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자. 약 138억 년 전부터 이런 일들이 지금까지 계속 일어나고 있지. 지구는 약 46억 년 전에 탄생했으니, 지구에 존재하는 원소들은 다 그렇게 우주에서 만들어져 지구에 정착한 거지. 그렇게 우주에서 온 원자들로 만들어진 지구. 이 특별한 지구에는 너와 내가 살고, 특별히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별에서처럼 새로운 원소가 마구 생겨나지는 않아. 그렇다고 지구에 있는 원소들이 우주로 날아가는 일도 거의 일어나지 않거든. 그러니 ‘원자의 세상’ ‘화학의 세상’인 지구에서는 내부 순환에 갇힌 원자들끼리, 분자들끼리 지지고 볶으면서 이렇게도 변신하고, 저렇게도 변신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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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런데 이 사람들은 이런 것을 다 어떻게 알았대?” 너의 이런 무심한 질문에 웃는다. 왜냐? 네가 그렇게 질문하는 바탕에는 이미 과학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는 거지. 즉, 실험으로 확인되지 않으면 믿기 어렵다는. 네 말처럼 데모크리토스의 생각도 실험과 증명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었잖아. 그 당시 상황을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나 데모크리토스나 ‘내가 만물을 이루는 근본 물질에 대해 이런 생각을 했소!’라고 그냥 발표하는 거잖아. 근데 그 내용이 맞느냐 틀리냐를 어떻게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는 거잖아. 그러니까 결국 누구의 생각이 옳으냐는 누가 더 많이 지지하느냐인 거지. 당연히 아리스토텔레스 지지자들이 많았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들은 또 다른 지지자가 되고, 세대를 이어 또 다른 지지자를 낳았어. 그 과정에서 4원소설은 점점 더 견고한 이론으로 발전하게 돼. 그래서 데모크리토스의 뛰어난 생각은 4원소설에 막혀 2000년 넘게 고이 잠자고 있을 수밖에 없었지. 그만큼 4원소설은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처럼 확고하게 버티고 있었던 거야. 솔직하게 얘기하면 4원소설을 깰 근거도 없었고, 특별한 대안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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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과학이 정량적으로 측정이 가능한 상태에서 급속도로 발전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 과학이라는 것은 ‘측정’을 기반으로 한 통계의 학문이거든. 그 측정을 가능하게 한 사람들, 엄마는 그 사람들을 추가하고 싶은 거지.
더불어 우리 인류, 그 자체를 추가하고 싶어. 세상에 화학 물질로 구성되지 않은 것이 있어? 너도 나도 화학 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결국은 물도 화학 물질이잖아. 그런 상황 속에서 인류는 늘 새로운 화학 물질의 실험 대상이었어. 산과 들, 그리고 바다에 마구 널려 있던 동식물을 먹어보고 ‘이건 먹을만 하네~’라면서 인류는 끊임없이 실험해왔지. 물론 그 과정에서 독버섯을 먹고, 전갈에 물려 죽은 인류도 있었겠지. 그들의 죽음 덕분에 오늘날 인류는 이 버섯은 먹으면 안 되고, 전갈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 모든 이들이 지금의 우리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게 해준 이들이지.
--- p.61-62
사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확률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고안된 사고 실험이지만, 불확정성 원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고양이 실험 또한 ‘확률을 증명하는 사고 실험이다’라고 얘기했어. 우리가 장막을 열어 고양이의 생사를 확인하기 전에는 고양이는 죽지도 살지도 않은 삶과 죽음이 중첩된 상태인데, 우리가 확인하는 순간 중첩의 상태가 아닌 죽거나 살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된다는 거지. 이게 반쯤 죽여놓은 거랑 같은 상태냐고? 그것도 아닌 거지. 이런 중첩의 상태가 우리가 사는 거시 세계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원자와 같은 미시 세계에서는 가능하다는 거고. 지금은 불확정성의 원리가 받아들여지고 있어.
이 논쟁에서 불확정성이 승리했다고 해서 슈뢰딩거의 이론이 빛이 바랜 것은 아니야. 슈뢰딩거의 파동함수는 현대의 ‘전자 구름’ 모형을 제안하게 된 근거가 되었거든. 전자 구름 형태의 전자모형을 보면, 수많은 점들이 모여 원자핵 주위가 짙고, 원자핵에서 멀어지면 옅어지는 것을 볼 수 있어.
--- p.98-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