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구약성경에서 율법과 의로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셨지만, 신약성경에서는 그 초점을 은혜와 용서로 바꾸셨다고 단정하는 것은 심히 잘못된 생각이다. 성경 전체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은혜롭고 용서하시는 분이셨으며, 하나님의 율법은 영원히 서 있다.
하나님의 율법은 여전히 우리가 지켜야 할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율법을 완전케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이루어진 일들의 목록으로 옮기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세 가지 면, 즉 그분의 삶, 죽음 그리고 자기 백성을 통해 이루신다.
--- p.23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점에 대해 혼동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어떠한 사실들을 믿고 있는 한 모든 것이 만사형통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야고보는 이러한 오류에 대해 분명히 짚고 넘어갔다. 그는 귀신들조차도 하나님을 믿고 있으며,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면서 떤다(약 2:19)고 말함으로써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바를 정확히 지적했다.
--- p.38
복음의 첫 번째 요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보다 못한 상태에 머문다면, 우리는 진정한 기독교 신앙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 사람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발견해야 한다.
--- pp.69-7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를 기다리지 않으신다. 인간의 역사는 혁혁한 공을 세운 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했으며 구약성경은 그러한 지도자들로 기득 차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류 가운데서 한 구원자가 등장하기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자신의 아들을 인류에게 보내셨다. 성자 하나님은 그렇게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몸을 취하사, 사람이 되셨다.
--- p.146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을 때, 그분의 육체는 더 이상 노화나 질병이나 죽음에 종속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몸은 영원에 맞게 변화되고 영원에 적응되었다. 이것이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기다리고 있는 영광스런 미래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육체와 영혼, 즉 당신의 전부를 구속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부활을 통해 당신의 영혼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영생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듯이, 당신의 육체도 그 삶에 맞게 만드실 것이다.
--- p.219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일을 하신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 옮기신다. 둘째로, 예수님의 의를 당신에게 전가시키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당신의 행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당신의 것으로 인정하시기 때문에 당신을 의롭다 인정하시는 것이다.
--- p.397
은혜는 하나의 권력이다. 은혜는 용서해주는 것 이상이다. 복음은 은혜의 힘이 죄의 힘을 분쇄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영적인 면에서 납치범을 압도하고, 침입자를 몰아내고, 갇힌 자를 해방시켜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은혜가 통치권을 장악하는 것이며, 은혜가 우리를 붙잡아 전혀 다른 자리로 인도하는 것이다.
--- p.432
이상의 세 가지 성격 중에서 당신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가? 적대적인가, 무력한가, 아니면 희망적인가? 이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기 전까지는 당신의 영적인 삶이 다음 단계로 전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종착지를 향해 가야 하는지는 당신의 출발점에 달려있다.
--- p.470
당신이 자신의 연약함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만일 하나님께 부름 받은 당신이 소명을 향해 나아가기 전에 자신감을 느낄 때까지 기다린다면, 당신은 결코 그 소명을 감당하지 못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실 때, 우리 자신을 넘어서라고 하시며, 우리를 안전지대 너머로 인도해 가신다. 오직 자기의 강함만을 알고, 자기의 연약함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은 멀리까지 예수님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 p.508
교회는 회복되는 과정 가운데 있는 죄인들로 이루어진 사회다. 교회에는 신앙 고백은 하고 있지만, 최후의 날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들도 포함되어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더불어 교제의 식탁에 앉았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주장을 자기들의 방탕을 감추려는 외투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공허한 신앙 고백으로는 예수님을 그들 가운데 들어오시게 할 수 없다.
--- p.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