 사라질 수도 있다.
얼핏 보기에는 그리스 철학자들이 번득이는 천재적인 영감에 의해 현대인이 몇 세기에 걸쳐 노력한 끝에 실험과 수학의 방법론으로 얻어낸 결과물과 동일하거나 상당히 유사한 결론을 얻어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행한 비교를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완전한 오해다. 현대 물리학과 그리스 철학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하며, 이는 현대 과학이 가지는 실험과 실증적 탐구 방식에서 유래한다. 갈릴레오와 뉴턴의 시대 이래로 현대 과학은 자연에 대한 세밀한 탐구와 실험에 의해 입증된, 아니면 적어도 입증될 수 있는 공리에 기반을 두어 왔다. 실험을 통해 자연계 안에서 특정 사건을 추출해 낼 수 있다는, 그리고 그를 통해 세부 사항을 탐구하고 계속되는 변화 속에서 불변하는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는 착상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현대 과학은 그 시작점부터 그리스 철학보다 훨씬 보편적이고 훨씬 단단한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물리학의 명제는 어떤 면에서 보면 그리스 철학자들의 주장보다 훨씬 진지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데카르트 철학의 근간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경우와는 극단적으로 다르다. 여기서 시작점은 기본 원리나 질료가 아니라 기본 지식을 향한 갈망이다. 그리고 데카르트는 우리가 외부 세계보다 자신의 정신에 대해서 더 확신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의 논지가 신-세계-나라는 삼중 구조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미 그의 논리가 이 이상 발전시키기에는 근본적으로 위태로운 이유를 알 수 있다. 플라톤의 철학에서 시작된 물질과 정신, 육체와 영혼의 분할이 마침내 완벽하게 구현된 것이다.
데카르트의 관점이 훗날 가져온 결론은, 동물을 단순한 기계로 취급할 수 있다면 인간도 동일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사유실체’와 ‘연장실체’가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것이라 간주해 버리면 서로 상호 작용을 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따라서 정신의 경험과 육체의 경험이 완벽한 병렬 상태를 유지하도록 만들기 위해, 정신적 작용 또한 물리나 화학의 법칙에 대응하는 모종의 법칙을 따르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자유의지’의 존재 가능성이라는 문제가 등장한다.
자연과학은 단순히 자연을 기술하고 설명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연과 우리 사이의 상호 작용의 일부를 나타내는 것이다. 자연과학은 우리의 질문 방법에 의해 노출되는 자연의 일부를 기술하기 때문이다. 이는 데카르트 본인은 생각해 보지 못한 가능성이겠지만, 결국 세계와 나의 명확한 구분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모든 지식이 결국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철학 명제는 결국 자연에 대한 모든 기술을 논리적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는 가정을 필요로 한다. 이런 가정은 고전 물리학의 시대에는 옳은 것이 될 수 있었으나, 양자론이 등장한 이후 우리는 그런 가정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전자의 ‘위치’와 ‘속도’는 그 의미와 연관 관계가 완벽하게 특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사실 뉴턴 역학의 수학적 얼개 안에서 볼 때는 명확하게 정의된 개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확정성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칸트가 예측하지 못한 것은 선험적 개념이 과학의 필수 조건으로 적용되는 범위에 한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험을 할 때 우리는 특정 원자 단위의 사건에서 측정 도구를 거쳐 관찰자의 눈까지 도달하는 일련의 인과 관계를 가정한다. 이런 가정을 하지 않으면 원자 단위의 사건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고전 물리학과 인과율이 적용되는 범위에 한도가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는 칸트가 미처 예측하지 못한 양자론의 본질적인 역설이다. 현대 물리학은 칸트가 주장하는 선험적인 종합적 명제를 형이상학적 명제에서 실용 속의 명제로 바꾼 것이다. 따라서 선험적인 종합적 명제는 상대적 진리라는 성질을 지니게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과학은 다른 종류의 예술, 이를테면 건축이나 음악과 비교할 수 있다. 