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피상적인 것만을 보고 서둘러 판단하는 버릇을 가진 사람들 눈에는 방패 잃은 가엾은 미망인이나 배은망덕한 자식을 둔 불쌍한 엄마일지 몰라도 내 눈에는 방패를 흉기로 삼고 취약함을 무기로 사용하는 폭군이었다. 내가 기어코 말해야 했던 순간의 엄마는 누가 봐도 취약한 상태였는데, 이는 바로 엄마가 휘두를 수 있는 최고의 무기를 가진 순간이기도 했다. 사실 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온 습관이 오랫동안 몸에 배서 엄마가 나에게 한 행동이 폭력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무릎을 꼿꼿이 펴거나 머리를 똑바로 드는 것이야말로 불쌍한 엄마에게 대항하는 폭력이었다.
--- p.15
컥컥 소리 내야 할 정도로 큰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내 앞에 커스틴이 있어서 울음을 참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 몸 안의 고통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커스틴은 나와 함께 울어 주었다. 어린 나를 위해 누군가가 울어 준 적 없어서, 그 마음이 참으로 고마워서, 펑펑 울었다. 다 큰 내가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이렇게 누구 앞에서 눈치 보지 않고 울어 본 건 난생처음이었다. 지금껏 나는 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울음을 자제하거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나올 때도 멈추라고 강요받거나, 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을 때도 심한 죄책감을 느끼며 제대로 울지 못했다. 그게 새삼스레 서러워서 침대 시트를 흠뻑 적시며 울었다. 작고 어둡고 따뜻한 방은 울기에 완벽했다.
--- p..52
모든 걸 파악했지만, 내가 파악한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진실을 외면한 것처럼 나 또한 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진실은 거기 있었다. 엄마는 너를 끊었다, 너는 끊겼다. 진실의 목소리와 표정은 분명하고 단호했다. 너무나 분명하고 단호해서 그것의 존재를 의심할 수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사실을 편집할 줄 알아서 선택적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엄마의 진실이 차라리 부러웠다. 나의 진실은 타협을 몰랐다. 진실을 덮지 않고 확 까발린 바람에 난 내팽개쳐졌고, 끊기게 됐다. 진실을 밝힌 대가였다. 하나 남은 부모를 잃게 됐다. 스스로 고아가 됐다. 자진해서 비극을 탄생시켰다.
--- p.122
“어머니랑 같이 산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싫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남편은 정말로 화가 나 있었다. 통속 드라마라면 나와 남편의 대사가 바뀌었어야 할 상황이었다.
“내가 집을 떠난 지 거의 삼십 년이 돼 가. 각자 생활한 지 삼십 년째라고. 부모님이랑 함께 살 때도 난 집에 붙어 있지 않았어. 내가 왜 이란을 떠났는데? 여기서 정착하느라 온갖 고생을 할 때도 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 내가 여기에 온 건 거길 떠나기 위해서 였지 거기에 있는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한 게 아니었다고. 도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랑 그렇게 오래 있겠다는 거야? 삼 개월도 너무 긴데 육 개월이라니. 이해가 안 돼.”
--- pp.173-174
내팽개쳐지고 끊겼어도 무의식은 날 지키고 있었다. 이제 준비됐으니 똑똑히 보라고, 똑똑히 본 후에 행동하라고, 이곳은 나쁘고 싫은 것을 담아 두는 창고가 아니라 언제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을 담아 두는 저장고라고 나의 무의식은 알려 준다. 슬픔은 겸양이 아니라 비겁함이고, 분노는 비이성이 아니라 확실한 이성임을,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 지대에서 깨닫는다. 정의라는 이름 아래 숨겼던 나의 분노와, 관용이라는 이름 아래 숨겼던 나의 슬픔은 얼마나 진실하지 못했던가. 슬픔 아래 눌러 놓았던 것이 분노라니. 헉, 숨이 막혔다. 또다시 고통이 보내는 신호였다.
