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이 창조한 SF 세계의 신이다. 당연히 그 세계를 완벽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당신이야말로 그 세계의 유일한 권위자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그림이 그럴듯해 보이도록 세심하게 노력하지 않는다면, 보는 이도 그림에 흥미를 잃을 것이다. 해부도는 정확해야 하고, 기술적인 요소는 진짜 작동할 것처럼 보여야 하고, 배경 설정은 정말로 사람이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야 하고, 외계 생명체는 특정 환경에 적합한 것처럼 여겨져야 한다. 이때 시각 자료를 참고하면 작품의 설득력이 곧바로, 엄청나게 증가한다. 예를 들어 첨단 장비를 그릴 때는 엔진이나 다른 기계의 사진을 참고하자.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또 사진 자료를 참고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연구하는 것도 작품의 설득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 방안이다.
- ‘들어가며: SF란?’ 중에서
그리기, 다시 말해 선과 형태를 이용해 시각 표현을 생성하는 행위는 인간 속성의 기본이다. 어린 시절에 우리 대부분은 간단한 도구만 있으면 본능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리기란 인생에 있어 매우 훌륭하고 근본적인 즐거움이다. 이번 장은 그리기를 좋아하면서 그리기 기술을 습득하고 싶은 사람, 한동안 손을 놓았지만 다시 그리기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 단기간에 복습해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마련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기초인 화구, 기초 원근법, 사람의 얼굴, 신체, 빛과 그림자, 표현 기법, 구성 등을 다룬다.
- ‘SF 드로잉의 기초’ 중에서
[아트워크] 오래전부터 천년 왕국이 도래한다는 신조나 신비주의적인 믿음을 가진 이들은 자발적으로 고행과 금욕을 전통으로 삼아 왔다. 사이버 금욕주의자들은 그것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논리적인 결론에 도달한 이들이다. 교단의 창시자인 메도라 스트롬본은 타이탄 맥헨리 궤도 채광 식민지 출신으로, 사람들에게 종말론적 비전을 제시하면서 이 종교를 만들었다. 그는 육체를 ‘버리는’ 만큼 성스러움과 평온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육체를 버린다는 것은 사람이 타고난 생체를 조금씩 고결한 회로와 칩으로 교체해 가는 것을 뜻한다.
오른쪽 그림의 꼭대기에 떠 있는 구체는 로봇이 아니라 교단의 대원장, 즉 지도자다. 그의 대뇌피질은 아직도 구체에 살아 있다. 대뇌피질 안에 들어 있는 데이터 패턴은 교단 중앙 컴퓨터 속 집단 정보로 업로드 중이며, 때가 되면 대뇌피질도 파괴될 것이다. 사이버 금욕주의자들은 오직 이것만이 진정한 성스러움과 불멸에 도달하는 길이라 믿는다.
- ‘2502년 12월: 사이버 승천 교단의 수도사’ 중에서
외계인과 로봇은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기에 함께 다룬다. 그 둘은 〈에이리언〉에 나오는 생물처럼 무섭게 변형되기도 하고, 가끔은 〈블레이드 러너〉의 리플리컨트(복제인간)처럼 이상적으로 미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거의 예외가 없이 인간 외형의 변주라고 할 수 있다. 괴물 같은 외계인과 로봇은 인간의 잠재의식 안에 있는 추하고 폭력적인 충동을 시각적으로 상징하는, 일종의 경고다. 반면에 아름다운 외계인과 로봇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잠재적 선과 완벽함을 시각적으로 상징하는, 이정표이자 지침이다. 그러나 좋은 SF 작품에서 이처럼 어딘가 이상한 인물을 등장시키는 진짜 목적은 우리가 그로부터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게 만드는 데 있다.
