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엄마들은 왜 이구동성으로 ‘나’를 찾고 싶다고 할까요?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나’를 잃어버리게 만들었을까요? ‘나’를 잃어버렸는데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엄마들은 다양하게 자신만의 이유를 설명했지만, 저는 그 이유들이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 그리고 입시 중심적인 사회.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활동은 낮은 임금, 보육시설 미비 등 다양한 장애물에 걸려 차단당합니다. 입시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활동은 대학입시까지 무려 20년을 아이에게 붙잡혀 차단당합니다. 이렇게 두 번 차단당하고 나면 금방 50대가 넘어버리죠. ‘내 세계’를 적극적으로 가꿀 가능성은 바닥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 p.24, 「대한민국 엄마들은 왜 “나를 찾고 싶다”고 할까요?」중에서
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미래를 아이들에게 함부로 안내할까요? 심지어 철 지난 방식으로 앞다퉈 선행시킬까요? 왜 그러느라 부모도 아이도 소중한 하루하루를 불행하게 보낼까요?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아이가 어느 길로 가든 새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는 기본연료를 공급해주는 일뿐입니다. 어릴 적부터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과 칭찬을 주고, 찬찬히 인성의 빈 곳을 메워주고, 온 가족이 함께 운동과 여행 같은 풍요로운 직접체험을 하고, 책과 영화 같은 다양한 간접체험도 하고, 그 다채로운 가족문화 속에서 아이가 능동적으로 적성과 진로를 찾아 움직이도록 응원하는 일. 사실 이것이 본래 참된 부모의 역할이지요.
--- p.31, 「우리가 이 입시 중심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을까요?」중에서
멀고 먼 길을 돌아 다시 궤도 속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30년이 지났건만 대한민국의 교육 상황은 변한 것이 없었어요. 제 육아의 목표는 당연히 ‘대학’이 아니었기에, 저는 아이를 입시 경주에 올려놓고 “달려! 1등으로 달리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 하고 등 떠밀 수 없는 엄마였어요. 아이를 등에 업고 대신 뛰어주는 일 같은 건 더더욱 하기 싫은 엄마였죠.
주변을 둘러보니, 제 시야 안에는 모두 비슷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집을 사고 차를 사고 입시를 목표로 육아를 하는 사람들. 저처럼 궤도를 한 번 이탈해본 사람은, 숫자에 호락호락 밀리지 않습니다.
‘여기서 모두 이렇게 산다고 해서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닐 거야.’
그러자 정말이지 궁금해졌어요.
‘다른 삶의 방식은 어떤 게 있을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길을 떠나기로 했죠. 길에서 답을 발견하면 열심히 받아 적기로 했어요.
--- p.51, 「마침내, 꽃이 피는 것을 보았습니다」중에서
사람들은 엄마들에게 ‘끝났다’고 쉽게 말합니다. 이제 혹이 달렸으니 재미는 다 봤다고. 여행 같은 건 생각도 말라고. 천만에요. ‘엄마’라는 자리는 제대로 여행하는 법을, 제대로 세상과 관계 맺는 법을, 월반하듯 깨치게 해주는 자리입니다. 여행만 엄마들을 월반시킬까요? 임신, 출산, 육아라는 강도 높은 ‘인생 수업’ 과정에서 엄마들은 어마어마한 인류애적 성장을 합니다. 넓어지고 깊어지고 따스해지죠. 그 성장은, 엄마가 이후에 무슨 일을 하든 거대한 자산이 되어줍니다.
엄마라는 자리는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 p.54, 「엄마는 저절로 훌륭한 여행자가 됩니다」중에서
남성 중심 사회가 여성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면, 입시 중심 사회가 그녀들을 배턴터치했어요. 경단녀의 끊어진 ‘진짜 사회생활’을 ‘가짜 사회생활’로 대체해주는 역할이지요. 아이의 사회생활이 엄마의 사회생활이라는 착각을 심어주는 방식으로.
새로 전업맘이 된 경단녀는 ‘그동안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안고 입시 경주를 달리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전업맘이었던 여성은 언제나 ‘더 충분한’ 사교육을 지원해주지 못한다는 자책감을 안고 그 경주에서 달리지요. 집에 있으면서 아이도 잘 못 키운다는 자책감은 1+1입니다. 하지만 끝까지 커리어를 버리지 않은 직장맘이야말로 자책감 덩어리입니다. 그녀들은 (남들 다 해주는) 밀착관리를 아이에게 해주지 못한다는 자책감을, 아이가 성적표를 받아올 때마다, 더는 성적표를 받아오지 않는 어른이 되어서도, 한평생 짊어지고 사니까요.
--- p.105, 「필연적으로 죄책감을 안고 사는 요즘 엄마들, 나」중에서
여기서 우리는 이런 구체적인 질문들을 던져봐야 합니다.
왜 나는 학창시절 꼭 친구와 같이 화장실에 갔을까? 왜 지금도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영화 보는 것이
내키지 않을까? 왜 학부모 모임이 피곤하면서도 거기서 소외되면 불안할까? 왜 늘 타인에게 허락과 동의를 구할까? 왜 반대에 부딪히면 곧장 양보하고 포기할까? 왜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더 과감해지지 못할까? 투쟁하거나, 지르고 볼 수도 있는 거 아닐까? 이것은 내가 나를, 나의 판단을 확실하게 지지해주지 못한다는 뜻일까?
