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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와 고마워는 두 글자나 같네

고구마와 고마워는 두 글자나 같네

걷는사람 시인선-013이동
리뷰 총점9.4 리뷰 10건 | 판매지수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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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174g | 125*200*10mm
ISBN13 9791189128487
ISBN10 118912848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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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심장약 복용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수의사는 말했다

열 살 넘은 개가
내 이불을 덮고 자고 있다

들숨 날숨에 맞춰
움직이는 배를 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으면

어김없이 눈을 뜨고
나를 확인하는 개

고구마와 고마워는
두 글자나 같네

말을 걸며
빈틈없이 이불을 꼭꼭 덮어 줄 수 있는
겨울 고마움
--- 「고구마」중에서

혼자 밥을 잘 먹고
일기장을 버릴 수 있고
책에서 가붓하다라는 단어를 발견했을 땐
메모장에 적어두었지만

오늘은 듣고 싶었다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담담하게 엄마가 돌아가신 얘기를 하며
이사해야 하는 사정을 말하는데
달빛이 드리우는 방에 산다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싶었다

두 시간씩 전철을 타고 와
후회를 털어놓고
요즘 듣는 노래를 물어보는 밤

켠 적 없는 블루투스가 연결되었다
--- 「블루투스 기기 1개가 연결되었습니다」중에서

아픔 슬픔 배고픔 서글픔
픔으로 끝나는 단어는 왜 다 아픈 것일까
이 계절 내내
픔으로 끝나는 안 아픈 단어를 찾는 중

그렇지만
나이 한 살 더 먹고
1월에 만나는 것도 괜찮다

새해 복 우선 받으세요

구정에 마저 드릴게요
그때까지 서로 감기 조심합시다

보고픔

12월 마지막 주에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겨우 찾은 단어를 보낸다
조금 어색하다고 생각하면서
--- 「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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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지 시인은 목소리가 작아서, 주변 소리에 목소리가 겹치곤 해요. 그래서인지 함께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녀의 시를 읽을 때와 꼭 같은 느낌을 받아요. 디저트 카페 주인장이 수많은 소음 속에서 포크 떨어지는 소리를 알아채듯, 은지 시인은 일상 속에서 시의 기척을 기민하게 알아채지요. 그러곤, 포근한 카페의 음악 소리가 손님들과 목소리를 다투지 않듯, 일상 가운데 잠잠히 말하지요. 은지 시인의 시는 “가장 낮은 볼륨에 맞춰도 들을 수 있는 노래”이고, 김은지는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게 진화한 동물들”의 편이기 때문이겠죠.

김은지 시인은 시의 의도에 맞추어 타자를 임의로 판단하거나, 타인의 내면이나 외형을 변형하여 시의 재료로 활용하지 않아요. 시인의 낭만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표백된 순진한 타자를 상정하는 법도 없어요. 시인은 타인에 대한 추측이나 판단을 그만둠으로써 그 사람의 고독을 그대로 곁에 두지요. 이것은 외면이 아닌, 새로운 태도의 응시를 위함이라 생각해요. 시의 공간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시 속의 공간으로 함께 걸어가기 위한 곁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읽는 이보다 시인이 앞서 사라지는 법이 없고, 시인보다 시가 앞서는 법이 없고, 시보다 시의 언어가 앞서는 법이 없어요. 팔을 뻗으면 곧 닿을 거리에서 서로의 보폭을 살피며 같이 걸어가지요.

이 시집을 읽는 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면, 후두둑 소리에 깜짝 놀랄지도 몰라요. “다른 차원으로 열리는 문은 소박한 곳에 있을”지 모른다던 시인의 기대처럼, 적막 가운데 태어나고 적막 가운데 사라지는 시의 비밀스런 기척을 듣게 될지 몰라요. 공백 속에서 얼핏 사라지는 시의 실루엣을 보게 된다면 그건, 소곤소곤 말하는 얘기를 들어주는 당신이 고마워서, 시가 일부러 들킨 거예요.
- 육호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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