- ‘외계인과 로봇’ 중에서
[아트워크] 황제 캐스트로브랜 9세와 가족들이 화성에서 온 사절을 맞이하고 있다. 사절단은 외계인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진화 속도를 높인 덕분에 화성 표면에서도 별도의 보조 수단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된 인간이다. 21세기 후반에 화성으로 이주한 초기 개척민들이 진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지구에 내전이 발발하면서 지구 측과 이어 가던 무역이 갑자기 중단된 것이 계기였다. 분리된 지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지구와의 교류가 재개되고 있다. 그들은 환경 슈트를 착용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낮은 온도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호흡에 필요한 이산화탄소를 다량으로 얻는 동시에 강한 지구 중력을 이기고 활동할 수 있다.
- ‘8214년(그레고리안력) 여름: 지금의 이집트 카이로 지역에 위치한 황궁’ 중에서
[아트워크] 침몰한 영국 전함의 잔해 위에 노틸러스호가 떠 있다. 네모 선장과 승무원 몇 명이 쓸 만한 물건을 건지기 위해 난파선과 주변의 잡동사니를 치우고 있다. 노틸러스호는 SF의 상징과도 같은 이동 수단 중 하나다. 대양을 누비는 연구실이면서 복수를 갈구하는 죽음의 배다. 또 이 배의 주인이자 SF 장르의 대악당인 네모 선장의 수족이기도 하다. 노틸러스호는 여러 차례 새로 디자인되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버전은 1870년에 발표된 쥘 베른의 고전 『해저 2만 리』를 디즈니가 영화로 제작했을 당시에 디즈니 아트 디렉터였던 하퍼 고프가 창조한 모습이다. 그의 디자인은 스팀펑크 운동의 ‘수호성인’이라 할 수 있다.
- ‘1898년 3월: 북위 34도 27분, 동경 24도 52분. 지중해 크레타 섬 남쪽’ 중에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스타일의 SF가 진정한 잠재력을 이끌어 내는 대상이 바로 이것, 우주선과 기타 비행 수단이다. 조르주 멜리에스가 만든 최초의 SF 영화 〈달세계 여행〉에서는 우주 비행사가 달로 날아가 그곳 원주민과 만난다. 인간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 지구 중력을 이기고 나아가 먼 우주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은 뒤로, 우리에게 무한한 이야기의 지평선이 열렸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좋은 SF는 무엇보다 인간의 잠재력과 정신적인 성장을 먼저 탐구한다. 우리는 은하 및 그보다 먼 우주를 개척할 운명을 타고났을까?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성숙함에 자연스럽게 도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초인적인 상태에 이르도록 진화할까?
물론 우주여행에는 어두운 가능성도 있다. 실제 역사를 돌이켜 보면 첫 우주선이 전투용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마지막 개척지(우주)란 탐사뿐 아니라 정복과 공격의 기회이기도 하다. 항성 간 전함을 제작할 경우 외계 적대 세력을 상대할 무기도 실어야 할까? 인간보다 훨씬 공격적이고 군대처럼 조직된 외계인이 우주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 ‘비행 수단’ 중에서
‘머리에 떠오른 것을 종이 위에 옮기는 능력만큼 커다란 기쁨을 주는 것은 없다.’ 여러 일러스트레이터가 입으로 또 글을 통해 그런 효과가 진짜로 있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종이 위에 그림을 그려 놓아야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오르는 사람이다. 이를테면 ‘지구 우주선이 일종의 국수처럼 생긴 생체 기계형 외계 우주선을 만나서…’처럼 언어로 표현한 것들이 머리에 둥둥 떠다니기는 하지만, 총천연색으로 번쩍거리는 빛이 얼른 종이 위로 옮겨 달라고 머릿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선 그림부터 그려야 한다. 보통은 완성하고 한 시간 정도는 지나야 간신히 그림의 성패를 진지하게 가늠할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그림들 거의 전부가 한 점당 5-6일에 걸쳐 작업한 결과물들이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면 바깥 세상에, 내가 방금 언급한 모든 것에 자신을 내던져 보자. 한동안 거기에 매료되어 있다가 종이에 선부터 그어 보자. 그러면 아이디어가 흘러나오고 그것이 합쳐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놀라게 될 것이다.
- ‘끝맺으며: 일단 시작하자’ 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