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4월 10일, 29명의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들이 중국 상하이의 한 다락방에 모여들었습니다. 밤샘 토의 끝에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로 하고 10개조에 달하는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했습니다. 그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함”입니다. “민주”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뜻이고, 민주주의를 국가 지표로 하겠다는 말입니다. 공화국은 군주 없이 통치하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민주공화국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임금 없는 나라가 됩니다.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임을 거듭거듭 못 박은 것입니다 --- p.6
우리 헌법의 제일 앞부분에는 전문前文(preamble)이 있습니다. …… 법률과 명령 등 모든 실정법률은 헌법에 의해 근거를 부여받습니다. 그래서 헌법을 누가, 왜, 어떤 목적에서 만들었는가를 정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 헌법 전문의 첫 핵심은 ‘누가 이 헌법을 만들었는가’입니다. 헌법 제정 권력자를 밝히는 것이지요.
우리의 경우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 국민”이 바로 헌법 제정 권력자입니다. 대한이라는 땅(한반도)에서 살아온, 오랜 역사와 전통을 공유한 사람들이 우리들 대한 국민이고, 이 대한 국민이 바로 헌법을 제정하는 주체라는 것입니다 --- p.23~24
우리 헌법 전문의 첫머리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이라는 문구가 나옵니다. 대한민국의 유래이자 성립 근거를 담은 표현입니다. 대한민국 탄생을 위한 원동력을 제공한 사건은 바로 3?1운동입니다. 1948년부터 1987년까지 헌법이 9차례 개정되고 그에 따라 헌법 전문도 바뀌지만, “3?1운동”이라는 말은 빠진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3?1운동은 중요합니다 --- p.30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시발점을 기록한 역사적 문서입니다. 1948년 제헌헌법이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고 1948년에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했음을 밝히고 있는 이상, 헌법사적으로 1919년의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대한민국을 건립한 헌법장전으로서 커다란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1919년의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국민주권을 선언한 대한민국의 최초의 헌법문서로서, 내용의 선진성뿐만 아니라 다른 헌법문서와 비교할 수 없는 역사적 유일성을 갖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의 탄생, 민주공화제, 인민의 평등, 자유권의 보장, 보통선거제 등이 여기서 비롯되었습니다 --- p.73
“임시정부의 법통”이라는 구절에는 그러한 법통이 끊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애국선열들의 피눈물, 그러한 지혜를 간직한 지식인과 후손들의 한평생 삶이 녹아 있습니다. 말 그대로 마지막 광복군과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이루어낸 쾌거이지요. 이 구절은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닙니다. 헌법 전문에 명기하기까지의 피와 눈물과 지성의 역사, 시대의 맥박을 함께 읽어내야 합니다 --- p.95
“독립운동가들이 지는 싸움을 했다.”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 도대체 지는 건 뭐고, 이기는 건 뭔가요? 왜놈의 개돼지가 되라는 억압을 이겨내고 독립된 인간으로 당당하게 우뚝 서는 것, 그게 이기는 것 아닌가요? 불의에 굴종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대로 행동하는 것, 자신이 생각한 옮음이 보편적 정의라는 공감을 얻어내는 것, 그게 이기는 것 아닌가요? ……
독립운동을 폄하하려는 자들은 ‘독립운동은 실패’라고 결론 내리고 싶어 하지요. 그러나 성공은 인간적?민족적?세계적 차원에서 두루 살펴야 합니다. 독립운동은 인간적 주체성을 회복하고, 민족의 정기를 세우고, 세계 속에 독립한국의 필수성을 각인시킨 그 자체로 성공한 겁니다 --- p.117~119