--- p.213
엄마가 내 전화번호를 외워 둘 리 없고 내 주소를 기억할 리 없으니까, 내가 엄마를 지우면 엄마도 날 지운 거야. 지운다고 진짜 지워졌겠냐마는, 떠나보낸다고 진짜 떠났겠냐마는, 그래도 안녕. 이쯤에서 안녕. 엄마가 먼저 떠났다는 걸 알지만, 어쩌면 이미 아주 오래전에 떠났다는 걸 알지만, 이젠 나도 안녕. 부모 자식 사이도 일종의 관계라는 걸 나보다 먼저 알고 있던 엄마, 엄마가 간 길을 나도 갈게. 하지만, 엄마처럼 중단해도 나는 대체하지 않을 거야. 세상엔 대체할 수 없는 게 있고, 그게 바로 저마다 존재하는 이유니까. 엄마, 여기선 헤어져도 다음 생에선 내 딸로 태어나 줘. 내 딸로 태어나서 내 사랑을 받아 줘.
--- p.283
나 또한 남편과 비슷했다. 사춘기 시절, 치기를 핑계 대며 할 수 있는 행동들을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 일찌감치 철든 아이는 어른보다 더 엄격한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고 그것에 맞게 처신하도록 스스로를 통제한다. 자기 나이에 맞게 행동하는 아이들을 한심하다고 여기고, 어른스러운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인제 와서 보니 한심하고 딱한 건 남편이나 나다. 다른 아이들보다 성장 속도가 빠른 줄 알았는데, 우린 경험했어야 할 성장 단계를 자의와 타의로 건너뛰었을 뿐이다. 그때 못 큰 걸 인제 와서 따라잡으려니 호르몬 덕도 못 보고, 호르몬 탓도 못 해서 실로 힘들다.
--- p.291
남편의 어머니나 나의 엄마가 생각하는 가족은 구성원 개개인의 특성과는 상관없이 관습적으로 정해진 역할에 따라 운영되는 조직이다. 역할에 따른 의무는 선택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당위성을 의심해선 안 된다. 자신이 제대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평가 또한 쓸데없다.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소임을 다했기 때문이다. 이건 소명과도 같아서 사회 구성원으로 태어났으면 누구나 가족을 만들어야 하고, 역할을 맡아야 한다. 역할을 맡으면 지위가 부여되고, 지위가 부여되면 권리가 주어진다. 특히 양육하던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시기가 오면 부모의 권리는 더욱더 확고해진다. 어떤 방식으로 양육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양육의 의무는 부양의 의무를 위한 초석 작업이다. 어떤 면에선 부양을 위해서 양육이 필요하다. 개인의 출생은 집단을 위함이고, 자식의 안녕은 부모를 위함이요, 자손의 존립은 조상을 위함이다.
--- pp.295-296
나는 『주야』와 『로야』를 작품 밖에서도 의도적으로 짝지었고, 작품 안에서도 주인공/구경꾼, 부모/자식, 엄마/아빠, 사건/사고, 가해자/피해자, 단절/연결, 길 잃기/길 찾기, 이편/저편, 오른쪽/왼쪽, 다수/소수, 집단/개인, 관습/본성, 과거/현재, 현실/꿈, 가짜/진짜, 불균형/균형, 표면/심층, 전쟁/평화, 죽음/삶, 어둠/빛, 의식/무의식 등을 고의로 짝지었다. 대칭적 구조의 문장들도 일부러 많이 썼다. 통상적 의미에서 반대 개념인 위의 단어들은 대조하여 읽을 수도 있고, 한데 버무려 읽을 수도 있으며, 교차로 읽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이분법적 사고를 적용할 수도 있고, 와해할 수도 있으며, 이 사이에서 왕래할 수도 있다. 적용했다면 불편했을 것이고, 와해했다면 집중했을 것이며, 왕래했다면 긴장되거나 아팠을 것이다. 당신은, 불편해도 참았을 것이다.
--- p.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