예술의 양식 또한 특정 예술 분야의 대상에 적용되는 형식적인 규칙의 집합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런 규칙을 수학 개념과 방정식의 집합으로 엄밀하게 나타낼 수는 없겠지만, 그 기본적인 요소는 수학의 필수 요소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균등과 불균등, 반복과 대칭, 특정 집합 구조 등은 예술과 수학 양쪽에서 기초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여러 예술 사조를 인간 정신의 임의적인 산물로 보는 사람에게는, 자연과학의 개념군과 예술의 개념군을 비교하는 행위는 현실과 상당히 동떨어져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라면 자연과학의 개념군은 자연으로부터 배운 객관적 현실을 나타내며, 따라서 전혀 임의적이지 않고, 자연을 경험하며 지식을 쌓아 가는 점진적인 과정일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여기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과학자들도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예술의 개념군을 과연 인간 정신의 임의적 산물이라 부를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데카르트의 이분법에 호도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예술의 사조는 세계와 인간의 상호 작용에 의해,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당대의 시대정신과 예술가의 상호 작용에 의해 탄생하는 것이다. 시대정신은 어쩌면 자연과학의 사실만큼이나 객관적인 대상일 수도 있으며, 이런 정신에는 심지어 시대와는 관계없는, 어떻게 보면 영속적이라 할 수 있는 세계의 성질도 포함된다.
‘실증적 종교는 어떤 형태든 대중의 요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과학자는 오직 종교의 이면에서만 진실을 탐구할 수 있다’라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교리도 있다. 이에 따르면 ‘과학은 소수를 위한 난해한 학문이다’. 우리 시대의 일부 국가에서는 정치 교리와 사회 활동이 실증적 종교의 지위를 대체하지만, 문제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과학자의 첫 번째 자질은 지적 정직성이지만, 공동체는 종종 과학 이론의 변동에 따른 반대 의견을 제시하기 전에 수십 년 정도 기다려 주기를 요구한다. 관용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라면 아마 단순한 해법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인류 역사에서 아주 오래된 문제라는 점을 떠올리면 약간이나마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과학이든 아니든 모든 종류의 이해는 우리의 언어, 즉 개념의 소통에 달려 있다. 현상이나 실험 및 그 결과에 대한 모든 기술은 언어를 유일한 소통 수단으로 이용해서 벌어진다. 이 언어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개념을 나타내던 것인데, 물리학의 과학적 언어에서는 이를 정제해서 고전 물리학의 개념을 설명한다. 이런 개념들은 사건이나 실험 설계나 그 결과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원자물리학자를 붙들고 실험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기술해 달라는 주문을 한다면, ‘기술’ ‘실제’ ‘일어난다’라는 단어는 고전 물리학 또는 일상의 개념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이 기반을 포기하는 물리학자는 명확한 의사소통의 수단을 잃게 되며, 따라서 과학 연구를 계속하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서술은 고전 물리학의 개념을 이용한 서술이며, 열역학과 불확정성원리 때문에 관련된 원자 단위의 사건의 세부 사항을 기술할 때 불완전한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은 물리학과 화학에 진화라는 개념만 첨가하면 생명체를 완벽하게 기술할 수 있게 되리라는 희망의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실험과학자가 생물학의 기작을 다룰 때에는 물리학이나 화학의 작용에 비해 훨씬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보어가 지적했듯이, 생명체에 대해서는 물리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온전하다고 말할 수 없는 기술만이 가능할 수도 있는데, 물리학자를 만족시킬 정도의 실험은 생물체의 기능에 너무 심각하게 간섭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어는 이런 상황을 놓고 생물학의 탐구 대상이 우리가 직접 수행하는 실험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속한 자연계에 존재하는 가능성이 이미 실현된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론물리학에서 과학적 명확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 언어는 보통 실험 결과를 예측하게 해 주는 수학적 언어, 즉 수학 공식이다. 물리학자라면 수학 공식을 확보하고 그 공식을 이용해 실험을 해석하는 방법을 파악하면 만족하게 된다. 그러나 물리학자는 실험 결과를 물리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설명해야 하고, 그런 사람들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평범한 언어로 설명을 해 주기 전까지는 만족하지 못한다. 게다가 물리학자에게도 평범한 언어를 통한 기술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가 일정 이해 수준에 도달했다는 증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술이 실제로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 것일까? 