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중에서
조용하지만 강력한 파이팅
사람에 대한 외침이 크면 클수록 메아리는 더욱 공허한 울림으로 되돌아온다. 겉으로 보면 제법 성공해서 부족함 없이 사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도 한 꺼풀만 들춰 보면 크고 작은 상처와 아픔 때문에 간신히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들과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눠 보면 안타까운 사연들이 너무 많아서, 나도 모르게 그들의 손을 잡아 주고 어깨를 토닥거리게 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남성으로서 나와 같은 정체성을 가진 그들과 함께 무언가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오랫동안 간절했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별문제 없이 살아가는 거처럼 보이는 보통 사람이었지만 실은 삶의 기준과 원칙이 없는 아버지요 남편이요 남성이었다. 그러다 아버지학교를 만나면서 인생 일대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아버지학교를 통해 나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 진정한 남성상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멋진 남편이 되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깨지고 아파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통해 다듬어지면서 여기까지 걸어왔다. 이제는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며 부딪혀 배운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그동안 아버지학교에서 만난 많은 아버지들로부터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이 책에 담았다. 이제부터 우리가 어떻게 인생의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따뜻한 봄을 맞았는지에 대해서 들려 줄 것이다. 우리는 이 과정을 지나는 동안에 더 멋진 아버지, 더 괜찮은 남편, 더 성숙한 남성으로 거듭나길 소망해 왔다.
우리와 같은 소망을 품고 인생의 겨울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소망 성취를 위한 비법을 알리고자 함이 아니다. 거대 담론도 없다. 다만 지극히 사소한 일상에서 터득한 지혜와 소망을 가지고 다시 한 번 힘을 내자고 격려하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파이팅을 나누고 싶다. 아마 많은 이들이 우리의 파이팅에 공감할 것이다.
”진리는 길가에 버려진 돌멩이와 같다“는 말이 있다. 만고불변의 진리도 내 것이 되지 않으면 쓸모없다는 의미다. 이 책의 한 페이지만이라도, 앞만 보며 질주하는 바쁜 남성들이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벤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잠시 쉬어 감이 있어야 성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봐야 살아갈 날들을 위한 걸음에 힘이 생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가족과 이웃들과의 관계를 살펴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특히 누구에게도 말 못할 가족 간의 아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 가정의 행복을 소망하며 길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의 묘약이 되길 바란다.
까치는 집을 지을 때, 가장 튼튼한 나무의 원줄기를 기초로 바람이 가장 세게 부는 날 씨줄과 날줄로 베를 짜듯 촘촘하게 엮어서 만든다고 한다. 그렇게 지은 집은 강한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 박종태
● 본문 중에서
3주의 침묵 전쟁과 행복의 의미
벌써 3주째다. 이번 냉전은 꽤 길어지고 있었다. 짧으면 사나흘, 길면 일주일이 보통이었는데, 이번에는 3주를 훌쩍 넘겼다. 부부 간의 전쟁은 늘 그렇듯이 옮겨 적거나 기억할 만한 것도 못 되는, 아주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사소해도 너무 사소해서 굳이 사과할 필요를 못 느껴 넘어가는 듯 했으나, 충돌의 앙금으로 인해 관계에 금이 간 결과 아내와 나 사이는 조금씩 멀어졌다. 껄끄러운 거리는 날마다 증폭되었다. 거기다 자존심 문제까지 겹치면 아주 골치 아파진다.
디툼 없이 지내는 부부는 거의 없다. 하지만 티겨태격해도 부부로 사는 만큼, 그들만이 가지는 종전의 노하우가 있는 법이다.
우리 집에서 부부 싸움의 종전을 지휘하는 것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늘 내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먼저 사고하고 먼저 용서를 구하고 먼저 화해를 청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사소한 일로 토라져 있는 아내가 야속해서 나도 짐짓 모른 체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나 보자 하는 심정이랄까. 그러는 동안 시간이 휙 하고 흘러가 버린 것이다.
퇴근하고 만나자는 아내의 말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이 사람이 화해할 모양이네. 웬일이야? 한긴 3주나 끌었으니 자기도 지쳤겠지. 이제 이 찝찝한 냉전에 종지부를 찍는구나. 화해의 저녁이니 오늘밤에 맛있는 거 먹으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야지. 파주 쪽 맛집 검색이나 해볼까?
아내와 어떻게 화해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관심도 갖지 않고 그저 냉전을 끝내게 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이 났다.
”10분 후면 도착할 거예요. 내려와서 기다려요.“
어디로 갈까 고민하면서 집 앞에 도착했더니 아내가 싸늘한 기운을 내뿜으며 아파트에서 내려왔다.
”자유로 쪽으로 갈게.“
아내는 내 말에 아무런 대꾸도 않고 안전벨트를 맸다. 호수공원을 빠져나가 자유로로 들어섰을 때 차의 창문을 내렸다. 따사로운 5월의 밤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오늘 우리 사이도 이 바람처럼 훈훈해지겠구나‘ 싶어서 이미 내 마음은 녹기 시작했다. 그때 아내가 한마디 던졌다.
”박종태, 이 나쁜 놈아.“
_ Part 01 2장 「3주의 침묵 전쟁과 행복의 의미」 중에서
아버지라는 가정의 엔진
중학교 3학년에 다니는 아들을 둔 아버지의 하소연이다.
”제 방에 있을 때는 문 딱 걸어 잠그고 뭘 하는지 모르겠어요. 컴퓨터 게임이나 하겠죠. 밖에 나가면 친구들 하고 노느라 제 전화나 문자는 다 씹어요. 밤 12시 넘어 들어오는 건 예삿일이 됐고요. 아주 돌아 버리겠더라고요. 정말 이 놈 하는 꼴이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요. 안 되겠다 싶어서 방법을 찾았죠. 아무리 생각해도 이 놈 정신 차리게 할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더라고요. 매!“
아버지는 작심하고 아들을 매로 다스렸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이것이 최후의 방법이라는 생각에 혹독하게 매질을 했다. 저도 사람이니 이 정도면 깨달았겠지.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했단다. 하지만 그 후에 아들의 귀가 시간은 더 늦어졌다.
’매가 부족한가?‘
아버지는 아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론은 매가 부족하구나 싶었다. 그 정도 매로는 턱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자 아버지는 대형마트로 달려가 마대 자루를 사 왔다. 그리고 새벽 2시 들어온 아들을 붙잡아 10대를 있는 힘껏 때렸다. 퍽퍽 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통증으로 얼굴이 일그러지는 아들의 얼굴을 보면서 아버지는 생각했다.
”이제 제대로 된 것 같았어요. 정신이 번쩍 들었겠지 했다니까요. 근데 전혀 아니었어요. 다음날 아침에 보니까, 아예 가출을 해 버렸더라고요. 정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때린다고 해결 되는 게 아니구나 싶었지요. 우리가 자라던 시절엔 매 몇 대 맞고 나면 금방 반성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그랬는데, 요즘 애들에게 그런 게 안 통하는 것 같았어요. 면박 주고 체벌해서 아이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제 착각이었어요. 그때 제대로 깨달았습니다.“
_ Part 02 6장 「아버지라는 가정의 엔진」 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