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유명한 예술가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싶어 하듯이, 또 누구나 유서 깊은 장인 가문이 만든 명품 가방이나 시계를 탐하듯이, 과거에는 분명 ‘명품’으로 존재했던 문화재의 가치를 오늘날에 다시금 주목하고 실감하게 할 수는 없을까. 우리도 우리 문화재를 우리 삶의 중심으로 가져오자. 박물관의 유리 진열장 너머가 아니라 무대 위에 올려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하자. 화려한 명품 런칭쇼처럼 초대형 비디오월을 이용해 문화재를 소개하자. 바로 이것이 〈천상의 컬렉션〉이 실현하고 싶었던 모습이다.
---「프롤로그」중에서
서른여섯까지 이름 없는 화가였던 정선은 금강산에 다녀와 그림을 그린 뒤 죽을 때까지 최고의 화가로 이름을 떨칩니다. 정선의 그림 하나에 온 한양이 들썩거릴 정도였습니다. 중국의 사신도 돌아가기 전에는 몇 날 며칠 줄을 서 정선의 그림을 사갔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정선의 그림을 중국에 가져가면 요즈음 말로 경매가 열렸습니다. 당시 청나라 건륭제 시기 1급 궁정화원의 월급이 11금이었는데 정선의 그림은 은 130냥 가치에 매매되었습니다. 이는 청나라 1급 궁정화원의 1년 연봉에 달하는 액수입니다. 그런데도 그림을 사겠다는 이들이 줄을 섰습니다.
--- p.38
19세기 조선에 파격적인 매화 그림 하나가 등장합니다. 이 매화 그림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문자 향기가 느껴지기는커녕 위험할 정도로 화려합니다. 금방이라도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그 강렬함으로 인해 매향이 그림 밖까지 진동할 것만 같습니다. 그림에 어찌나 힘이 넘치는지, 신기 들린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문자향서권기’라는 주류의 정신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그림. 조선 화단을 발칵 뒤집은, 장승업의 〈붉은 매화 흰 매화 열 폭 병풍〉입니다.
--- p.69
전 세계에서 발견된 고대 금관은 모두 열세 점에 불과합니다. 그중 절반이 넘는 일곱 점이 신라의 것입니다. 참고로 가야 두 점, 고구려 한 점, 아프가니스탄 한 점, 카자흐스탄 한 점, 흑해 북안 로스토프 지역 한 점입니다. 유물의 개수만이 아닙니다. 신라의 금관은 세공기법과 장식, 문양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입니다. 화려하고 섬세합니다. 전무후무, 최대라는 수식어를 모두 가진 것이 바로 신라 금관입니다. 그 덕에 우리나라는 ‘고대 금관의 종주국’이자(임재해), 가장 많은 금관을 가진 보유국입니다.
--- p.97
“혹시 외계인이 만든 물건인가?” 이 보물을 본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한 나라나 민족이 아닌, 인류 전체의 기술이 녹아 있는 전 지구적인 문화유산.” 한 전문가는 이렇게 평가합니다. 1500여 년 전 만들어져 한반도 동쪽 끝 경주의 작은 무덤에서 발견된 보물, 경주 계림로 보검입니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검은 화려한 보석으로 빼곡하게 치장되어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화려합니다. 그야말로 ‘맥시멀리즘(maximalism)’의 미학입니다. 이 검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우리나라의 유물과는 생김새가 많이 다릅니다. 굉장히 낯섭니다.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발견되었지만, 과연 이 검이 신라에서 만들어졌을까.
