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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느끼한 산문집
eBook

안 느끼한 산문집

: 밤과 개와 술과 키스를 씀

[ EP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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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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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9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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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22.05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8.7만자, 약 2.9만 단어, A4 약 55쪽?
ISBN13 979119031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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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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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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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리터짜리 빈 페트병 여덟 개를 챙겨 1층에 있는 상가 화장실로 물을 받으러 갔다. 물을 받는 동안 생각했다. 내년에도 이 짓을 해야겠지.
수도가 얼면 변기 물도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1층 화장실에 온 김에 마렵지 않은 오줌도 미리 싸야 했다. 한겨울에 오줌 한번 싸자고 벗어놓은 브라와 니트와 패딩과 바지와 양말에 꾸역꾸역 몸을 넣고 4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것은 죽기보다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몇 명의 엉덩이가 닿았는지 모를 술집 변기에 엉덩이를 붙였다. 엄청나게 차가웠다. 소름과 비참함이 등줄기를 타고 몰려왔다. 내 집에서 오줌도 마음 놓고 쌀 수 없다니.
뒈지게 무거운 생수병을 이고 지고 집으로 돌아와 전기포트에 받아 온 물을 데웠다. 그 물로 세수와 양치를 한 다음 남은 물로 발을 씻고 욕실 바닥의 비눗물을 헹구었다. 로션을 바르고 잠자리에 누우니 오줌이 마려웠다. 죽고 싶었다.
2년 전, 지금 살고 있는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68만 원짜리 옥탑으로 이사를 왔다. 1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을 쪼개고 쪼개 3년간 바득바득 모은 돈 800만 원과 박이 회사에서 대출받은 1,500만 원을 합쳐 마련한 집이었다. 전에 살던 보증금 300에 월세 25만 원짜리 반지하에 비하면 궁궐 같은 곳이었다. 이사를 온 날 박과 나는 축배를 들었다. 비록 옥탑이었으나 전과 비교하자면 이곳은 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천국에 훨씬 가까웠으므로.
반지하 집에 비하면 해도 들고 평수도 넓었으나 옥탑은 옥탑이었다. 여름이면 숨이 막히게 더웠고 하수구에서는 똥 냄새가 올라왔다. 겨울이면 영하 5도만 되어도 수도가 얼었고, 전기장판과 보일러를 아무리 빡세게 틀어도 외풍 때문에 코가 시렸다. 오래된 이 빌라는 무너져가는 중인지 우리는 한 달에 한 번꼴로 바닥 중 새로 꺼진 곳을 발견했다. 노후된 수도 배관이 터져 공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이번엔 보일러 배관이 터져 거실 바닥에서 송골송골 물방울이 올라왔다. 계단 벽에 생긴 균열도 길어지거나 벌어지고 있었다. 이 건물의 구석구석이 목숨을 건지고 싶으면 빨리 나가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우리는 돈이 없었다.
태풍이 불던 날, 지진이 났던 날, 강풍이 몰아치던 날. 아무튼 그런 종류의 날이면 박과 나는 두려움에 떨며 진지하게 생존 방법을 모색했다.
“야, 시발. 진짜 이 집 무너지면 어떡하지? 옥상으로 나가야 되냐?”
“옥상으로 나가면 백퍼 뒈져. 옥상도 존나게 후졌잖아.”
“만약에 지진 나면 나는 호랑이 챙길게. 너는 집 계약서 챙겨.”
이런 식의 이야기는 늘 ‘돈을 열심히 벌어서 빨리 이사 가자’로 마무리되곤 했는데 우리가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은 둘 다 아는 사실이었다. 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가 상경한 뒤로 최선을 다해서 한 것이 있다면 바로 보증금 모으기였다. 얼마 되지도 않는 한 달 월급으로 월세 내고, 부모님 용돈 드리고, 보험 및 휴대전화 등 고정비를 지출한 뒤 남은 돈으로 코딱지만 한 적금을 붓고 나서야 다음 달 카드값을 당겨 치킨집에 가 기분을 좀 냈을 뿐이다. 우리는 맹세코 무료입장이 아닌 클럽에는 발 들인 적도 없고, 사치품도 하나 없다. 나는 샤넬 가방은 고사하고 립스틱도 없단 말이다.
--- 「보증금, 너에게 청춘을 바친다」중에서