왜 나를 포기시키는 역할은 남편뿐 아니라 친정부모, 시부모, 갓 태어난 아이, 직장 상사나 동료가 되기도 하고, 때로 순순히 나 자신이 되기도 할까? 이것은 바꿔 말하면, 아무나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꺾어놓을 수 있다는 뜻 아닐까?
아무나.
젠장.
--- p.115, 「줏대 있는 여성으로 살 수 있을까」중에서
매일 아침 아이가 학교에 가면 가장 먼저 아이 방문을 닫습니다. (직장맘이라면 현관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이 이때가 될 겁니다.) 방 안에 아이가 깜빡 놓고 간 준비물이 굴러다니든, 빵점짜리 시험지가 떨어져 있든, 얼른 나 몰라라 하고 닫으세요. 방문을 닫는 동시에 아이에 대한 생각도 끊습니다. 그리고 만세 삼창하듯, 자신에게 세 번 말해주세요.
“내 인생은 나의 것, 애 인생은 애의 것.”
얼마나 다행입니까? 내 인생만 나의 것이어서. 스트레칭하듯,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 바퀴 돌리는 것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겁니다.
‘우리 가족은 오늘도 즐겁게 살겠다.’
‘성적으로 팔자 고치던 시절은 끝났어.’
‘아이의 관심사를 응원하겠다.’
‘그 관심사가 내 맘에 안 들어도! 내가 그 세계를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니.’
‘게이머, 유튜버, 앱 개발자, 그리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직업이 각광받는 시절이다.’
‘아이는 제 갈 길을 가게 두고,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적어도, 아이와 떨어져 있는 동안만이라도!’
--- p.152, 「나를 찾는 법 1_써 붙이자. ‘내 인생은 나의 것, 애 인생은 애의 것.’」중에서
모든 활동은 자동차와 같습니다. 경차든 리무진이든 스포츠카든 내게 딱 맞는 것을 골라 타고 운전하는 거예요. 여기에 지속이라는 연료가 더해지면 반드시 ‘THE 가치’라는 종착지에 도달하게 되어 있어요.
“가치는커녕, 당장 무슨 활동을 할지도 떠오르지 않는걸요? 눈썹을 그리고 나오긴 했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요?”
오늘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나를 일단 칭찬해주세요.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뭔가 해보겠다고 밖으로 나온 나를. 장한 의지입니다. 희망적인 시작이지요.
당장 뭘 할지 모를 때 할 일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말을 걸어주는 겁니다.
--- p.164, 「나를 찾는 법 4_‘활동’을 찾자, ‘나’만의 속도로」중에서
꾸준히, 중간에 회의감이 들 때도 꾸준히, 벌여놓은 일이니 잡념 없이 꾸준히, 꾸준히 운동하면 내 몸이 좋아질 것을 믿듯이 꾸준히 활동하면 내 인생이 좋아질 것을 믿으며, 꾸준한 인간은 반드시 배우고 성장한다는 것을 믿으며, 꾸준히.
책을 쓰다가 말았어도, 자격증을 준비만 하다 그만두었어도, 중도하차한 사람은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사람과 달라요. 실패담이라도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은 실패담조차 없는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니까요.
--- p.193, 「나를 찾는 법 7_‘꾸준히’ 하기 위해 활동공동체를 만들자」중에서
공동체의 장점은 끝이 없어요. 지금도 매일 전국각지에서 활동보고서가 날아듭니다. 기존의 ‘시중드는’ 엄마, ‘희생하는’ 엄마, ‘내 새끼밖에 모르는’ 엄마 역할이 싫다고 외치는 엄마들이 풀뿌리처럼 늘어나고 있는 거지요. 책 한 권을 골라도, 그들은 내 아이를 경쟁적으로 대학에 잘 들여보내기 위해 고르지 않아요. 다수를 위하고 미래지향적인 시야를 제공해주는 책을 고르지요. 장애아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환경문제에 대해서, 훈육에 체벌이 꼭 필요한가에 대해서….
따로따로 고립되어 있을 땐 무력하던 엄마들이 공동체를 이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들의 몇 년 뒤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아마 무섭게 성장해 있을 겁니다. 그들이 거둬들인 풍성한 열매를 가족들은 나눠 먹겠지요. 지혜로, 자존감으로, 삶에 대한 열정으로, 그들이 가꾼 과실수들 덕분에 그 공동체가 속한 지역도 기름져질 겁니다. 당연히 세상의 숲도 더 아름다워지겠지요.
--- p.206, 「나를 찾는 법 8_독박육아는 금물, 육아공동체로 극복하자」중에서
당연한 이야기지만 수험생 학부모로서 마음이 급하다 해도 아이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것의 비열함 같은 걸 알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당장 아이에게 ‘+1’의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아이의 긴 인생에 있어서 ‘p.10’의 손실을 가져다줄 테니까요. 무엇보다 아이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기억해야겠지요.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엄마를 올려다보면서 내심 다 큰 아이는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당신이 내가 존경하는 그 사람이 맞는지 끝까지 지켜보겠어.’ 그렇다면 할 일은 아주 명확해집니다. 엄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아이일 테니까요.
--- p.262, 「나를 찾는 법 14_‘나’를 잃지 않고 수험생 엄마가 되는 법」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