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몇 년쯤 지난 어느 날의 일이었다.
지하실에는 몇 번째인가의 석고상이 완성되어 있었고, 그는 그날도 그녀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전날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대화에 열중할 수가 없어서,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었지만 쉬기로 했다.
침대에 들어 꾸벅거리는 동안에 그는 악몽을 꾸었다. 지진이 일어나 석고상이 쓰러지는 꿈이었다. 그녀는 쓰러지면서 입술을 살짝 움직여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고, 그런 다음 산산조각이 나 바닥에 흩어졌다.
그는 퍼뜩 일어나 비틀거리며 침실을 나갔다. 아까 지하실을 나올 때에 그녀를 제대로 침대에 눕혔는지 걱정이 되어서였다.
괜찮았다. 그녀는 침대 속에 있었다. 전날 새로 산 깃털 이불도 어깨까지 덮고 있었다. 안심한 그는 지하실을 나가며 그녀에게 잘 자라는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그때 그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입술에서 온기가 전해져온 느낌이었다. 열이 있어서 감각이 이상해진 것일까?
분명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나가려다가 아까의 꿈이 떠올라 걸음을 멈추었다. 꿈속에서는 그녀가 쓰러지면서 입술을 움직였다.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이것은 예지몽이 아닐까?
그는 이불을 걷고 긴장하면서 그녀의 팔에 손을 대어보았다.
따뜻함이 느껴졌다. 잠옷 소매를 걷어 올려 피그말리온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팔 안쪽을 자신의 손가락 끝으로 눌러보았다. 피부 속으로 그의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그는 멍하니 있다가 마침내 눈물을 떨어뜨렸다. 아이처럼 흐느껴 울면서 마침내 생명이 깃든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p.16
“안에는 더 엄청난 보물이 있을 거야. 탐정단이 조사할 의무가 있어.”
그런 소리를 중얼거리며 허리를 숙이고 현관으로 다가갔다.
곳짱은 진심이었다. 현관 포치에 도착해 어린 단원을 향해 이렇게 속삭였다.
“노크해서 응답이 있으면 곧장 도망간다. 대답이 없으면 열려 있는 창을 찾아서 숨어들자.”
그리고 그는 커다란 문에 달린 금색 노커를 두드렸다. 나는 응답이 있기를 기도했고, 또 응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현관 앞에 차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번을 두드려도 세 번을 두드려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곳짱은 대담한 웃음을 지으며 현관 포치에서 테라스로 가서 바닥까지 닿은 커다란 창문에 손을 댔다. 찰칵하는 소리가 나고, 창은 어이없이 바깥쪽으로 열렸다. 그는 신을 신은 채로 주저 없이 실내로 침입한 뒤 이쪽을 향해 손짓했다. 사토루가 따라가는 바람에 나도 뒤따랐다. ---p.40쪽
“이분이 고인?”
침대 위에 파자마 차림의 여성이 누워 있다. 얼굴은 푸르뎅뎅하게 부어 있었다. 아래윗니 사이로 혀끝이 보인다. 피부는 그렇게 노화되지 않았고 나잇대는 마흔 전으로 판단되었다.
“발견 당시에는 이렇게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침대 위에 있던 짙은 밤색 나이트캡을 손에 들고 있던 호소 카와가 그것으로 피해자의 안면을 덮었다.
“사고라고 하면 자는 동안에 나이트캡이 돌아가서 코와 입을 막았다는 겁니까?”
기쿠치는 장갑을 끼고 나이트캡에 손을 뻗었다. 나이트캡은 비닐로 되어 있었다. 이탈리아 유명 브랜드의 로고가 찍혀 있다.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상황이기는 하지.”
“하지만 제삼자가 호흡을 방해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 상황이네요.”
“아니, 그게 말이야. 살짝 들었는데, 집 안에는 고인 혼자 있었고 밖에서는 들어올 수도 없었던 것 같아.”
“언제쯤 돌아가셨지?”
나카자와가 묻는다.
“대충 봐서 사후 일곱 시간 내지 여덟 시간 경과했을까요.”
“지금 몇 시야?”
“10시 조금 넘었으니까, 죽은 것은 오전 2시부터 3시 사이입니다.”
“성교 흔적은?”
“없습니다.”
“외상은?”
“그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역시 사고겠네.”
“겉으로 보면 별로 의심스러운 점은 없습니다. 일단 해부를 해봐야겠지만요.”
“침대 위는 흐트러져 있지 않네. 실내도 어질러지지 않았고.외부에서 출입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니까 사고네, 사고야. 사고로 처리하자고. 내일 난 비번이란 말이다.”
나카자와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피해자의 얼굴에서 나이트캡을 벗기고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두워. 기쿠이케, 불 좀 켜봐.” ---p.86
“심야에는 제법 괜찮은 영화를 하니까요.”
그렇게 웃는 얼굴로 대답한 직후였다. 기쿠치의 머릿속이 찌르르했다.
예약─나카자와가 쓴 이 단어가 뭔가를 호소하는 것 같다.
예약? 비디오? 아니다. 예약? 무엇을? 소노다가? 예약? 무엇을?
중요한 부분이 나오지 않는다. 기쿠치는 머리를 두드리면서 생각했다. 관자놀이를 쿡쿡 찌르면서 얼굴을 들었다. 서쪽 하늘에 납빛 구름이 떠 있었다. 비가 오려나.
비─? 기쿠치의 머리에 또 전기가 스쳤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을 올려다본 채 기쿠치는 중얼거렸다. 나카자와가 하늘을 올려다보곤 고개를 갸웃한다.
“일기예보가 빗나갔다.”
