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용감하게 뛰어든 그곳은, 신후가 당연히 혼자 있다던 그곳은, 상당히 민망한 상황에서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게 된 그곳은, 다름 아닌 목욕간이었다.
지난밤을 꼬박 새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오늘 하루를 정신없이 보낸 신후였다. 휘열 때문에 머릿속까지 어지러웠다.
상단에 돌아오자마자 뜨거운 물에 피곤한 몸을 담그고 생각을 정리 중이었데, 막 목욕을 마치고 일어서던 찰나 혜온이 불쑥 쳐들어오고 말았다.
놀란 것으로 따지면 벗고 있던 신후가 더 컸을 터.
“느닷없이 이 무슨……!”
혜온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신후는 벗어 두었던 욕의를 황급히 둘러 몸을 가리고 빠르게 물속으로 들어가 앉았다.
“그렇구나. 내가 느닷없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쳤구나. 해서 너의 벗은 몸을 보고야 말았어. 그래서…… 싫은 것이냐?”
저 도도한 표정, 발칙한 언변, 옷을 뚫어 버릴 것 같은 저 눈빛.
분명 사내로 태어났다면 그 절륜함이 넘쳐 수많은 여인네의 넋을 빼 놓고도 남았을 것이다, 라고 신후는 다소 황망한 생각을 해 보았다.
새벽녘의 잠든 그녀가 순수했다면, 물기 젖은 제 몸을 빨아들일 듯이 쳐다보는 지금은 상당히 불순했다.
꼼짝 않고 숨만 내쉬며 서로만을 바라보길 한참.
두 사람을 가둔 목욕간 안의 공기가 촉촉해서 되레 자극적이었다. 경계심이 느슨해지고 감추려고만 했던 마음은 출렁거리며 둑을 허물었다.
바쁜 와중에도 숨을 쉬듯 그녀를 생각하며 하루를 보낸 신후였다. 지금 이 상황이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이루 말할 수 없이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신후의 먹빛 눈동자가 흡수하듯 혜온을 바라보았다.
혜온은 주저 없이 마주쳐 오는 대장의 눈빛에서 묘한 압박감을 느꼈다.
무심한데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눈빛. 어딘가 모르게 맹렬하기까지 하여 조금만 엇나가면 위험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싫지가 않았다.
“참으로 담대한 분이십니다. 사내의 벗은 몸을 그리도 뚫어지게 쳐다보시다니요.”
“해서 물었잖느냐. 내가 보는 게 싫으냐고.”
하아, 이 여인을 어찌 상대한다? 나가란다고 곱게 나갈 것 같지도 않은데. 불순함에는 불순함으로 상대해야 하는 건가.
신후는 시름을 삼키며 반듯했던 입술선을 비긋이 기울였다. 그러고는 적당히 음험해진 눈빛과 적당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혜온에게 말했다.
“싫다니요, 그럴 리가 있나요. 원하시면 방금 입은 이 옷을 벗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좀 더 보시겠습니까?”
신후가 여민 옷자락을 다시 펼치며 일어서려고 하자, 혜온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하고 말았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의 젖은 몸을 쳐다봤지만 속은 달랐다. 심장이 밖으로 뛰쳐나오겠다고 발악하듯 뛰어 대고 있었다.
그런데도 혜온은 편전에서 신료들을 대할 때처럼 냉정하게 그를 대했다.
“되었다. 뭐 볼 거 있다고 두 번씩이나 봐. 얼굴도 제대로 안 보여 주면서. 수작질하는 게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야.”
“뭐, 좋을 대로 생각하십시오. 한데 언제까지 그렇게 서서 지켜보실 겁니까? 안 나가십니까?”
“아까 보니까 등에 검상 자국이 길게 있던데, 어떻게 해서 생긴 상흔이냐.”
검상 자국뿐만이 아니었다. 활에 맞은 자국도 있었고, 크고 작은 상흔이 적지 않았다. 그가 살아온 인생길이 얼마나 험난했는지를 말해 주는 것 같아 혜온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신후는 목간통 위로 양팔을 올려놓고 등을 편히 기대었다. 자연스레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턱이 들렸다. 지그시 내리뜬 눈꺼풀은 나른해 보였으나, 그 안의 눈빛은 치열했다.
그렇게 속을 감춘 눈빛으로 혜온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 몸에 있는 상처들…… 그저 궁금하신 겁니까, 아니면, 걱정이 되시는 겁니까.”
등 전체를 사선으로 그어 댄 검상은 7년 전 유배 길에서 자객들의 습격을 받았을 때 입은 상처였고, 활에 맞은 상처는 독화살이 박혔던 자국이다.
그 밖의 자잘한 상처들은 무예 수련을 하거나 해적들을 소탕하면서 얻은 것들이었다.
“궁금하기도 하지만…… 걱정이 더 크다. 마음이 안 좋아.”
신후에게 가닿는 혜온의 눈빛이 애잔해졌다. 그의 가슴이 따끔거렸다.
사내 앞에서 저리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 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상처가 한두 개가 아니던데, 어찌 그리 힘들게 살았어.”
순간 신후의 가슴에서 불길이 이는 듯했다. 감출 게 아니라 터뜨려 버리고 싶은 욕구가 은밀하게 치솟았다.
다른 사람이 되어 찾아왔는데도 또 제게 마음을 주시려는 겁니까? 정혼한 휘열에게도 주지 못한 그 마음을?
신후가 혜온에게로 손을 뻗었다.
“가까이 오시겠습니까?”
뒷일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무모한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혜온과 조금 더 가까이 있고 싶었고, 그녀의 손이라도 잡아 보고 싶었다.
“그 젖은 머리를 걷어 얼굴부터 보이거라. ……보고 싶구나.”
“제게서 누굴 찾는 것입니까.”
“나의 스승님.”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혜온의 대답이 바로 나왔다.
“저를 보겠다고 찾아와 놓고서 그리 주저 없이 다른 사내를 말씀하시면, 제가 기분 나쁠 거란 생각은 안 하십니까?”
“네가 왜 기분 나쁘지? 나를 마음에 품기라도 했느냐?”
“글쎄요. 기분이 좀 오묘하군요.”
---「2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