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사람들은 복음 전도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어떤 추가적인 일로 여기며 (만일 그들이 그 일에 관여하고 있다면) 하나님께 선심이나 쓰는 듯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우리의 의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우리의 의무라고 말한다. 현대는 마지못해 복음 전도를 하는 분위기이지만, 바울은 열렬히 또 열심을 내어 그 일을 하려 했다. 오늘날 우리들은―만일 우리가 정직하다면―복음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 '3장 바울과 복음 전도' 중에서
“하나님의 심판은 복음의 일부다. 바울은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실]’(16절) 것이라고 썼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는, 구원의 복된 소식은 신적 심판이라는 어둠을 배경으로 할 때 밝게 비친다는 의미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복음을 다가올 진노로부터 구조되는 것으로 묘사하는 대신에, 단지 불행과 두려움과 죄책과 다른 절실한 필요들로부터 구출되는 것으로만 묘사한다면, 복음을 값싸게 만드는 것이다.” --- '5장 비판적인 도덕론자들' 중에서
“[이 논증은] 1세기의 비판적인 도덕론자들 및 자기 과신적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한다면, 우리 자신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1-3절).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친다면, 우리 자신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21-24절).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선생으로 또는 심판자로 세운다면, 자신을 가르치거나 판단하지 않을 때 핑계 댈 수 없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고 변명할 수가 없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위선에 대해 하나님의 정죄를 받는다.” --- '6장 자기 과신적인 유대인들' 중에서
“구원의 복음에서 기본이 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부 하나님이 구원의 주도권을 쥐신다는 진리다. 복음에 대해 진술하면서 하나님의 주도권을 파하고 우리에게, 심지어 그리스도에게 주도권을 돌린다 해도 그것은 성경적이지 못하다. 우리가 주도권을 쥐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죄를 지었고, 유죄로 정죄받았으며, 무력하고 소망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성부 하나님이 내키지 않아 하시거나 마지못해 행하시는 어떤 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다는 의미에서 그분이 주도권을 쥐신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분명 자발적으로 오셨으며 값없이 자신을 주셨다. 하지만 그분은 성부 하나님의 주도권에 복종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다.” --- '8장 계시되고 예증된 하나님의 의' 중에서
“분명 우리는 인생의 비극과 재난들에 당혹감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바울은 ‘환난’이라는 전후 문맥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고 있다. 환난은 매우 괴로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그 아들의 죽음 안에서 우리를 위한 사랑을 입증하셨고(8절), 또한 그 영이 주시는 선물에 의해 그분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으셨다는 것(5절)을 기억한다. 객관적으로는 역사 속에서, 주관적으로는 체험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그 사랑을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들을 주셨다. 십자가상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아들의 역사적 사역과 그분의 영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이루시는 현재의 사역을 통합시키는 것은, 복음이 지닌 가장 유익하고 만족할 만한 특징 가운데 하나다.” --- '9장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 중에서
“덧붙이자면, 바울을 비판하는 자들이 그를 도덕률 폐기론자라고 비난했다는 사실과, 바울이 자신의 메시지를 철회하거나 심지어 수정조차 하지 않은 채, 시간과 지면을 들여 그들에게 대답하느라 애썼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그가 행위 없는 은혜의 복음을 전파했음을 결정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곧 그가 그러한 복음을 가르치지 않았다면, 그러한 반대 의견은 결코 제기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은혜는 값없이 주어지며 자기 구원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바울의 복음을 전파한다면, 우리는 분명 도덕률 폐기론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비난을 유발시키고 있지 않다면, 아마 우리는 바울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 '9장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 중에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해서 유혹이나 환란이나 비극에서 면제될 것이 보장되지는 않지만, 우리에게는 그것들을 이기고 승리할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져 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고난이 닥치지 않으리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결코 우리를 그분의 사랑에서 끊지 못하리라고 보증하셨다.” --- '11장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 중에서
“만일 하나님이 어떤 사람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다고 해도, 그분이 불의하신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죄로 인해 받아 마땅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신다면 그분이 불의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긍휼로 그들을 다루시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고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 '12장 이스라엘의 타락' 중에서
“바울은 속임을 당하는 원인이 무지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에 대해 잘못되거나 환상의 이미지를 가질 때 우리는 교만해진다. 역으로, 지식은 겸손함에 도움이 된다. 겸손은 위선이 아니라 솔직함이기 때문이다. 교만의 완벽한 대책은 진리다. 로마 교회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서로에 대하여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 '14장 이스라엘의 장래' 중에서
“우리가 국가에 대한 균형 잡힌 성경적 이해를 개발하려 한다면, 가장 기본적인 것은 국가의 권위와 사역이 둘 다 하나님에 의해 국가에게 주어졌다는 진리다. 더구나 국가의 사역에 대해 쓰면서 바울은 두 번이나 그가 다른 곳에서 교회의 사명에 대해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단어인 ‘디아코노이’(diakonoi)를 사용한다. 우리는 이미 성령의 은사에 대해 살펴보면서, ‘디아코니아’가 매우 다양한 사역을 포괄하는 일반적인 용어라는 것을 알았다. 입법자, 공무원, 행정 장관, 경찰, 사회사업가, 세무원 등으로 국가를 섬기는 사람들도 목사, 교사, 복음 전도자 혹은 행정 담당자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역자’다.” --- '21장 국가와의 관계' 중에서
“하지만 기도에 자동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도는 자동판매기나 현금 지급기를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다. 기도할 때 겪는 투쟁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에 이르는 과정, 다른 무엇보다도 그 뜻을 바라게 되는 과정에 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한 것들에 대해 그분의 뜻에 따라 섭리로 일하신다.”
--- '26장 바울의 여행 계획'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