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의 행렬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지난날 망명의 객(客)이 지금은 재상이 되어 등청하니, 진정 삶이 영화롭고 마차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당대의 번영을 드러내놓고 자랑하기에 충분하다.
웬일인지, 고개는 진흙투성이에 길이 좁아서 마차를 나란히 할 수가 없고, 긴 채찍을 휘두르면 자칫 행인을 다치게 할 뿐이다. 조선에는 가마가 있다고 하지만, 이는 오래 되어 빛이 바래고 곰팡이가 끼어, 멀리 서양에서 건너온 검은 칠을 한 마차가 번쩍번쩍 빛이 나고 유리창 안에 융단이 깔린 자리에 앉아서 거리를 지나가는 신사 숙녀를 내려다보는 하이칼라 기분과는 견줄 수가 없다. 실로 ‘씨팔’이자 ‘아이고’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일본문명 중에서 독창적인 인력거를 조선으로 수입해 왔다. 무릇 개화된 정도로 보자면 긴 채찍을 휘둘러서 말을 모는 것은, 큰 소리로 야단치며 하인을 부리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 생각건대, 인력거는 신분의 귀천에 상관없이 누구나 타기 때문에 평등하다. 특히 다른 사람들에게 거드름을 피울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미 국풍(國風)을 버리고 목후(沐?)가 관(冠)을 쓴 소인배, 즉 재상이 되어 묘당(廟堂)에 서서 서민들을 다스리는 자는 외출 시에 조금이라도 그 행렬을 장엄하게 꾸미고자 한다. 순검(巡檢)을 앞에 세우고 그 뒤로 총을 멘 순사가 따르게 하고, 후위도 그처럼 하여 행렬을 꾸민다. 위무 당당하게 인력거 5대를 줄지어 세우니 감히 이를 범하고자 하는 자가 없고 폭도도 접근하지 못한다. 우둔한 백성들은 두려워 엎드리고 피하려한다. 비가 오면 포장을 씌우고 맑으면 햇볕을 쬔다. 아주 위생적이고 말똥 냄새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생각건대 말을 앞서 달리게 하고, 사람이 그 뒤에 연결한 마차에 타는 것은 아직도 짐승과 인간의 위치를 전도(顚倒)시킨 야만스런 풍습이라 할 수 있다.
온돌에서의 독거
괴상한 그림을 붙인 작은 병풍을 뒤에 두르고 약간 어둠침침한 온돌방에서 오도카니 혼자 지내는 것이 말하자면 조선 취향, 조선식의 표상이다. 이 그림 속에 조선이라는 명칭에 포함된 모든 것들이 남김없이 표상되어 있다.
한거(閑居)하며 뜻을 세우는 것도 아니고, 선(禪)의 삼매경에 빠져드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공상하는 것도 아니요, 나라를 위해 초려(焦慮)하는 것도 아니다. 안방에 가히 만권의 책을 쌓아 놓고서도 한가한 틈에 이를 섭렵하고 독파하려는 뜻을 세우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의식주에 만족하고 편안함을 느낄 뿐 결코 과거를 회상하고 회한하는 일도 없고, 장래를 구상하고 천세(千歲)를 우려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 순간을 홀로 귀히 여기며 웅크리고 앉아 담뱃대를 물고 모르는체하고 있다.
그 욕심이 많지만 더 이상을 바라지는 않고 이미 누리고 있는 것을 약탈당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 식견이란 것도 그저 눈앞의 이해타산을 따질 뿐이다. 뻔히 들여다보이는 교활한 꾀를 쓰다 오히려 목을 졸리게 되는 추태를 연출할 뿐이다. 담배 연기를 바라보며 등용되기를 꿈꾸고 돈주머니의 끈을 풀어놓고 한 푼이라도 적게 계산하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온돌이 요새처럼 견고하다 생각하며, 강도의 난을 피하는 생활을 인생에서 더없는 행복으로 여긴다. 방안에 사람이 없어도 더욱 용의(容儀)를 단정히 하고서는 유아독존(唯我獨尊)인 척 한다. 요컨대 온돌생활이란 칩거(蟄居)생활이며 진취적 기상을 소마(消磨)시키는 해로운 독과 같다. 방구석에 칩거하는 것 같은 안이함을 탐하는 것은 타락과 퇴화의 원인이다.
어찌 사리에 밝은 자가 없는가. 혜안을 지닌 자가 없는가. 그저 나라의 앞날이 간난(艱難)하구나. 전체적으로 보자면 한인(韓人)은 저능한 자이다. 마치 그 주거인 온돌과 같다. 온돌이 통풍이 되지 않는 것처럼 그 두뇌도 막혀있고 답답하다. 거기다가 담배와 아편으로 뇌가 더욱 녹슬어 있다. 먼저 그 온돌을 때려 부수고, 그 긴 담뱃대를 부러뜨리고, 그 말총으로 만든 두건을 찢어버려라.
밤늦은 한왕(韓王)의 연회에 대궐지기 잠들었네. 目池
버드나무 늘어진 길가에서 발(簾) 장수가 다리를 뻗는구나. 靜岐
하이칼라 기생
인력거 위에서 빨간 양산을 쓰고 상아 파이프에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윤기 없는 수염이 코털처럼 길게 자란 양반들을 내려다보며 지나가는 기생, 일본의 게이샤(藝妓)보다는 훨씬 하이칼라이다. 머리에는 커다란 빨간 리본을 앞뒤로 달고 옆에는 장미 비녀를 꽂았다. 개화된 척 단장한 이백삼 고지(二百三高地) 머리 모양에 구역질이 날 것 같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남이야 아랑곳없이 한껏 하이칼라로 단장하고 인력거 위에서 몸을 뒤로 젖힌 모습이 눈에 띈다. 기생은 일본의 게이샤나 작부가 변변치 못함에 비하면 훨씬 식견이 높다. 삼천년 이래 창기(娼妓)와 같은 처지에서 자라서, 조선 팔도의 교활한 국민 중에서도 닳고 닳아 기지가 풍부하기가 첫 번째이다. 기생학교를 졸업했다고 하면 일본 메지로(目白)에 있는 대학을 나온 여학생들보다도 인기가 있다.
기생학교에서는 일반적인 학문은 물론이고 의약, 가무음곡 일체를 가르치기 때문에, 기생은 반개(半開) 상태인 조선에서는 이 세상으로 내려온 천녀와 같은 존재로 고관대작의 양반들이 넋을 잃고 농락당한다. 최근에 박람회에 출연하고부터는 기생들의 하이칼라 성향이 급격하게 두드러져서 멋대로 날뛰는 기생이 많다고 한다. 일단 관기 신분으로 궁중을 드나들던 기생들이 작년의 궁중 숙정(肅靜) 후에 한꺼번에 해직되어 하야하였기 때문에 국왕을 가까이서 모셨다는 것을 내세워 콧대가 높다. 외출할 때는 반드시 인력거를 대기시키고, 남편이 있으면서도 드러내놓고 손님을 받는 짐승 같은 짓을 한다. 남편이 기둥서방(妓夫) 노릇을 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길거리에서 손님을 끄는 것이, 잘도 구색을 갖추었다. 사내아이 얻기를 중하게 여기지 않고 여자아이 얻기를 중하게 여기게 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자기 마누라한테 얽매인 것만 보아도 조선남자가 어리석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만취한 얼굴에 햇빛이 들고, 참외에는 파리가 앉았네. 시노부(しのぶ)
기생을 거느린 양반이여 멀리 복숭아꽃 핀 마을이 보이네. 尋蟻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