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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선집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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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9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852쪽 | 768g | 128*190*36mm
ISBN13 9791187295389
ISBN10 1187295388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하지만 이때만은 상대가 아이들이어서 얼마간 용기가 났다. 그래서 가능한 한 웃는 얼굴로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제 놔줘라. 개도 맞으면 아프단다” 하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 아이는 돌아보며 눈을 치켜뜨고 경멸하듯이 오위의 차림새를 유심히 훑어보았다. 말하자면 사무라이 대기소에서 고위 관리가, 말이 안 통할 때 이 사내를 보는 듯한 얼굴로 쳐다본 것이다. “쓸데없이 참견하기는.” 한 발 물러난 그 아이는 오만한 입술을 젖히며 이렇게 말했다. “뭐야, 이 딸기코 자식은.” 오위는 이 말이 자신의 얼굴을 후려갈기는 것 같았다. 그것은 욕설을 듣고 화가 났기 때문이 전혀 아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해서 창피를 당한 자신이 한심했기 때문이다.

그날 백모님 댁의 한 방에서 그 사람과 만났을 때 나는 한눈에 그 사람의 마음에 비치는 나의 추함을 알아버렸다.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부추기는 이런저런 다정한 말을 해주었다. 하지만 한번 자신의 추함을 알아버린 여자의 마음이 어떻게 그런 말에 위로를 받을 수 있겠는가.

그 여자의 일생은 이것 외에 무엇 하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대체로 인간 세상의 존귀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찰나의 감동 이상은 없다. 어두운 밤바다로 비유되는 번뇌하는 마음의 하늘에 하나의 물결을 일으켜 아직 뜨지 않은 달빛을 물거품 속에 담고서야 살아갈 보람이 있는 목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로렌조의 최후를 아는 자는 로렌조의 일생을 아는 자가 아닐까.

그녀는 열띤 눈빛으로 “나도 소설을 써볼까” 하고 말했다. 그러자 사촌 오라버니는 대답하는 대신 구르몽의 경구를 읊었다. 그것은 “뮤즈들은 여자니까 그들을 자유롭게 포로로 삼는 자는 남자뿐이다”라는 말이었다. 노부코와 데루코는 동맹하여 구르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 여자가 아니면 음악가가 될 수 없다는 건가요? 아폴로는 남자 아닌가요?” 데루코는 진지하게 이런 말까지 했다.

헤이추는 거의 미치광이처럼 마침내 상자 뚜껑을 열었다. 상자에는 엷은 주황색 물이 절반쯤 넉넉히 담겨 있고 그 가운데 짙은 주황색 덩어리 두세 개가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그런데 정향나무 향기가 꿈처럼 코를 찔렀다. 이것이 시종의 변일까? 아니, 길상천녀도 이런 변을 볼 리가 없다. 헤이추는 미간을 찌푸리며 가장 위에 떠 있는 두 치 정도의 덩어리를 집어 올렸다. 그리고 콧수염에 닿을 정도로 몇 번이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냄새는 틀림없이 침향나무 냄새다.

“너는 이제 돌아가. 우리는 오늘 저쪽에서 묵을 테니까.”
“너무 늦게 돌아가면 네 집에서도 걱정할 거야.”
료헤이는 순간적으로 어안이 벙벙했다. 벌써 그럭저럭 어두워졌다는 것, 작년 말에 어머니와 이와무라(岩村)까지 가봤지만 오늘 온 길은 그보다 서너 배가 된다는 것, 그 길을 지금부터 혼자 걸어서 돌아가야 한다는 것, 그것을 한꺼번에 깨달은 것이다. 료헤이는 거의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울어도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울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도 생각했다. 료헤이는 젊은 두 인부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는 지체 없이 선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야스키치는 여자를 뒤로 하며 자기도 모르게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여자는 이제 ‘그 여자’가 아니었다. 배짱이 좋은 한 어머니가 된 것이다. 예로부터 일단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악행도 서슴지 않는 무서운 ‘어머니’가 된 것이다. 이 변화는 물론이고, 여자를 위해서는 온갖 축복을 다 해주어도 좋다. 하지만 소녀 같던 아내 대신 뻔뻔스러운 어머니를 발견한 것은······

오스미는 손자의 잠든 얼굴을 보고 있는 중에 그녀 자신이 점점 무정한 인간이 되는 것 같았다. 동시에 또 그녀와 악연을 맺은 아들 니타로와 며느리 오타미도 무정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순식간에 9년간의 증오나 분노를 밀어냈다. 아니, 그녀를 위로했던 장래의 행복조차 밀어냈다. 그들 세 사람 모두 무정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중 혼자 살아남아 수치를 당한 그녀 자신이 가장 무정한 인간이었다.