“뭐?” ---p.134
어느 순간 그는 갑자기 가족이 그리워졌다. 하쓰네의 허리는 좀 어떨까? 가즈오는 시험을 잘 보았을까? 기요시는 천식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준코는 남자 동급생에게 놀림을 받지 않을까? 자신이 이렇게 일을 하지 않는데도 우리 가족은 먹고 살 수 있을까?
가슴이 죄어들어 그는 산책 도중에 준코의 손을 뿌리치고 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곳은 그에게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는 동네였다. 집이 어느 쪽에 있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당연히 그는 집을 찾을 수 없어서 뒷골목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쩔 줄 몰라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준코에게 잡혔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족과 만나고 싶어서 남의 눈도 아랑곳없이 소리 높여 울었다. 눈물이 다 마른 뒤 그는 하모니카를 손에 쥐었다.
도, 미, 파, 파, 솔, 솔, 미, 솔, 파, 미, 파, 레, 미─.
그런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는 하모니카를 놓고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p.160
10월 17일 해 질 녘, 도호쿠 자동차도로 하향선의 아다타라 휴게소에 주차 중인 트럭 짐칸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 죽은 사람은 젊은 남성으로 목 앞부분에서 강하게 압박받은 흔적이 발견되어, 후쿠시마 현경 모토미야 경찰서는 타살로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경부의 졸린 흔적 외에는 눈에 띄는 외상은 보이지 않았고, 공식적인 해부 결과 질식사로 판정되었다. 경동맥과 경정맥이 강하게 압박되어 뇌에 혈액 공급이 잘 되지 않아 죽음에 이른 것이다. 사망 추정 시각은 17일 오전 8시에서 9시 사이.
사체의 신원은 바로 판명되었다. 피해자가 소지하고 있던 지갑 속에 비디오 대여점 회원증이 들어 있어서, 그것을 근거로 밝혀낼 수 있었다. 지바 현 후나바시 시에 사는 혼마 가즈키라는 이십일 세의 무직 청년이었다. 지갑 속에 현금과 카드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강도 목적의 범행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수사가 잘 진행된 것은 거기까지였다.
시체를 싣고 있던 트럭은 미야기 번호판을 달고 심야에 미야기 현 후루카와 시에서 지바 현 후나바시에 건축자재를 나르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트럭 운전수 오노데라 겐키치는 전혀 짚이는 데가 없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죽이지 않은 것은 물론,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고 나른 것도 아닌 데다 혼마 가즈키와는 면식도 없고 이름조차 들은 적이 없다고 되풀이했다.
오노데라가 후나바시 시의 건축 현장을 출발한 것은 17일 오전 9시로 그때 트럭 짐칸에 시체는 없었다. 이것은 작업하던 여러 명이 증언하고 있다. 오노데라는 그 후 국도 14호선을 타고 도쿄 방면으로 향했고, 에도가와 구 시노자키 인터체인지에서 고속도로로 진입, 가와구치 나들목에서 도호쿠 자동차도로로 들어갔다. 예정대로라면 건축 현장 근처 후나바시 인터체인지에서 자동차도로를 탔겠지만, 당일 짙은 안개 때문에 게이요 도로가 교통이 통제되어 잠시 동안 일반도로를 달리게 되었다. 자동차도로를 타고 나서는 아다타라 휴게소까지 한 번도 정차하지 않았다. 따라서 시체가 짐칸에 실린 것은 후나바시에서 에도가와에 걸쳐 일반도로를 주행할 때로 짐작되었다.
그러나 오노데라는 주행 중에 이상을 느낀 적은 없었다고 했다. 범인은 시체를 어디서 어떻게 트럭에 실었을까?
피해자의 발자취도 불분명했다. 혼자 살고, 학생도 직장인도 아니라서 사건 전의 행동을 밝혀낼 수 없었다. 피해자 집 우편함에 쌓여 있던 우편물이나 전단지를 보아 14일 오후 이후로 아파트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 다였다.
의문점은 그 외에도 있었다. 경부의 졸린 흔적이 목의 앞부분에만 나타난 것이다.
통상 끈 형태의 흉기로 교살을 꾀할 경우 흉기는 피해자의 목에 한 바퀴 감기게 된다. 몇 겹을 감은 다음에 조른 것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시체를 보면 졸린 흔적이 목 전체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조른 것으로 추측된다.
범인은 피해자의 등 뒤에서 끈을 목에 두르고 끈 양 끝을 손뜨기를 하는 것처럼 당겼다. 그러나 그냥 당기기만 하면 피해자의 몸이 범인 쪽으로 쓰러지기 때문에 혈관도 기도도 전혀 압박받지 않으므로, 피해자의 몸이 쓰러지지 않도록 끈을 양손으로 당기면서 발로 등을 앞쪽으로 밀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실제로 무리가 있는 자세였다.
그렇게 할 거라면 차라리 그냥 끈을 감고 조르면 되는 게 아닌가.
또, 졸린 흔적이 후두 연골의 상부를 비스듬히 지나고 있는 것도 부자연스러웠다. 보통 교살 시체에서 졸린 흔적은 후두연골의 아래쪽에 수평으로 나타난다. 전자와 같은 상태는 목을 매어 죽은 흔적의 특징이다.
그러면 피해자가 목을 매어 자살했는가 하면 그렇게 보기도 어렵다. 목을 맸다면 끈을 목 전체에 감아야 한다. 고리를 만들어 목을 넣지 않으면 몸이 떨어져서 목을 매달 수 없다. 그러나 고리 속에 목을 넣으면 당연히 목을 다 감은 흔적이 생기는데, 이번 시체는 그렇지 않았다. 졸린 흔적이 있는 곳은 목의 앞부분뿐이었다.
게다가 수사진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것이 시체의 옷차림이었다.
스니커즈용 짧은 양말을 신었는데 신발은 없고 운동복 바지를 입었지만 상반신이 알몸이었던 것이다.
---p.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