현행 헌법 전문에서 “3?1운동”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은 “4?19민주이념”입니다. 4?19는 1960년 부정선거에 항거하고 이승만의 종신독재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의 혁명이었습니다. ……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 문구에서는 4?19를 민주주의를 되살린 민주혁명으로, 그에 대적되는 이승만 정권 말기의 행적을 “불의”로 단정합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 헌법 전문에는 두 개의 대사건, 즉 3?1과 4?19가 포함됩니다. 하나는 독립된 국민의 나라를 만들자는 국민 항쟁이고, 다른 하나는 정권의 독재화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국민 항쟁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우리 대한국민은” 바로 그러한 민족적?민주적 저항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계승의 예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이고, 6?10민주항쟁이고, 또 최근의 촛불시민혁명이지요 --- p.121~125
“1948년에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말은, 역사적으로도 헌법적으로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되었다면, 한반도 지역의 법통은 ‘조선-대한제국-대일본제국-미군정-대한민국’이 될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의 모든 투쟁의 성과는 모호해지거나 사라져버립니다. 분단한국에의 기여도에 따라 공적이 기록되므로 독립운동가는 그리 필요 없는 존재가 됩니다. 통일국가 수립을 위한 몸부림은 모두 건국 방해 행위가 됩니다 --- p.132
1987년은 헌정사에서 매우 소중합니다. 독재에서 민주화로 이행하는 결정적 전환점을 마련한 해이기 때문입니다. 6월 민주항쟁을 치렀고, 여?야 합의로 헌법이 개정되었습니다. …… 1987년 전국의 거리를 점령하면서도 총탄 세례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은(최루탄 세례를 받긴 했지만) 1980년 선배들이 흘린 피 덕분입니다. 이 때문에 헌법 개정 시엔 전문에 ‘5?18민주화운동과 6월 민주항쟁으로 성립한 1987년 헌법’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합니다. 6월 항쟁만이 아니라 그와 짝하는 5?18광주민주화운동도 함께 포함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 p.153
2016년 10월부터 2017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에 이르기까지, 13주에 걸쳐 매번 100만 이상의 시민들이 광장을 채웠습니다. …… 그런데 유례없이 평화로웠습니다. …… 2016년의 평화시위는 이전 시대에 널리 쓰였던 진압 방법, 즉 총, 칼, 몽둥이, 최루탄, 물대포, 물을 차례차례 사라지게 한 선열과 지사들의 노력 덕분이기도 합니다. 그 희생, 그 헌신의 배경도 곰곰 생각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 p.162~163
1919년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듬해 도산 안창호 선생은 “오늘날 우리나라엔 황제가 없나요?”하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곤 “황제란 주권자를 일컫는 이름이니, 대한민국에서는 온 국민이 바로 황제”라 자답합니다. “대통령이나 총리나 다 국민의 노복”일 뿐이니 “군주인 국민은 노복을 선하게 인도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고, 정부 직원은 군주인 국민을 섬기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일깨웠습니다. 이게 민주공화국의 핵심입니다 --- p.188
우리 헌법에 ‘권력’이라는 단어는 헌법 제1조에만 등장합니다. 국민만이 권력자입니다. 대통령은 권력이 아닌 ‘권한’을 갖습니다. 판사, 검사도 권력이 아닌 권한을 갖습니다. 권한은 ‘한계가 있는 힘limited power’입니다. ‘적법한 권위legal authority’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 국회의원, 판사, 검사, 경찰은 헌법-법률에 의해 부여된 범위 내의 제한된 권능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범위를 넘어서면 권력 남용이 됩니다. 권한은 국민 전체를 위해 써야만 합니다.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 행사하면 권력 남용이 되어 처벌받습니다. 공직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쓸 힘power이 전혀 없습니다 --- p.194
