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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사랑과 만날 때까지

9월의 사랑과 만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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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8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342g | 128*188*25mm
ISBN13 9791161907833
ISBN10 1161907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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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토요일이 휴일이어서 나는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슈퍼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저마다 흔들어대면서 계단을 올라 층계참에 접어들었을 무렵 2층에서 내려온 젊은 남성과 마주쳤다.
창문에서 비치는 빛에 떠오른 모습은 확실히 A호실의 히라노 씨가 틀림없었다. 키는 큰 편에 새하얀 이목구비가 단정했고 많은 사람이 ‘잘생겼다’고 형용할 법했다. 한편, 나약한 인상도 있었다. 또렷한 눈썹이나 아몬드 형태의 눈은 늠름해 보인다고 할 수 있었지만, 얼굴의 아래쪽 절반이 그 인상을 뒤집고 있었다. 축 처진 입술의 양 가장자리, 가늘어서 존재감이 없는 턱. 체격이 주는 인상─나쁜 자세, 얄팍한 상반신의 느낌 등은 바로 구라 씨가 말한 대로였다.
패션 감각에 대해서 구라 씨가 내린 혹평은 조금 과장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 수 있었다. 보라색 티셔츠와 초록색 바지는 적어도 패션 감각이 좋은 사람이 입을 만한 차림은 아니었다. 둘 다 오래 입어서 색이 바랜 탓에, 말만 들었을 때 생각나는 것만큼 터무니없는 인상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런 히라노 씨와 층계참에서 마주쳤다.
“저기, 안녕하세요.”
나는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B호실의 기타무라입니다, 그렇게 이어서 말하려고 생각했지만,
“앗.”
상대는 입안에서 웅얼거리더니─그렇다기보다 목 안에서 소리를 내는 듯했다─쩔쩔매며 목례로 답했다. 원래부터 자세가 어정쩡한 탓에 목이 앞으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 되었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서 ‘쩔쩔맨다’는 말이 제일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p.42~43

“마니아일까. 집에는 애니메이션인가 뭔가의 피규어가 있다고 했잖아. 피규어를 향해 말을 건다거나 하면 좀 그렇지─.”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문득 알아차렸다.
“뭐, 인형을 상대로 말하고 있는 내가 그런 말을 하긴 뭣하다 싶지만.
어쨌거나 히라노 씨. 그런데도 영업 일을 하다니 믿을 수 없어. 뭐랄까, 이렇게 쩔쩔맨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말했을 때 내 귀에 들릴 리가 없는 소리가 들렸다.
웃음소리였다. 아니, 목소리가 아니라 억누른 숨소리. 참다못해 웃음을 터뜨렸다가 정신을 차리고 바로 멈춘 듯한.
짧았지만 분명한 소리가 내 머리 바로 옆…… 벽에 뚫린 구멍 속에서 들려왔다.
--- p.46~47

“그렇다면 지난주에 약속한 대로, 저한테는 부탁을 드릴 권리가 있다는 거죠?”
“1년 후의 히라노 씨가 지금의 저한테요─?”
“네, 맞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2004년 9월의 기타무라 씨에게만 부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걸 지금부터 말하겠습니다. 괜찮겠어요?”
“네, 말하세요.”
딱히 달리 고를 수 없었던 대답을 작은 공간에 쏟아 부었다. 목소리는 그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시간, 다른 장소의 똑같은 공간 안에 전해진다─그런 식으로 되어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똑같이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상대의 말이 시간과 장소를 사이에 두고 내 귀에 울려 퍼져 왔다.
“기타무라 씨는 사진을 찍는 게 취미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저기 걸어 다니는 건 그다지 힘들지 않으시겠네요?”
“네에? 네, 그건 뭐…….”
“다행입니다. 그 점을 크게 사서 미행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미행이요?”
나는 등을 꼿꼿이 세웠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 p.74~75

최근에 빌딩 해체 공사가 있었는지 공터가 된 장소에 접어들자 히라노 씨는 발걸음을 멈추고 땅에 있는 무언가를 응시했다.
좌우를 둘러보고(나는 간신히 전신주 뒤에 몸을 숨길 수 있었다) 몸을 웅크리더니 그 무언가를 주워들었다.
전신주와 건물 틈 사이로 카메라를 망원경 대신해서 들여다보자 히라노 씨가 뭘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작은 콘크리트 덩어리를 주워들어 무게를 시험하듯이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
한 손으로 잡으면 비집고 나올 정도의 크기, 여기저기 울퉁불퉁하게 모가 난 형태. 그런 덩어리를 여러 각도로 바꿔가며 잡고 나서 납득이 가는 형태를 찾았다는 듯한 얼굴을 하더니 쇠망치를 휘두르듯이 내리쳤다.
몇 번인가 그 동작을 반복하고 나서 팔꿈치를 어깨 높이까지 들더니, 손을 뒤로 해서 흉물스런 덩어리의 끝을 자신의 뒤통수에 갖다 댔다.
단단함과 차가움을 맛보듯이 잠시 동안 눈을 감고 나서,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주운 물건을 휘감았다. 그리고 회사 업무 관련 물품이 들어 있을 가방에 넣었다. 묘하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서.
그건 대체 뭐였을까.
--- p.9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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