그는 너저분한 거리에서 막과자를 먹으며 자란 소년이었다. 시골은, 특히 논이 많은 혼조 동쪽에 펼쳐진 시골은 그렇게 자란 그에게 조금도 흥미를 주지 못했다. 그것은 자연의 아름다움보다는 오히려 자연의 추악함을 직접 보게 해줄 뿐이었다. 하지만 혼조의 거리는 비록 자연이 부족했다고 해도 꽃을 피운 지붕의 풀이나 웅덩이에 비친 봄날의 구름에 뭔가 애처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런 아름다움 때문에 어느새 자연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젊은 그의 숙모는 새해 인사인가 뭔가로 집에 왔다가 젖이 불어 고통스러워했다. 양치질할 때 쓰는 놋쇠 사발에 아무리 짜도 젖은 나오지 않았다. 숙모는 얼굴을 찡그린 채 반쯤 놀리듯이 “신스케, 네가 좀 빨아줄래?” 하고 말했다. 하지만 우유를 먹고 자란 그는 물론 빠는 방법을 알 리 없었다. 숙모는 결국 옆집 아이, 즉 움막을 짓거나 목욕통을 만드는 목수집의 여자아이에게 딱딱한 젖을 빨게 했다. 유방은 부풀어 오른 반구 위에 푸른 정맥을 내비치고 있었다. 부끄럼을 잘 타는 신스케는 설령 빠는 방법을 알았다고 해도 도저히 숙모의 젖을 빨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역시 옆집 여자아이가 미웠다. 동시에 또 옆집 여자아이에게 젖을 물린 숙모가 미웠다. 이 작은 사건은 그의 기억에 울적한 질투만을 남겼다.

실제로 그는 인생을 알기 위해 거리의 행인을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행인을 바라보기 위해 책 속의 인생을 알려고 했다. 그것은 어쩌면 인생을 아는 데 멀리 돌아가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리의 행인은 그에게 단지 행인에 불과했다. 그들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사랑을, 그들의 증오를, 그들의 허영심을 알기 위해서는 책을 읽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초인적 연애가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저런 가정의 모습을 보면 역시 부럽다는 생각이 드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모순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톡은 환한 달빛 아래에 가만히 팔짱을 낀 채 그 조그만 창 너머를, 평화로운 갓파 다섯 마리의 저녁 식탁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잠시 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기 있는 계란말이는 누가 뭐래도 연애보다 위생적이거든.”

이 고명한 한학자는 이런 내 이야기에도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나는 기계적으로 말하는 중에 점점 병적인 파괴 욕망을 느끼고 요순(堯舜)을 가공의 인물로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춘추(春秋)』의 저자도 훨씬 나중의 한나라 시대의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한학자는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내 얼굴을 전혀 보지 않고 거의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듯이 내 이야기를 잘랐다.
“만약 요순도 없었다고 하면 공자가 거짓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되네. 성인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지.”

하지만 나는 잠시 후 내 왼쪽 벽에 걸린 나폴레옹 초상화를 발견하고 슬슬 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이 아직 학생이었을 때 그의 지리 공책 마지막에는 ‘세인트헬레나, 작은 섬’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말하듯이 우연이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폴레옹 자신에게도 공포를 불러일으킨 것은 확실했다.

그러는 사이에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책등의 글자를 읽어나갔다. 거기에 늘어서 있는 것은 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세기말 그 자체였다. 니체, 베를렌, 공쿠르 형제, 도스토옙스키, 하웁트만, 플로베르······
그는 어둑함과 싸우며 그들의 이름을 헤아려 나갔다. 하지만 책은 저절로 울적한 그림자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는 마침내 끈기도 다하여 서양식 사다리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그러자 마침 그의 머리 위에서 갓 없는 전등 하나에 돌연 불이 켜졌다. 그는 사다리 위에 선 채 책 사이를 움직이고 있는 점원과 손님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묘하게 작았다. 뿐만 아니라 참으로 초라했다.
‘인생은 보들레르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
나는 잠시 사다리 위에서 이런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이 자동차를 탄 후 그녀는 가만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당신은 후회 안 해요?”라고 물었다. 그는 단호하게 “후회 안 해”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으며 “저는 후회하지 않지만”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이런 때도 달빛 안에 있는 것 같았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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