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점점 더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유방암은 더 많이 생깁니다. 특히 젊은 사람의 유방암 발병이 늘어납니다. 사람들의 식생활은 더 안 좋게 흘러갑니다. 사람들이 말로는 건강한 음식을 찾지만 병이 걸려서도 쉽게 식생활 습관을 바꾸지 못합니다. TV에선 요리 프로그램이 넘쳐나지만 흥미 위주이고 건강적으로는 지극히 불량합니다. 요리사가 나서서 추천하는 맛 위주의 음식은 건강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소비자들도 그런 음식들을 좋아합니다. 건강하지만 벌레 먹고 말라비틀어진 농산물은 중간 상인들 손에서 이미 버려집니다. 농민들은 건강하지 않지만 보기 좋은 농산물을 생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악순환을 거듭합니다. 이제 의사로서 어떤 재료로, 어떻게 요리해야 이 위험한 세상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제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글을 시작하며
내가 처음 유방의 이상한 염증을 본 것은 20년 전이었다. 지금까지 본 것과는 전혀 다른 염증이었다. 끈적한 것이 가득 차 있고 치료가 잘 되지 않았다. 항생제를 써도 듣지 않고, 째도 염증이 잘 나오지 않으면서 몇 달씩 지속되었다. 심지어 어떤 환자들은 열이 40도나 올라가고 관절이 아프고 피부에 발진이 생기기도 했다. 꼭 류마티스 증세와 비슷했다.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입원을 시키고 스테로이드를 썼다. 염증이 몇 개월씩, 심지어 일 년을 넘기니까 장기적으로 쓴 스테로이드 부작용 때문에 환자들은 불편해하고 약을 끊으면 다시 재발하곤 했다. 나도 무슨 병인지 몰랐기 때문에 환자들한테 이 병을 설명할 수도 없고, 낫지도 않아서 결국 몇 명은 유방암이 아닌데도 유방을 전부 제거하는 수술을 권유했다. 지금은 그 환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그 당시는 아무도 이것이 무슨 병인지 몰랐다. 대학 병원은 유방암 위주의 병을 다루니까 이런 염증들은 개인 병원을 운영하는 내 몫이었다. 처음에는 염증 환자들이 일 년에 한두 명 정도니까 시간이 지나면 잊었는데, 해마다 이런 환자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나름대로 치료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왜 이런 염증들이 생기는 걸까? 그때 무심히 들어 넘겼던 모유에서 환경호르몬이 나온다는 말이 생각났다. 직감적으로 이것이 원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 23~24쪽)
자가면역질환 치료는 증상이 심하면 면역 기능을 줄이는 역할을 하는 스테로이드를 쓴다. 완치시키는 약은 아니다. 단지 심한 증세를 완화하는 약이다. 마약처럼 좋은 효능은 있지만 장기간 쓰면 입맛이 당기고 몸도 붓고 부작용이 심하다. 따라서 의사들은 이 처방에 주의를 요한다. 그런데 자가면역질환을 앓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낫는 경우가 있기도 한다. 병의 원인도 모르지만 이런 자연 치유의 이유 또한 모른다. 나는 이 ‘자연 치유’에 주목했다. (…) 그때부터 나는 항생제나 스테로이드를 쓰지 않고 관찰만 하는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한국유방암학회에 과거 스테로이드를 쓰고 유방 절제까지 한 과정부터 현재 관찰만 하는 환자 38명의 치료 과정을 보고하게 되었다. 물론 그 이후 관찰만 하는 치료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요즘은 이런 유방 염증이 많이 생기고 있다. 아주 폭발적으로 늘었다. 일 년에 수백 명은 족히 생기는 것 같다. 환자들에게 나는 약을 쓰지 않고 수술도 하지 않는다는 치료 방침을 얘기하고, 이 병은 오래 걸리지만 완치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고 치료를 시작한다. 관찰한다고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2주일에 한 번 정도 병원을 방문하면 끈적끈적한 고름 부분들을 정리해주고 상태를 살펴본다. 그리고 병의 원인이 되는 환경호르몬과 관계된 음식물 교육을 더 열심히 한다. 어떤 경우는 음식물 교육만 해도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이제는 이러한 유방 염증이 환경호르몬과 관계있는 병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면서 나는 환경호르몬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본문 25~27쪽)
의사 입장에서 보면 남들이 모르는 비법을 가지고 용하게 병을 치료하는 명의는 없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명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한테 맞는 의사를 찾는 것이 좋다. 몇 가지 기준을 정하고 병원을 찾으면 누구나 자기 병을 고칠 명의를 만날 수 있다. 병은 사람마다 생기는 원인과 치료가 다르다. 그렇다면 전문가인 의사가 병 진단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다양한 치료법을 생각하면 치료 결과는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게 봤을 때 환자에게 권유하는 병원 이용 방법은, 첫째, 우선 동네 의원을 이용하라. 3시간 대기 3분 진료가 많이 나아졌지만 대학 병원은 여전히 복잡하고 불편하다. 과거와 달리 우수한 장비를 갖추고 대학 병원 급의 실력을 갖춘 개업의들이 많다. 해당 분야 논문도 발표하고 학회 활동도 열심히 하는지 알아보면 된다. 