원자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이는 물리의 문제만이 아니라 언어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스 철학에서 언어의 개념이라는 문제는 소크라테스 이후 주요 주제로 다루어졌다. 플라톤의 대화록에 등장하는 예술적인 묘사를 믿는다면, 소크라테스의 삶은 언어의 개념과 표현 방식의 한계에 대한 계속되는 토론의 과정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적 사고를 위한 탄탄한 기반을 확립하기 위해서 내용을 불문하고 언어의 형태와 귀결 및 추론의 형식 구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런 방식을 통해 그는 당대의 그리스 철학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추상성과 명징성을 획득했으며, 이를 통해 우리의 사고방식의 체계를 확립하고 명확하게 만드는 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가 과학 언어의 주춧돌을 놓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핵무기의 발명은 또한 과학과 과학자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과학이 정치에 끼치는 영향은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 비해 훨씬 커졌으며, 이 사실은 과학자에게, 특히 원자물리학자에게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의무라는 막대한 짐을 지웠다. 과학자는 이제 공동체를 위한 중요한 과학 임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며 국가 체제의 일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경우에는 결국 대학과 연구 집단이라는 익숙한 소규모 공동체의 기준을 훨씬 넘어서는 막대한 무게를 가지는 결정을 내릴 의무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다른 길은 자발적으로 모든 정치적 결정에서 물러서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과학자의 조용한 삶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잘못된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경험을 강조하기 시작하자 현실을 보는 관점 또한 점진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중세 시대에는 현대의 우리가 상징적 의미라고 부르는 것들이 일차적 현실의 일부였으나, 현실이라는 개념은 차츰 우리가 감각을 통해 감지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뜻으로 바뀌게 되었다.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들이 일차적 현실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현실의 개념은 새로운 행동 양식으로 연결되었다. 경험을 통해 실체를 파악하려는 시도가 등장한 것이다. 이런 새로운 관점을 통해 인간의 정신이 방대한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로 항해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그리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교회 권력이 이런 새로운 사조로부터 희망이 아닌 위험을 감지했으리라는 점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언어가 과학의 발전 과정에서 본질적인 안정성을 유지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현대물리학이라는 경험 이후에는 정신이나 영혼이나 생명이나 신과 같은 개념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19세기와는 달라질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런 개념들은 자연언어에 속해 있으며 따라서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학의 관점에서 보기에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으며 이를 적용하면 다양한 모순이 발생하리라는 점은 분명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받아들이는 이런 개념들은 제대로 분석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개념들이 현실과 접점을 가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반면 타협 불가능한 신념이라는 현상은 19세기에 유래한 특정 철학 관념보다 훨씬 더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일부 주요 사상이나 교리가 옳은지를 따지게 되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다수에게 있어 ‘신념’이라는 단어는 ‘특정 대상의 진실을 인지한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특정 대상을 삶의 근간으로 여긴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후자의 신념은 전자에 비해 훨씬 강고하며, 훨씬 경직되어 있고, 완벽하게 모순되는 경험에 직면해서도 꺾이지 않으며, 따라서 과학적 지식이 더해진다고 해서 흔들리지 않게 마련이다. 지난 20년 동안의 역사는 두 번째 부류의 신념이 때론 완벽하게 황당할 정도까지 떠받들어질 수 있으며, 신념을 지닌 자들이 목숨을 잃어야만 끝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