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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가 돌아왔다

할매가 돌아왔다

[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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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384g | 127*188*23mm
ISBN13 9791130625881
ISBN10 1130625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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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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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택시 회사를 했다. 이번에 정리했더니 한국 돈으로 한 60억 되는구나. 너희들에게 물려주면 세금을 제하고도 거의 40억은 된다고 하더라.”
“수작 부리고 있네. 당장 나가. 이 더러운 잡년아.”
할아버지 악다구니 속에서 나머지 식구들은 침묵했다. 각자 계산이 바쁜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고개를 숙였다. 뭔가 남에게 들키지 말아야 할 표정이 나올 때 모습이었다. 고모는 ‘주여’ 소리를 다섯 번 냈다. 고모 역시 갈등 중인 듯했다. 그걸 읽었는지, 처음부터 예상했는지 할머니는 한껏 편안해진 표정으로 창밖 어둠을 감상했다.
--- p.39

백파(白波) 최종태 선생. 고결한 흰 물결처럼 평생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는 인생을 산, 이 시대 인텔리였고 독립운동가였으며 전쟁 후 사업 실패 뒤에도 다른 나약한 지식인들과는 달리 가족의 생계를 위해 온갖 잡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성실하고 강직한 사내. 늘 책과 사색을 가까이했던, 어느 동네에 살든 지역에서 존경을 받았던 고매한 인품의 그가 85세 나이에 한밤중 전립선이 막혀 가족들 앞에서 때굴때굴 구르다가 무른 똥을 지렸고 민족을 배반한 더러운 계집에게 짝불이와 조그만 그것을 마사지당했다. 난 그때 깨달았다, 인생이란 결코 정의롭지도 않고 인자하지도 않다는 것을.
--- p.96

“넌 마누라 말을 믿어주지 않았어.”
“네 년이 먼저 후지오카인가 후리오카인가 하는 쪽발이하고 붙어먹었잖여.”
“내가 붙어먹는 거 네가 봤간디?”
“다 들었어, 이년아. 67년이여, 이제 67년 세월을 보내고 그걸 뒤집으려 하면 안 되는 거여. 지난 67년이 내겐 하루도 빼지 않고 피가 끓는 세월이었지만 끝순이, 네가 그냥 잘못혔다고 하면 죽을 때 다 되었으니 받아주진 못혀도 용서할 마음은 있어. 그러니까 괜한 소리 지껄이지 말고 잘못혔다고 한마디만 혀라.”
--- p.167~168

난 화가 났지만 내가 맞은 것보다 더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아버지에게 대들 수는 없었다. 동주는 집에 없었고 할아버지는 끝내 방문을 열지 않았다.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가자 어머니가 부서진 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내가 도우려고 다가섰지만 어머니는 매섭게 내 손을 뿌리쳤다. 어머니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눈물이 핏빛, 빨간 김칫국물에 떨어졌다. 그 후로 난 절대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엄마라고 부르며 이물 없이 굴다가 나도 어느 순간 어머니에게 화를 내며 달려들 것 같아 의도적으로 호칭을 바꾸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 p.258

“다가오지 마. 다가오면 뛰어내린다.”
상희와 난 우뚝 서야만 했다. 그리고 넷은 잠시 말을 잃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현애를 살폈다. 현애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달관한 듯, 무심한 듯, 멍청한 듯, 두려운 듯, 현애는 묘한 얼굴로 상우에게 어깨를 잡힌 채 옥상 끝에 서 있을 뿐이었다. 긴장을 하면, 위험이 닥치면, 남자는 폭력을 생각하고 여자는 비상을 생각한다. 그래서 남자는 누군가를 때리고 여자는 마음속으로 하늘을 난다. 누가 정말 그런 거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지만 내 생각엔 딱 그런 것 같다. 남자도 여자처럼 하늘은 날지 않더라도 땅에서 뛰기라도 한다면. 적어도 주먹을 쥐지만 않는다면. 순간 상우를 때려죽이고 싶었다. 난 두려웠다.
--- p.31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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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헌병과 바람나 가족을 버린 할머니, 살림 솜씨가 엉망인 어머니, 이혼 위자료로 받은 건물 하나 믿고 사는 딸. 얼핏 삼대에 걸쳐 여자들이 집안을 말아먹는 이야기로 보인다. 그런데 그녀들의 곁에 유약하고 경솔한 할아버지, 가족 부양은 팽개치고 정치판에만 기웃거리는 아버지, 변변한 직장도 목표도 없이 술만 마시고 다니는 아들이 있다면? 남자들로 말미암은 거대한 균열을 바지런히 메우는 여자들. 그런데도 정숙하지 못하다고, 엄마답지 못하다고, 계산적이고 영악하다고 비난받는 여자들. 지겹도록 구태의연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여성 비하와 낙인에서 손녀와 며느리와 자기 자신을 구해내는 유쾌한 할머니의 이야기. 『할매가 돌아왔다』는 시대를 너무 앞섰던 소설이다.
- 조남주 (소설가)
할머니에게 정말로 60억이 있었기를 바란다. 누명으로 살아온 오욕의 시간이 60억으로나마 보상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얼마나 다행인가.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고 싶은 의지만을 좇아 살아온 인생, 자신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돌아올 용기를 낸 위대한 걸음을 내딛은 인생이라면 그 대가로 60억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러나 60억만이 할머니를 받아들이는 유일한 세계는 아니기를 바란다. 나에게 60억이 할머니의 잠꼬대에서 시작된 우리 가족이 못다 이야기한 폭력의 역사였듯이 당신에게 60억은 당신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가 되기를. 지금은 “직구를 던질 타이밍”이다. 할매가 돌아왔다.
- 박혜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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