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무수히 많은 곳에서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아름다운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그러면서도 우주는 활기차고 사무적이다. 우주가 우리를 위해서나 우리의 발전을 위해서 그 섬세한 풍경들을 보이고 괴력을 과시하고 인식을 하는 건 분명 아니다. 그럼에도 그 억양들은 우리에게 최고의 활력소가 된다. 우리가 그것들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말이다. 우주에는 빛나는 암시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 p.49
이날 물 위를 미끄러져 나아가는 내내, 다른 많은 날들에도 그랬듯이 작은 노래 하나가 내 마음에 흐른다. 음악적이라 노래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냥 말들이다. 이상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하나의 생각이다. 사실 그런 오후에 그런 생각을 안 한다면, 머리와 몸에 그런 음악이 흐르지 않는다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그 말들은 이렇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 건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난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세상에 주어야 할 선물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 pp.26-27
우리 삶의 양식은 우리를 보여준다. 우리의 습관은 우리를 평가한다. 우리가 습관과 벌이는 싸움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꿈들을 말해준다. 나는 헌신과 유머, 둘 다에 진지한 여우가 되고 싶다. 기나긴 겨울에 대비해 육중한 문을 닫는, 용감하면서도 순응할 줄 아는 연못이 되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빛나는 삶에, 순백의 행복에 도달하지 못했다. 아직은. --- pp.29-30
나는 윌리엄 제임스의 말처럼 종교적인 삶은 어떻게 인식되고 추구되든 “인류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믿는다. 철저히 그런 삶을 사는 것이 나의 ‘욕망’이다. 학교에 들어가기 싫어하며 들판에서 춤추는 그것을 보는 건, 내 ‘의지’다. --- pp.31-32
나는 학교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우리의 유일하고 무한한 신성을 암시해주는 건 언제나 자연계, 열리지 않은 무수한 샘들이었다. 자신이 축복받은 존재임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아는 그런 상태에서는, 그늘에서 햇살 속으로 움직이기만 해도 그 생명의 열기를 느낀다. --- p.32
우리는 살면서 많은 문지방들을, 별을 보러 나가거나 온기와 가족을 찾아 돌아오는 집들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집은(들보와 못이 아닌, 존재 그 자체로 이루어진 집은) 전부 흙으로 되어 있고 문도 없다. 바다나 별들, 기쁨이나 비참함, 희망, 나약함, 탐욕 이외의 주소도 없다. --- p.49
문제는, 삶에서든 글쓰기에 있어서든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혹독한 날씨는 이야기의 완벽한 원천이다. 폭풍우 때 우리는 무언가 해야만 한다. 어디론가 가야만 하고, 거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기쁨을 느낀다. 역경, 심지어 비극도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스승이 된다. --- pp.61-62
우리 삶의 모든 음악은 그것들 안에 있다. 신들은 행위하고, 우리는 그 행위의 목적은 알지 못하지만 이것만은 안다. 세상은 우리의 깊은 관심과 소중히 여김의 소용돌이와 회오리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 하늘의 신도 그러하고 강의 신도 마찬가지다. 금칠한 대성당의 신뿐 만 아니라 초록 들판(사람들이 무심코 걸음을 멈추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개똥지빠귀들이 어둠 속에서 노래하는, 작은 개들이 짖어대며 깡충거리다가 귀를 뒤로 젖히고 우리를 향해 기쁘게 달려오는)의 신도 마찬가지다. --- p.124
시는 바늘처럼 단순하든, 물레고둥 껍데기처럼 화려하든, 백합 얼굴 같든, 상관없어. 시는 말들의 의식, 하나의 이야기, 기도, 초대, 아무런 현실감 없이 독자에게 흘러가서 마음을 흔드는, 진짜 반응을 일으키는 말들의 흐름. --- p.126
나는 날마다 내 풍경 속을 걷는다. 늘 똑같은 들판, 숲, 창백한 해변. 늘 똑같은 푸른빛으로 즐겁게 넘실대는 바닷가에 선다. 늦은 여름 오후, 보이지 않는 바람이 거대하고 단단한 똬리를 틀고, 파도가 흰 깃털을 달고 해변을 향해 달려와 소리 지르며, 고동치며 마지막 상륙을 감행한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기억도 할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목격했다. 여름이 물러가고, 다음에 올 것이 오고, 다시 겨울이 되고, 그렇게 계절은 어김없이 되풀이된다. 풍요롭고 화려한 세상은 우주 안에서 그 뿌리, 그 축, 그 해저로 조용히 그리고 확실히 흔들리고 있으니까. 세상은 재밌고, 친근하고, 건강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하고, 사랑스럽다. 세상은 정신의 극장이다. 하나의 불가사의에 지극히 충실한 다양함이다. --- pp.137-138
일어서기 위해, 나는 그 위에서 일어설 들판이 필요하다. 깊어지기 위해, 그 아래로 내려갈 바닥이 필요하다. 물질세계가 그 초록과 파랑의 색조 아래 지니고 있는 항상성은 나를 더 훌륭하고 풍요로운 자아로 이끈다. 그걸 고양이라고 부르자.(적절한 표현을 찾기가 어렵다.) --- p.138
소위 문명시대로 불리는 이 시대의 위험성 중 하나는 이 영혼과 풍경, 우리 자신의 최고 가능성들과 우리의 창으로 보이는 경치의 관계를 충분히 인식하고 소중히 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만큼 우리에게도 세상이 필요하다. 은밀히, 친밀하게, 확실히. 우리에겐 종달새가 날아오르는 들판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새는 단순한 새 이상의 존재, 우주의 목소리다. 신성한 기쁨으로 충만한 힘찬 목소리. 물질세계가 없다면 그런 희망은 산산조각 난다. 고갈된다. 야생의 세계가 없다면 그 어떤 물고기도 눈부신 빛을 발하며 물 위로 뛰어오를 수 없고, 그 어떤 사슴도 영원한 물처럼 부드러이 들판을 달릴 수 없다. 그 어떤 새도 날개를 펴고 자연의 계획까지도 넘어서는 자신감과 모험심과 용기를 품을 수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 p.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