저항권은, 일부 관변학자들과 정권의 시녀가 된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역사적 실천을 통해 지금은 헌법상 권리로서 당당히 인정받고 있습니다. 3?1운동은 일제 통치에 대한 전체 국민의 항쟁이고, 4?19는 종신독재체제에 대한 우리 국민의 항쟁입니다. 특히 현행 헌법의 경우 4?19에 대해서는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이라는 문구를 통해 저항권적 행사였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현행 헌법에서 저항권을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1987년 6월 민주항쟁도 전두환 등 정치군부의 군사독재에 대한 전 국민적 저항권의 행사였고, 2016~2017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촛불 함성도 연인원 1700만 명이 참여한 국민 저항권의 행사였지요 --- p.211
권리를 외칠 때보다 인권을 외칠 때 목소리가 더 절박하고 손도 더 높이 쳐들게 됩니다. 인권의 목소리를 이미지 파일로 검색해보면 높이 치솟는 장면이 많습니다. 아마도 억눌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그런 동작으로 나타나는 거겠지요. 왜? “인간”으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면, 존재가치가 없으니까요. 〈존엄과 가치〉를 〈평등〉하게 누리도록 〈인정〉하고 〈보장〉해 달라, 그게 인권의 핵심이라 생각됩니다 --- p.217
A: 광장에 모여 소란피우는 행위는 사회 혼란을 부채질하는 것 아닌가요? B: 위정자들이 광장에서 외치는 국민의 목소리를 잘 듣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정책과 입법에 반영하면 훨씬 혼란 없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 위정자가 지혜롭게 국민의 원성을 듣고 정책으로 잘 풀어내면 됩니다. 그런 지혜와 의지가 없는 위정자는 국민을 무조건 광장에서 쫒아내려고만 합니다. 그런 우매하고 포악한 위정자를 몰아내자는 게 민주주의입니다 --- p.247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 의무 앞에 사람을 “양심적 대 비양심적”으로 흑백 양분하는 논리가 아닙니다. “다수의 생각 대 개인의 생각”입니다. 개인의 생각이 다수의 생각을 도저히 따를 수 없을 때, 그렇지만 그 개인의 생각이 타인을 해치거나 공격하는 생각이 전혀 아닐 때, 그 생각의 존재를 인정해주면서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공동선을 이룰 방법을 고민한 결과가 대체복무제 허용이라는 출구입니다 --- p.260
평등권은 현실적 차별뿐만 아니라 각종 편견과 맞서는 싸움을 통해 더욱 풍부해집니다. 헌법상 평등권이 있다고 해도, 실제로 그 평등권의 실현은 여러 사람들의 차별과 편견의 철폐 노력을 통해 확실하게 구현될 수 있습니다. …… 헌법상의 평등권 조항은 이를 위한 든든한 기준점이 되는 것이고요 --- p.286
투표 때엔 1인 1표로 평등한 것입니다. 투표 끝나면 허구한 날 때려 부수던 자들도 투표 앞두곤, 판자촌민 앞에서도 머리를 조아리고 아부합니다. 평소에 군림하던 자일수록 투표일이 가까워지면 더 땅을 향해 고개를 숙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평등하게 설계된 “1인 1표”, 그걸 놓치고 불평등이 어쩌고 하는 사람은 불평등 운운할 자격이 없습니다 --- p.303
‘권력 앞엔 단호하게, 국민 앞엔 겸허하게.’ 이것이 판사의 바탕입니다. 단호하게 해야 할 권력에는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경제권력, 언론권력 등이 두루 포함되어야 합니다. 판결은 판사가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내려야 하지요. 하지만 판사의 권한이라는 건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도구의 하나에게 주어진 책무일 따름입니다. 판사의 권한이 판사 맘대로일 리 만무합니다. ‘제대로 재판해야 할 공적 의무’일 뿐이라는 말이지요. 법리에는 문제 없다고 자신만만해하는 법관이 아니라, 늘 미흡함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의 자세를 견지하려 애쓰는 그게 진짜 판사입니다 --- p.329
세계에서 가장 헌법재판 기능이 활발한 국가 중 하나가 우리나라입니다. 헌법재판을 통해 위헌 법률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었고, 많은 법률이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아 폐지되거나 교정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적극적 역할을 통해, 거꾸로 선 법단계는 바로 선 법단계로 바뀌었습니다. 주먹보다는 법이, 명령보다는 법률이, 법률보다는 헌법이 우위에 서는 체계 말입니다.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의 실제 모습에 더욱 가까이 다가간 셈이지요 --- p.345
저는 가끔 ‘법은 나무와 같다’고 얘기합니다. 현실에 바탕을 두되 가치를 지향해야 하고요. 〈질서〉라는 땅에 뿌리내리되, 〈정의〉를 줄기로 삼아 성장하고, 〈인권〉이라는 가치로 열매를 맺어갑니다. 하늘로 향해 좌-우-상-하의 절묘한 균형을 잡아내니 〈형평〉이라 하겠다는 거지요
--- p.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