96만 7,000원.
〈SNL〉 막내 작가 시절 피, 땀, 눈물을 사무실에 뿌려가며 주말도 없이 일해 벌어낸 월급이었다. 통장에 96만 7,000원이 찍히자마자 월세 30만 원, 휴대전화 요금 8만 원, 이런저런 보험료 10만 원, 주택청약예금 5만 원이 빠져나간다. 40만 원 정도의 잔액을 보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 뒤 20만 원을 비상금 통장에 송금한다. 비상금을 모아놔야 방송이 쉬는 기획 기간을 살아낼 수 있다. 석 달마다 돌아오는 기획 기간 동안 들어오는 월급은 겨우 40만 원. 말 그대로 비상사태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통장에 난리 법석으로 출금 내역이 찍히고 나면 잔액은 20만 원. 비참해서 눈이 질끈 감긴다. 애써 눈을 떠 남은 20만 원으로 다가올 한 달을 살아볼 궁리를 한다.
우선 밥값. 나는 거의 매일 출근하므로 30일 치의 점심값이 필요했다. 건강을 포기하고 편의점 음식으로 한 끼를 해결한다고 하면 한 달에 필요한 밥값은 약 10만 원. 에라이. 점심값을 제하고 나면 겨우 10만 원 남는다. 시발. 욕을 안 할 수가 없다.
과장이 아니고 100원 단위를 아껴가며 살아야 했다. 가만히 있어도 혀가 나올 듯 더운 여름은 물론 칼바람에 볼이 썰릴 것 같은 겨울에도 나는 40분씩 걸어서 출퇴근했다. 버스 카드를 찍을 때 나는 ‘삐빅’ 소리, 그 돈 먹는 소리가 사람 잡는 찜통더위나 칼바람보다 훨씬 무서웠다. 나는 없는 중에도 어쨌든 살아내야 했으므로 세트장에 남아 버려질 운명인 소품과 도시락 들을 매주 챙겼다. 남들 눈에는 쓰레기 더미인 현장이 내 눈에는 노다지였다.
어느 가을 새벽, 소품이었던 2킬로그램짜리 잡곡 일곱 봉지를 욕심껏 이고 지고 끌며 집으로 걸어가는데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그래도 엉엉 울면서 끌고 온 곡식들로 따뜻한 잡곡밥을 지어 먹을 때는 행복해서 웃었다.
새벽까지 야근하던 날, 우리가 시간 대비 버는 돈을 동기들과 따져보았다. 최저 시급의 반에도 못 미쳤다. 그 초라한 금액을 똥 싸는 시간도 아껴가며 최선을 다해 벌고 있다니……. 목사님 딸인 동기 가을이 생활비를 충당하려면 노래방 도우미 아르바이트라도 뛰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우리는 그냥 웃었다. 그날 새벽, 야간 할증이 붙은 택시비가 무서워서 캄캄한 거리를 한 시간이나 걸어서 퇴근했다. 유난히 많은 노래방이 눈에 띄었다. (중략)
제작진이나 스태프 앞에서 한없이 야박한 방송국 돈은 엄한 곳에서 줄줄 샜다. 어느 날에는 방송에 말하는 앵무새가 필요했다. “안녕하세요”였던가, “반갑습니다”였던가, 아무튼 다섯 마디 남짓 할 줄 아는 앵무새를 두 시간 정도 섭외했고 그날 앵무새는 80만 원을 벌어 갔다. 그 사실을 안 뒤로 나와 동기들의 목표는 ‘앵무새만큼 벌자’가 되었다. 앵무새이고 싶었다. 나는 30일을 밤낮없이 일해도 96만 7,000원을 버는데 앵무새는 시급이 40만 원이라니. 우리 엄마 아빠가 나 대신 새를 낳았더라면…… 아, 그래. 이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너무 속상하다.
--- 「막내 작가 생존기」중에서

나에게 ‘미워한다’는 것은 감정이나 기분이라기보다 고통에 훨씬 가깝다. 생생한 감각과 온도와 통증으로 온몸에 빠르고 깊게 퍼진다. 심장은 빠르게 뛰고, 꽉 쥔 손은 부들부들 떨리며,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른다. 손, 발, 몸통, 귀 끝으로 미처 도달하지 못한 미움들은 눈가에 고여 땅으로 떨어지거나 가슴팍 안쪽에서 오래도록 싸하게 맴돈다.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기를 꽤 오랫동안 꿈꾸며 살아왔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잠자리에서 베개를 고쳐 눕는 동안 여러 번 기도한다. 하나님, 미워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제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미워한다는 못생기고 추한 과정에 쏟아붓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기도를 마치고 나면 이번에는 누군가를 열심히 미워한 나 자신이 미워서 견딜 수가 없다.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미워하지 않기를 기도하고, 미워했던 나를 강도 높게 미워하는 그런 마이너스의 시간들에 자주 갇힌다.
‘미워하기’라는 행위에 쏟은 에너지는 여간한 행복으로는 다시 거둘 수 없다. 작은 것에서 찾은 행복 속에 충분히 잠기기엔 나는 너무 썩었고 위태롭고 하찮다. 미워하기는 너무 쉽고 행복하기는 무척 어려운 날들을 살면서 마음은 자꾸만 가난해진다.
미워하는 마음은 하강 코스에서 완전히 고장 나버린 롤러코스터처럼 확실한 파괴를 향해 감속 않고 돌진한다. 아무리 애를 쓴들 멈출 수 없는 상태, 그 예고된 결과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장 난 마음이 멈추기를 기도하며 기적을 바라든가, 혹은 예고된 파괴를 등지고 눈을 질끈 감아 외면하는 것뿐이다. 기적은 확실함에 가까운 확률로 일어나지 않고, 외면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는다.
미워함의 대상과 계기와 이유 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중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내가 사랑하는, 내가 사랑했던,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동시에 미워하기. 사랑받으며 미워하기. 한때 서로 사랑했음을 기억하는 가운데 미워하기. 부디 접점이 없어야 할 ‘미움’과 ‘사랑’ 두 단어는 언젠가 기어이 만나 하이파이브를 치고야 만다. 그 둘이 맞부딪치며 내는 ‘짝’ 소리의 파동은 크레셴도로 커지며 온몸을 휘젓다가 명치를 파고들어 흉한 흔적을 남긴다.
서로의 비밀을 빠짐없이 공유한 친구를, 내 평생을 돌봐준 부모를, 사랑을 속삭였던 연인을, 평생 존경할 거라고 믿었던 은사를 미워하고 원망하다가 종내에는 싫어하는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너무 사랑하기에 서운하고, 서운하다 보니 밉고, 미워해서 미안하고, 미안하지만 미워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들을 어찌할 바 모르고 보낸다.
사랑하지 않으면 이렇게 미워할 일도 없을 테고 나는 아프지도 않을 텐데 내 마음은 쓸데없이 물렁하고 담벼락도 하찮아서 늘 아무나 마음에 들이고 듬뿍 사랑에 빠져 괴로운 결말을 보고야 만다.
--- 「미워하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중에서

