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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

: 무한도전에서 나꼼수까지, 한국 대중문화의 안과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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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비평/비판 top10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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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3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506g | 153*224*30mm
ISBN13 9788993985719
ISBN10 899398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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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면과 상황에 따라 문화는 때로는 지배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저항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문화의 이 양면성은 ‘의미’라는 것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언제나 미끄러지고 어긋나기 마련이라는 점에도 관련이 있다. 요컨대 문화 비평은 지배적 의미에 대해 항상 의심하고, 상식과 자연스러움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문화의 정치적 보수화를 끊임없이 비판한다.

〈무한도전〉은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의 일상과 노동에 스민 다양한 풍경들을 ‘리얼 버라이어티 쇼’라는 형태로 그리는 풍경화다. 그속에는 무한도전의 시대 속에서 서로 무한 경쟁해야 하는 무한 이기주의가 있고, 자신의 노동을 다각화함해서 생존 확률을 높여야 하는 노동자들의 선택이 담겨 있으며, 능력 있는 자의 ‘라인’에 기대거나 편을 갈라서 살아남거나 분할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있다. 기본적으로 몸을 던져야 하는 노동의 원초적 처절성이 있고, 동시에 다양한 기능 분화를 통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거나 일상과 노동이 분리되지 않고 철저히 자본의 권력 앞에 동일화되는 과정이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노동을 강요한 자본에 의해 다시 소외되는 아이러니가 있다.

투사가 멘토로, 거리 시위가 토크콘서트로, 정치적 비판이 정치 엔터테인먼트로 변한 상황, 즉 잘못된 권력을 향한 투쟁과 평등에 대한 요구로서의 정치가 부드럽고 유연하고 시끌벅적한 ‘즐거움’의 정치로 변한 상황, 우리가 〈나는 꼼수다〉 현상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은 정확히 ‘즐겨라!’의 정치적 버전이다. 문제는 이 ‘즐거움’의 정체다. 그리 놀랍지 않게도 언뜻 신선해 보이는 〈나는 꼼수다〉의 새로운 미디어 실험과 직설적 언사들이 도달하는 ‘정치’적 비전의 장소란 결국 다시 ‘국회’이고, ‘시청’이고, ‘청와대’다. 바뀌는 것은 장소가 아니라 인물이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유대인 수만 명을 가스실에 보내 기소된 아이히만이라는 끔찍한 ‘악’의 아이콘이 ‘사탄’보다는 ‘광대’를 연상시킨다고 썼다. 악은 근엄한 진지함이 아니라 ‘남들도 다 하니까 나도 하고, 내게 맡겨진 일이니까 하는’ 그 ‘일상의 습관’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타인의 존엄성을 해치는 폭력을 저지르면서도 성찰할 줄 모른 채 그저 관습적으로, 재미로, 심심하니까, 본능이니까 한다면 그게 바로 가장 무서운 악의 얼굴이다. ‘알몸 졸업식’부터 ‘노숙자 폭행’ 동영상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약자에게 가하는 악이 사실은 즐거운 광대의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날이 갈수록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해지는 이 끔찍한 멘탈리티의 창궐 뒤에는 ‘남을 죽이고 나만 살면 되는’ 극단적인 자본주의 논리라는 대타자가 버티고 있다. 자본주의 또한 언제나 ‘쾌락’을 약속한다는 점에서 ‘광대’와 닮아 있다. 우리를 즐겁게 하는 일상의 쾌락 속에서 가장 무서운 악이 출몰하는 것이다. 그 일상의 악과 ‘김길태’와의 거리는 놀랄 만큼 가깝다.
-본문 205쪽

시대는 ‘개판’인데, ‘멘토’들은 다 착하다. 이것이 우리 시대 ‘멘토’ 현상이 가진 핵심적 성격이다. 사회적 모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희망’과 ‘창조’를 말하고, ‘자기 혁명’의 기술을 전수하는 이 착한 멘토들은 사실 ‘개판’이 되어버린 시대와 정면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처럼 부드럽고 조용하게, 착실하고 성실하게, 쉽게 말하면 ‘착하게’ 이 고통을 견뎌내고 승리하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멘토들이 가진 ‘지혜’의 고갱이다. 이 사람들을 ‘꼰대’와 차별화시키는 특징은 수평적 소통 능력과 부드러움이며, ‘꼴보수’와 분리시키는 특징은 사회적 책임의 강조이고, ‘운동권’과 구별 짓는 특징은 투쟁과 갈등이 아닌 화합과 개혁에 대한 신념이다. 이 착한 멘토들은 자신들을 비판하고 소외시키고 투쟁으로 내몰던 이전의 어른들하고는 다른 부류가 된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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