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5
인류의 역사에서 다양한 시대를 통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여러 망상들 가운데 가장 기이한 망상은 아마도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 애정이라는 요소를 배제할 때 더욱 진보된 사회적 행동규범을 갖게된다. ’ 는 관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소위 ‘경제학’ 이라 불리는 현대 학문인 것 같다.(믿을 근거가 가장 부족한 망상임에는 틀림없다)
p.52
상인에 대해 상대적으로 낮은 평판을 갖는 사회 현상의 근원이 뿌리박고 있는 심층은 바로 이것으로, ‘상인은 어느 경우에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 는 사회적 인식이다. 비록 상거래가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활동이긴 하지만, 그 동기는 전적으로 상인의 사적인 이윤 추구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즉, 상인은 모든 활동에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최대 이윤’ 을 사회에, 혹은 소비자에 ‘최소 분배’ 를 지상 최대 과제로 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법문 조항으로 제정하여 이러한 사회와 상인 사이의 이해관계를 공식적으로 공포함으로써, 상인이 개인의 최대이윤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하는 동시에 똑같은 권리를 사회와 소비자에게도 부여한다.
즉, 구매자의 의무는 물건 값을 깎는 것이고 판매자의 의무는 그 값을 속여 파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보편적 이치라고국가가 목소리 높여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중은 상인이 자신의 의무와 권리에 따라 장사하는 것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비난하며 그들의 인식 속에 상인은 하층 계급에 속한 속물들이라는 영원한 낙인을 찍고 있는 것이다.
p.74
지금 단계에서는 사회 구성원 간의 부의 불평등이 국민들에게 유익할지 유해할지는 논리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부의 불평등이 국민들에게 절대적으로 유익하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의 섣부른 억측은 다른 논제들에 대해 경제학이 범하고 있는 오류들과 동일한 바탕에 뿌리를 두고 있다. 판단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는, 부의 불평등이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보다도 불평등이 발생하는 ‘방법’ 에 따라, 그 다음으로는 불평등을 계속 유지시키는 ‘목적’ 에 따라 유익한지 유해한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부당한 방법으로 발생한 부의 불평등은 그것이 사회에 들어와 자리 잡는 과정 중에 국민에게 해를 끼치고, 그것이 부당한 목적을 위해 유지되는 한, 그 존재 자체로 계속해서 해를 끼친다. 반대로, 정당한 방법으로 발생한 불평등은 그것이 사회에 들어와 자리 잡는 과정 중에 국민에게 유익을 주고, 고귀한 목적을 위해 쓰일 때에는 그 존재 자체로 계속해서 더 많은 유익을 준다. 달리 말하면, 국가의 공정한 법치法治 아래 마음껏 경제활동을 펼치는 국민들은 사회로부터 검증받은 개개인의 다양한 역량을 그 필요가 있는 곳에 맘껏 발휘하여 그 계급과 업적에 따라 금전적 보상이나 사회적 지위를 받기에, 결과적으로 불평등 속에 조화롭게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3 반대로, 무법이 횡행하는 국가에서는 서서히 가세가 기울어가는 자와 배반으로 가세를 일으켜 세우는 자가 합작하여 예속의 씨줄과 성공의 날줄로 짜인 시스템을 만든다. 이 시스템을 통해서는 사회 구성원 간의 협력을 통한 조화로운 불공평 대신, 죄악과 불행이 사람들을 폭압하는 악독한 불공평이 발생한다.
p.136
내가 주장하는 대로 사회주의가 원칙대로 보수가 지급되는 군대에서 그 뿌리를 잘 내렸는지, 아니면 나의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원칙대로 보수가 지급되는 공장 직공들 사이에서 그 뿌리를 잘 내렸는지를 확인하고 발표하는 일은 나의 반대론자들에게 맡기겠다. 그들이 어떤 결론을 내리든 나는 나의 소신에 따라 다음과 같이 답한다.B17
지금까지 논문 전체를 통해 다른 어느 것보다도 자주 역설해 온 주장이 하나 있다면, 바로 ‘절대적 평등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어느 사회든지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있기 마련이고, 어떤 경우에는 한 사람의 지배자와 다수의 피지배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암시해왔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지배계층에게 권위를 부여하여 보다 뛰어난 두뇌와 사리분별을 통해 피지배계층을 이끌며, 때로 필요하다면 강제력마저 동원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유익하다고 침이 마르도록 주장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경제학에 대한 신념은 3년 전 맨체스터에서 연설한 발표문 가운데 한 어구 안에 모두 담겨 있다.
“칼을 든 병사뿐만 아니라 호미를 든 병사도 필요하다. ”
또한《 근대화가론》 마지막 권에 적은 한 구절 속에 요체화되어 있다.
“통치와 협력은 만유의 생명의 법칙이고, 무정부 상태와 경쟁은 만유의 죽음의 법칙이다. ”
이 신념들은 사유재산권을 무효화시키자는 사회주의 사상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고, 논문 전체를 통해 도리어 사유재산권을 확대하자는 나의 취지가 드러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가난한 자들이 부자들의 재산을 침해할 권리가 없음이 오래 전부터 공론화되어 왔듯이, 부자들 역시 가난한 자들의 재산을 침해할 권리가 없음도 공론화되는 것이다.F18"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