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종합하여 보았을 때, 칼빈주의는 다른 어떤 운동보다도 가장 국제적으로 기념할 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사 속의 다양한 사상운동들에 관하여 평가해 볼 때, 제네바 종교개혁자의 긍정적인 누적 효과는 루소, 니체, 마르크스, 그 외 다른 많은 사상가들이 기여한 영향보다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칼빈보다 더욱 큰 기여를 한 성직자나 신학자는 거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현대의 논평자들이 “칼빈주의의 신선함, 대담무쌍함 그리고 곧 다가올 유행성에 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C. S. 루이스(C. S. Lewis)의 놀라운 언급이 과연 정확한지를 평가하기에 칼빈 탄생 500주년이 시의적절한 때라는 것을 역사에 조예가 깊은 사상가와 학생들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매우 지당한 요구사항이다. 뿐만 아니라 루이스가 언급한 그 유행성은 어떻게 그리고 왜 후일의 으르렁거리는 반(anti)칼빈주의적 사상가들(심지어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과 같은 칼빈주의에 대해 악의에 찬 적수들)조차도 미국 땅에서 독재자에 대한 저항을 정당화하기 위해 옛 칼빈주의적 위그노들로부터 표어를 차용하는지에 관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비록 현대의 연구자들이 칼빈의 위대한 유산에 관하여 여전히 애써 못 본 체 하고자 할지라도, 그가 남긴 유산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의 일치된 목적이 주어진 이미지를 더욱 잘 재건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시도는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 pp.14-15
“따라서 칼빈주의자가 율법주의자는 아니지만, 칼빈주의자는 하나님의 율법이 지닌 완전성과 지혜를 존중하는 것을 자기 자신보다 더욱 신뢰한다. 칼빈을 따르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지닌 본성적 능력에 대하여 대단히 낮게 평가하며, 대신 하나님이 나타내 보이신 율법에 관하여 대단히 높게 평가함으로써, 그들의 입헌제도와 법률을 긍정적 제도로 이해하며 고안하고 지지한다. 뿐만 아니라, 관용을 법의 목표로 삼는 동시에 양심의 순수함이 그 결과로 나타나야 함을 본질적인 의도로 추구한다.”--- p.27
“신약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는 바울 사도의 견해에 칼빈은 동의하였다. 종교개혁 이후의 위대한 작곡가인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가 그의 모든 원본 악보 끝에 “SDG”라는 머리글자를 써 넣은 것 또한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이는 라틴어로 , 즉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뜻이다. 오르간 연주자인 바흐는 칼빈주의의 특징을 알고 그것을 자신의 재능에 적용한 것이었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몇몇 크리스천은 그리스도의 주권을 자신의 직업에 적용시키고, 다양한 영역에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도자로 봉사하였다. 예술분야의 렘브란트(Rembrandt), 시문학의 밀튼(Milton), 정치이론의 알투시우스(Althusius), 국제법의 그로티우스(Grotius), 경제학의 아담 스미스(Adam Smith), 그 외의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칼빈주의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신의 소명을 갈고 닦아 성취하였다. 칼빈의 사상은 인간 생애의 수많은 직업들의 발전과 진보와 해방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 pp.39-40
“칼빈을 터무니없는 자본주의자로 묘사하는 일반적 오류는 1562년 제네바 교리문답에 포함되어 있는 업무 시작 전에 드리기를 권장하는 기도문과 상반되는 것이다. 그 기도문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자신의 일에 복을 내려달라고 기도하도록 인도하는데, 이는 단지 하나님이 복을 내리시지 않으면 “어떤 것도 잘 되거나 번창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소명을 받은 근로자들을 성령님이 도와주시길 간구하였는데, 이를 통해 “그들이 어떤 사기 행위나 속임수를 쓰지 않고, 그로 인해 스스로 부유하고자 하는 욕구 대신 그들의 명령을 따르기를” 원하였다. 이와 더불어, 칼빈은 근로자들이 가난한 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며 부자들이 자만하지 않도록 기도하였다. 칼빈은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기 위하여 가난이라는 쓴 약이 필요하다면 그들의 부를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칼빈이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냉정한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근로자들이 “의심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인내하며 기다리도록” 그리고 “순전한 선함으로 전적인 확신 안에 거하도록” 기도하였다.”--- pp.42-43
“칼빈 신학의 핵심과 정신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이 신학이 겸손을 필요로 하며 그에 따라 겸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의 공로로 선택받을 수 있다는 생각과 관계가 있건, 하나님이 정하신 선택의 윤리적 기준에 상반되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선택받므 수 있다는 생각과 관계가 있건, 오만은 진정한 칼빈주의의 부산물이 아니다. 하지만 칼빈의 사상에 대한 왜곡이 이러한 견해에서 도출된 것일 수도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역을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 아래 있는 인간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칼빈의 믿음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이러한 균형을 잘 유지한다면, 다른 사람들과 자신이 속한 조직을 더욱 잘 섬기게 될 것이다.” --- pp.117-118
“칼빈 서거 400주년을 맞이하여, 휘트(D. M. Whyte)는 스펄전의 칼빈주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스펄전이 자랑한 것은 다음과 같다. “나는 존 칼빈의 계보를 잇는 진정한 칼빈주의자이며, 나를 비판하는 어느 누구보다도 칼빈의 저작을 많이 읽었을 것이다.” 그는 칼빈이 “오래된 복음”을 정확히 번역하였다고 믿었기 때문에 칼빈을 존경하였다. 스펄전은 자신의 제자들로 하여금 억지로라도 칼빈의 저작을 읽도록 권하기도 하였다. “여러 주석가들이 있지만 나는 존 칼빈이 가장 공정하다고 여긴다. 그의 해설을 보면, 그는 오늘날의 사람들이 ‘칼빈주의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견해를 항상 고수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성경구절이 예정과 은혜의 교리를 담고 있는 부분에서 절대 망설이지 않고 내용을 풀어낸다. 그러나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성경구절들이 인간의 자유로운 행동과 그 책임을 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경우에도, 그것들이 지닌 공정하고 통합적인 의미를 비켜가지 않고 상세히 해설한다.””
--- p.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