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놔두고 혼자만 가는 게냐?”
여행 가는 게 죄도 아닌데 말도 못하고 있다 떠나기 직전 겨우 시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시어머니는 당황해하셨다.
“그게 무슨 짓이냐? 애 엄마가 무슨 배낭여행이야. 차도 없이 애들 데리고 어떻게 다니려고.”
전업주부가 된 뒤 제대로 용돈 한번 못 챙긴 친정어머니는 철없는 어린아이 야단치듯 걱정하셨다.
“애들 데리고 2박 3일도 힘든데 9일씩이나 혼자서? 그리고 언니, 무슨 제주도 싸게 가기 대회 해?”
자신도 제주도 갈 건데 어떻게 준비하고 있느냐고 꼬치꼬치 묻는 옆집 엄마에게 내 계획을 털어놓았더니 나를 무전 여행하는 거지 취급을 한다.
“제발, 당신 좋자고 애들 고생시키지 마.”
믿어주는 듯했던 남편마저 나를 아이들을 고생스럽게 끌고 다니는 이기적인 엄마인 양 매도한다. 모든 순간 마음이 저릿했다.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나를 믿지 못하고, 격려해주지 않는 그런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또 물었다. 얼마나 돈을 아끼려고 그렇게 구차하게 여행하느냐고. 내가 아이들과 함께 히치하이킹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여행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세상에 대한 일종의 믿음을 실험하는 일이고, 여행에서의 특별한 추억을 만드는 일이고, 아이들에게 세상을 향한 긍정과 믿음을 가르치는 일이다. 그것은 절약되는 차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이다. 그리고 우리를 태워주었던 많은 사람 중 누구도 우리를 구차한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이로움과 부러움의 눈길로 바라보며, 엄지를 들어 올려주었다.
바닷가에 도착한 아이들은 물 만난 고기마냥 팔짝팔짝 뛰어다닌다. 아이들은 모래를 보면 일단 판다. 모래 위에 그림을 그렸다가 지우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파묻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연 미술교육을 시키겠다고 풀과 도화지를 준비해 모래 그림 그리기를 보여주지만,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실패한다.
‘그래, 이 작은 도화지보다 해변이 백배 천배 좋은 스케치북이지.’
쓸데없이 짐도 무거운데 왜 이런 걸 들고 왔는지. 아이들에게는 자연이 가장 좋은 놀잇거리라는 걸 자꾸 잊어버린다.
많은 부모가 ‘아이들 때문’이라는 이유로 대형 호텔이나 리조트에 묵는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정말 아이들 때문일까? 처음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했을 때 아이들은 리조트나 호텔보다 더 행복해했다. 아이들이 어른과 같은 기준일 거라는 생각은 우리 어른들의 착각일지 모르겠다.
리조트는 훌륭한 서비스와 다양한 부가시설을 제공하지만, 그곳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서비스맨이다. 멋들어진 외관을 가진 호텔에는 사람이 풍기는 세월의 향기나 인간적인 드라마가 없다. 호텔 로비는 화려하지만, 게스트하우스의 공동주방이나 할머니 집 부엌방만큼도 누군가와 소통할 수 없다. 그곳은 태생 자체가 ‘소통’보다는 ‘소비’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행이 끝나가는 지금 내 가슴은 벅차오른다. 단지 9일간의 여행일 뿐인데 내 마음속에 굳건히 둥지를 틀고 있던 그 많은 ‘의심’과 ‘불신’은 어느새 ‘믿음’과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길에서 처음 만나 우리에게 자리를 내주었던 수많은 사람의 마음, 배낭을 메고 잠든 아이 때문에 쩔쩔매는 나를 도와주고 떠난 사람들의 친절, 따뜻한 잠자리뿐 아니라 마음까지 얹어준 사람들. 세상은 우리가 목이 마르면 시원한 물을 주었고 힘들 때 쉴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따뜻한 사람들의 마음이 세상에 대한 나의 의심의 벽을 녹여주었다. 열린 마음과 나눌 준비만 되어 있다면 세상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엄마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낯선 곳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새로운 놀이 공간을 만난 듯 흥미진진해했다. 평소보다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엄마인 내가 기대하지 못했던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주었다. 어린 딸이지만 아빠가 없는 빈자리를 엄마 혼자 감당하도록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이들 역시 단지 내가 보호하고 이끌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나와 함께 길을 찾고 서로를 독려하며 여행을 만들어가는 동료였다.
이 세상에 다른 문제로 고통을 겪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삶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오늘 강정마을에서, 여행이라는 것이 어딘가를 지나가고 무언가를 바라보기만 하는 관광이 아니라 사람들과 마음을 열고 어울리고, 아픔을 이해하고, 또 함께 웃으며 뛰어놀 수 있는 것임을 배웠을 것이다.
‘강정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싸우고 있을까?’ 하고 문득 생각하게 하는 경험, 그렇게 잊지 않고 안부를 묻는 마음, 그곳과 사람들을 항상 생각하고 관심을 놓지 않는 일, 그것이면 참으로 충분한 사랑의 시작이 아닐까.
산길에서는 아이들 보폭에 맞추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걷는다. 산행을 갈 때면 평소 구경하기 어려운 간식이 허락되는 것도 아이들로 하여금 힘든 산행을 보람 있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것은 평소에 과일 같은 자연식품을 주로 간식으로 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냥 주어지는 아이스크림의 맛보다 한여름에 산꼭대기에 올랐을 때 거기서 파는 아이스크림의 맛이 얼마나 더 시원하고 달콤한지 우리 아이들은 잘 알고 있다.
산행을 가면 나는 아이들에게 길을 찾아보라고 한다. 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어디로 갈까 함께 생각한다. 아이들은 처음 갈림길이 나타나면 오르막보다는 조금이라도 내리막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깨닫는다. 아! 내리막 다음엔 더 가파른 오르막이 있구나. 큰딸 지원이는 이제 오르막길에서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 힘내. 오르막이 있으면 다음은 내리막이잖아.”
아이들이 여행을 통해 얻은 것이 강한 체력만은 아니다. 아이들은 길고 힘들었던 두 번의 제주 여행 동안 어른들로부터 끊임없이 칭찬을 들었다. 길 위에서, 산 위에서 만나는 어른마다 감사하게도 우리 아이들을 향해 “대단하다”, “참 잘 걷는다”, “용감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런 말을 듣고 나면 아이들의 발걸음은 더욱 힘차졌고, ‘난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 생각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높은 자긍심은 웬만한 상황에서는 꿋꿋하게 버틸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었다.
아이들은 그냥 둬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면서 잘 자란다. 하지만 힘든 여행은 아이들을 더 단단하고 뿌리 깊게 자라게 한다. 요즘 아이들은 많이 걷지 않는다. 아파트에선 엘리베이터가 태워주고, 엄마가 운전하는 자가용이 항상 대기하고, 학원 버스에 이리저리 실려 다닌다.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시간이 하루에 얼마나 될까.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면 잡아주고 싶어도 손을 잡아주기 어렵다.
어린아이들, 아직도 엄마 손이 세상 전부인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아주 긴 길을, 이왕이면 아름다운 길을, 자연으로 둘러싸인 그런 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제주도는 그런 나의 바람에 꼭 맞는 무대였다. 이런 여행이 학원 버스에 실려 보내는 것보다 결코 못한 교육은 아닐 것이라고 나는 지금도 굳게 믿는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