인간적으로나 실력으로나 일단 믿음이 가면 그냥 맡겨라. 당신만 믿는다는 환자의 한마디가 의사에게는 힘을 주는 동시에 상당한 부담도 준다. 의사는 밤새워 최선의 치료를 고민할 것이다. 의사 자신이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스스로 좋은 병원을 소개할 것이다. 의료는 한 가지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비전문가가 인터넷을 뒤지고 비슷한 병을 앓은 이웃에게 귀동냥한다고 쉽게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믿음이 가는 의사에게 맡겨라. 본인이 고민하지 마라 . 둘째, 많은 대안을 제시하고 모르는 부분은 인정하는 의사를 택하라. 흔히 의사가 여러 가지 대안을 얘기해주면 환자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오히려 못 미더워한다. 하지만 의료는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많은 치료 방법이 있고 환자에 따라 어떤 치료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상의하는 의사를 택하라. 의문이 있으면 다른 의사에게 2차 의견을 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솔직히 모른다고 고백하는 의사는 신뢰할 수 있다. 의사가 모름을 인정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일방적이어선 안 된다. 우선은 믿음이 가는 의사에게 맡겨라. 그리고 자기가 구한 정보를 솔직히 상의하라. 서로 신뢰하는 관계에서 자문을 구한다면 누구나 최선의 방법을 얻을 수 있다. 명의는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여러분 가까이 있고 누구나 구할 수 있다. ‘나도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인데’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다. 그들은 우선 의료진 선택을 의심하고, 그리고 자기가 아는 의학 지식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이런 경우 병원을 자주 옮기기도 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가 안다는 것이 꼭 알아야 할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말이 실감된다. (본문 47~48쪽)
현미채식을 시작하자 가장 큰 변화가 대변이었다. 엄청 많이 나온다. 현미채식을 시작한 사람들이 앉으면 가장 먼저 얘기하는 것이 대변 이야기이다. 자랑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매일 대변을 본다, 양이 엄청 많다, 냄새가 향기롭다, 기분이 너무 좋다 등등. 처음 만난 젊은 아가씨도 모르는 사람에게 부끄럼 없이 얘기한다. 더럽지도 않고 냄새나지도 않고 그저 기분 좋을 뿐이다. 대변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이다. 특히 외과 의사에게는 더 그렇다. 사람들의 대변 상태를 보면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 외과 의사가 병을 진단하는 데 대변은 중요하다. 문진을 하면서 대변을 잘 봤는지, 대변 색깔은 어떤지 확인하는 것은 외과 의사로서 기본자세다. 특히 복부 수술 환자가 가스가 잘 나왔는지, 대변을 봤는지는 회복 과정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수술을 집도한 외과 의사는 온통 대변에 관심을 기울인다. 가스가 나왔다고 하면 물부터 마시게 하고 대변이 나오면 밥을 주고 퇴원을 준비하게 된다. 환자 상처를 치료하고, 대변을 잘 보는지 점검하는 일이 외과 전공의들의 중요 업무이다 보니 외과 의사에게 대변은 친숙한 존재다. 입원 기간 동안 대변을 보지 못하면 손가락으로 항문 검사를 하고 대변이 많이 차 있으면 손으로 파내는 것도 전공의 몫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대변이 더럽다고 하지만 나를 포함한 외과 의사들에게 대변은 더러운 존재가 아니다. 그냥 장기의 한 부속물, 그것도 반가운 존재다. (…) 현대에는 만성 변비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온갖 치료를 다 해도 안 된다고 얘기하지만 내가 권유하는 대로 먹어서 해결 안 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누군가는 10년간 변비에 시달리다가 시원한 대변을 본 후 펑펑 우는 경우를 본 적도 있다. 해결은 간단하다. 식이섬유를 많이 먹으면 된다. (본문 84~87)
나는 매일 엄청난 양의 대변을 보고 있다. 이유를 많은 양의 채소를 먹는 것과 대변 보는 자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보통 좌변기에 앉아서 대변을 본다. 그런데 이런 나의 대변 습관에 일대 변화가 생겼다. (본문91쪽)
밑줄 칠 곳이 너무 많은 책이다. 저자의 병원 근처에 살고 싶다. 그러면서 그냥 그가 하는 대로 다 따라 하고 싶다. 식습관이며 그것을 위해 짓는 농사, 그리고 음식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을 그냥 따라만 하면 무조건 건강해질 것 같다. 꼭 운동을 심하게 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니 이보다 더 편할 수는 없다. 『제4의 식탁』은 의사의 역할을 강조한다. 식생활이 생활습관병의 원인이기 때문에 환자에게 단순히 영양학적 관점에서 음식을 권유하는 수준을 넘어 환경호르몬 배출에 좋은 음식을 알려줘야 한다고 말한다. 체 게바라, 노먼 베쑨, 장기려에 이어 ‘요리하는 의사 임재양’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