박과 몇 주 동안 다양한 동네의 부동산을 돌았다. 돌고 돌아 우리 형편으로 살 수 있는 전셋집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가 보증금 1,000만 원을 올리고 살 수 있겠느냐고. 집주인은 집을 내놓은 지 한 달이 되도록 문의가 없어서 걱정했는데 잘되었다며 반색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집에서 다시 살게 되었구나. 차라리 몰랐다면 더 좋았을걸.
며칠 후, 집주인과 만나 1년 연장 계약을 했다. 당장 1,000만 원이 없었기 때문에 대출 심사를 받는 두 달을 기다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두 달 동안 월세를 10만 원씩 더 내면 된다는 대답을 들었다. 10만 원은 별게 아니니 우리를 믿고 계약서에 적지 않겠다고 말하는 집주인에게 이해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빠져나갈 20만 원 때문에 속이 쓰렸다. 계약서를 접으며 집주인이 박과 나에게 고향이 서울이냐고 물었다. 우리는 전라도에서 상경했다고 답했다. 그는 웃으며 젊은이들이 서울살이에 고생이 많다고 격려했다.
카페를 나와서 과연 내년에는 이사를 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올해 열심히 일하고 덜 쓰면 내년에는 옥탑이 아닌 곳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아, 내년에는 또 집값이 오르려나. 우리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똑같은 내년을 맞이하려나. 답답하고 속이 상해서 담배를 한 대 태우는 동안 가난을 팔아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차고 넘치게 품은 이 가난을 싼값에라도 팔 수 있다면 얼마나, 얼마나 좋을까.
골목길에서 밥 짓는 냄새가 났다. 합정역 뒤편에 있는 메세나폴리스가 전보다 더 높아 보였다. 필터만 남은 담배를 세게 털고서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나의 가난은」을 크게 부르며 내가 사는 옥탑방을 향해 괜히 더 씩씩하게 걸었다.
--- 「가난을 팔아 돈을 벌 수 있다면」중에서

넋을 놓는 것조차 피로해지자 집착적으로 책을 읽었다. 엄마가 어린 나에게 해줬듯 소리를 내어가며 글자를 읽는 날이 많아졌다. 중요한 막대기가 모조리 제거된 최후의 젠가처럼 위태로웠던 내 옆구리에 채워 넣을 것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사방에 값싸게 널려 있는 활자들을 끼워 넣었다. 다섯 살의 왕따가 숨어들었던 피난처가 스물일곱에도 오롯하여 안도했다. 스케치북 위에 크레파스로 알록달록한 동시를 쓰는 대신 노트북을 펼쳐 흑백의 내 이야기를 썼다. 피와 땀과 눈물로는 키보드를 두드릴 수 없어서 열 손가락으로 글을 썼다. 속에서 곪아가던 이야기들을 세 장짜리 A4용지에 뱉어내니 후련했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것 같은 글들을 아무도 읽지 않기를 바라며 썼다. 때문에 각기 다른 마음으로 쓴 대부분의 글은 ‘제목 없음’이라는 똑같은 제목을 가지고 이름도 없는 폴더에 버려지듯 저장되었다.
조급하거나 불안해지는 날이면 노트북을 켜고 한글 프로그램의 흰 화면에 걸러지지 않은 글자들을 쏟아내었다. 내 안에 들어찬 욕심과 수치 들을 날것의 글자들로 까불어 엎어낼 때도 있었고, 행복의 순간들을 수를 놓듯 가다듬어 쓸 때도 있었다. 스스로도 보기에 부끄러운 글들이 많았지만 괜찮았다.
그보다 부끄러운 일들은 앞으로 살면서 훨씬 많을 것이므로. 때로는 우스운 글을, 때로는 욕이 가득한 글을, 때로는 미래를, 때로는 과거를 A4용지 세 장만큼 썼다. 쓰고 난 뒤엔 딱 A4용지 세 장만큼 회복되어 조금 튼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 「제목 없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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