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원이를 발견했다.
원이는 어제 내가 몸을 뺐을 때처럼 옆으로 누워 있다. 길게 뻗은 모습. 꼬리도 아무렇게나 뻗어 있다. 단번에 이상한 걸 알 수 있다. 특이한 냄새도 났다. 원이가… 죽은 것이다! 난 길게 울어 알렸다.
“와아아아아아앙.”
엄마가 문을 연다. 앞에 놓인 원이를 손으로 건드니 힘없이 흔들린다. “어머. 어머…” 손을 대 차가운 체온을 알아차린다.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헤어짐」중에서
“귀엽다. 포카~ 정말 초록털이야! 나 인터넷에서 고양이 많이 봤는데, 초록털도 있었네.”
“그치, 원래 초록털 고양이는 없는데. 신기하지? 얘는 정말 똑똑해. 저번에 리모컨으로 텔레비전도 켜서 봤어.”
“거짓말하지 마! 그게 말이 돼”
“진짜야! 인터넷도 했어! 컴퓨터 키보드를 눌러서 검색도 했다니까!”
“거짓말쟁이 영수.”
“‘닭가슴살 착불 가능한’이라고 검색했었는데…….”
---「덜룩이 모시기」중에서
영수는 믿을 게 못 된다. 은아라는 여자 사람과 뭘 할 궁리밖에 모른다. 남자 사람은 때가 되면 머리가 돌이 되는 것 같아. 우리 종족과는 반대다. 영수에게는 큰 삽을 줄 것이다. 똥이나 치우게 해야지.
---「무지개다리」중에서
머리카락에 스며든 붉은 방울이 눈까지 내려와 속눈썹에 앉는다. 숨이 옅어지고 있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맞아! 119!
뭉툭한 앞발이 원망스럽다.
’ㄷ?ㅇㅏㅈ세요ㅁㅓ리아팡ㅛ샨려줏ㅔ요’
곧이어 전화가 온다. 계속 온다. 수화 버튼을 눌렀지만, 묻는 말에 답할 수 없다. 냐옹이라 하면 장난 전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지개다리」중에서
가출한 고양이들은 배고픔과 세상의 위협에 지쳐 머리가 깡그리 초기화된다. 후회하고, 되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되돌아가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 모른다’. 가슴속 깊이 그리운 사람 가족이 응어리지지만, 느낌만 알 뿐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무언가가 그리워. 왜 그런지 모르겠어!” 써니가 한 말이다.
---「미래」중에서
링크된 인스타그램 주소에 들어가보았다. 세상에, 그링그링의 사진이 천 장도 넘게 올라와 있다. 페이지다운 버튼을 수없이 눌러도 무한히 이어진다. 비슷하고 똑같은 사진을 많이도 남겨놓았다. 앞발 핥는 사진, 뛰어노는 사진, 석양을 바라보는 사진, 방바닥에 뒹구는 사진… 팔로워도 십만이 넘었다.
사람들은 고양이에게 말하는 것처럼 댓글을 남긴다. ‘그링그링. 이쁘다냐옹!’, ‘오늘은 뭐 먹었냥!’ 이런 식이다.
그링그링의 답변은 더 가관이다. ‘민물장어 데친 걸 먹었는데, 참 맛있다냐옹’, ‘내 뜨거운 품속에 들어올래냥?’, ‘네 냥이는 못생겼다냥’.
---「똑똑의 축복」중에서
“포카, 왜 이렇게 살기 힘드냐.”
짠내 나는 얼굴이 작아지고 커지길 반복한다.
“이 세상 떠나고 싶다.”
바보. 입술을 콱 밟았다.
“웅냥냥망 늉늉. 미아아냥 냐우냥.” [바보 같은 영수. 나가서 공짜 밥이나 채워라.]
“나도 그냥… 고양이처럼 살고 싶다.”
무슨 말이냐? 고양이의 삶도 생각보다 복잡하단다.
영수는 옆으로 눕는다. 슬픈 새우가 된다.
---「책임과 의무」중에서
“포카가 요즘 계속 밖에 돌아다녀. 집에 안 들어와.”
“살림 차린 거 아니냐.”
“살림? 아빠, 포카는 고자야.”
밥을 먹던 사람 가족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된다. 좀더 늦게 들어올 것을, 타이밍이 안 좋았다. 슬쩍 삼이 옆에 엎드려 아무것도 모르는 선량한 집고양이처럼 눈을 끔뻑끔뻑 게슴츠레 떴다.
---「써니」중에서
“아이씨. 엄마냔인 줄 알았네. 왜 안 꺼져? 먼구놈아~!”
“둘째야, 이제 엄마냥이 안 와.”
“아니야. 와.”
“안 와. 못 와.”
“온다고, 이 먼구야. 엄마냔이 날 얼마나 사랑하는데. 참 멍청하구나? 먼구같이.”
녀석은 고집이 상당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희망만 가진다. 초점 없는 눈으로 기약 없이 창고 문틈을 바라보며 언제까지 엄마냥을 기다릴 건지……. 굶어 죽기 일보 직전에야 창고를 나올 새끼냥 스타일이다. 이 조그만 몸으로 따뜻해질 4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콘크리트 바닥을 헤매며 벌레 하나 주워 먹지 못할 것이다.
---「고양이의 복수」중에서
“무덤에 똥을 싸지 말라고, 민지.”
“포카, 이 둥그런 작은 산을 봐봐. 볼록 솟아올라서 완전 똥을 싸고 싶게 생겼잖아.”
민지는 ‘사람의 무덤’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런데 기어코 묘지 앞에 싸버린다. 다행히 뒤처리는 잊지 않았다. 이리저리 잡풀을 끌어 모아 흔적을 덮는다. 난 김 누구누구 씨에게 대신 사과했다. 머리 숙여 눈감아 두 앞발을 모았다.
---「낭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