--- p.103
감은사지 동쪽 탑에서 나온 사리장엄구는 겹겹이 봉인되어 있는 형태입니다. 외함 안에 내함이 있고, 그 안에 다시 사리를 담은 유리병이 있습니다. 사리를 담은 수정 사리병의 높이는 3.65센티미터로, 고작 손가락 두 마디 정도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욱 놀랍습니다. 이 사리병에는 금으로 된 받침대와 뚜껑이 있습니다. 뚜껑의 크기는 지름이 1.2센티미터로 고작 손톱 크기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곳을 만져보니 오돌토돌했습니다. 분명 무언가 있는데 크기가 너무나 작아 육안으로는 확인이 어려웠습니다. 특수 현미경으로 100배 정도 확대하자 조금씩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작은 금 알갱이가 꽃 모양으로 박혀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금 알갱이는 얼마나 작을까. 지름이 0.3밀리미터입니다. 머리카락 굵기가 0.1밀리미터 정도이니 굉장히 정교한 장식입니다. 이 땜질을 현대에 재현해보는 실험을 했습니다. 놀랍게도 현대의 장인들은 이 땜질을 재현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 p.134
이렇게 유려한 곡선을 이루는 몸체와 화려한 장식을 자랑하는 이 주전자는 장인이 손으로 일일이 두들겨서 만들었습니다. 두께가 있는 은판을 안팎에서 두들겨 입체적인 문양을 만드는 타출(打出) 기법입니다. 은으로 만든 뒤 도금했는데 도금이 아주 잘 되어 마치 금 주전자처럼 보입니다. 이 주전자는 미국 보스턴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주전자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이것이 한국에 있었다면 당연히 국보가 되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2013년 전시 당시 보스턴미술관 측에서 직접 내한해 작품을 설치했는데, 국내 관계자조차 작품의 유리관을 열어볼 수 없었을 만큼 보안이 철저했습니다. 당시 보험가만도 4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58억 정도였습니다.
--- p.151
1975년 8월 20일,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남해의 한 바닷가에서 어부의 그물에 무언가가 걸렸습니다. 물고기 대신 나온 것은 도자기 여섯 점. 이 소문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도굴꾼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이 신안 앞바다에서 찾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진짜 보물선이었습니다. 신안선의 유물은 파고 또 파도 끝없이 올라왔습니다. 발굴 조사만 무려 9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투입된 잠수사가 만 명이 넘고, 발굴된 유물이 모두 2만 4000여 점입니다. 동전 800만 개(28톤), 자단목(紫檀木, 아열대산 최고급 목재) 1017개, 선체 조각 445개가 나왔습니다. 도자기는 무려 2만 661점이었는데, 청자가 1만 2359점, 청백자와 백자는 5303점에 달했다고 합니다. 바닷속 명품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 p.177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1999년 한국을 방문해 인사동을 찾았습니다. 한 갤러리에서 달항아리를 보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그릇”이라는 찬사를 보냈습니다. 빌 게이츠 재단은 달항아리를 그린 최영욱 작가의 그림을 석 점이나 사들였습니다. 일본은 더합니다.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에 달항아리가 단 한 점 전시되어 있는데 이것이 4년간 모습을 감춘 적이 있었습니다. 1995년에 도둑이 들어 달항아리를 훔쳐가다가 떨어뜨려 산산조각이 난 것입니다. 깨진 달항아리는 셀 수 있는 조각만 300개 이상으로 가루가 되어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루까지 하나하나 모아서 원래 모습으로 복원합니다. 무려 4년에 걸쳐서 말입니다.
--- p.203
반가사유상은 발견 당시부터 슈퍼스타였습니다. 1912년에 이왕가박물관이 일본인 고미술상에게 2600원을 주고 샀는데, 당시 국보급 청자 하나가 500원이었으니 어마어마한 가격이었습니다.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30억 원에 달합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재인 만큼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단독실에 전시돼 있습니다. 힘들 때마다 보러 온다는 마니아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해외 전시 요청이 쇄도해 지금까지 해외 유수 박물관으로 이동 다닌 거리만 계산해도 지구 두 바퀴입니다. 한 번 해외 전시를 다닐 때마다 보험에 가입하는데 그 금액이 상당합니다. 1996년 미국 애틀랜타올림픽 문화교류전에 출품할 당시 보험 평가액이 5000만 달러(당시 약 400억 원)로 산정되었습니다.
--- p.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