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즐기라, 카르페디엠. 개봉 당시 젊은이에게 수많은 영감을 준 [죽은 시인의 사회](1989년)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키팅 선생님은 집안의 기대 때문에 성적의 노예가 된 학생들에게 자신만의 인생을 위한 꿈을 키우라고 격려하며 이런 말을 해줍니다. 카르페디엠(carpe diem)!”‘오늘을 잡아라!’, 즉 현재에 충실하라는 뜻입니다. 요즘은 ‘현재를 즐기라’는 뜻으로 많이 쓰이죠. 본래는 스피노자의 “내일 지구가 망한다 하더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카르페디엠은 그저 현재를 즐기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도리어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으니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는 다소 비장한 의미입니다. 물론 똑같은 이유로 오늘을 즐기자고 해석할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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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서도 이런 상황을 경계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우리가 어떤 정보를 받아들일 때 실수하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해 ‘우상(idola)’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이때 우상은 본받고 싶은 훌륭한 인물이 아니라 잘못된 숭배의 대상이라는 뜻인데요. 베이컨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사실은 거짓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열어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잘못된 믿음을 베이컨은 우상이라고 말한 것이죠. 우화 속 배고픈 늑대처럼 내가 원하는 정보가 더 크게 보이고, 더 크게 들리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내 귀에 달콤한 정보만을 믿죠. 그래서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결정일수록 더 조심하고 신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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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하는데요. 감각적 쾌락을 목표로 하는 쾌락적인 삶, 명예를 얻거나 어떤 일에서 뛰어남을 인정받는 정치적인 삶,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행복이 바로 관조하는 삶입니다. 관조(theoria)는 그리스 말로 ‘테오리아’라고 하는데, 영어 이론(theory)의 어원입니다. 관조하는 삶, 즉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는 삶이 가장 높은 수준의 행복인 이유는 이렇습니다. 육체적 감각을 만족시키려는 쾌락적인 삶은 매우 일시적입니다. 심지어 그 만족감이 사라지면 허탈하기까지 하고요. 또 명예를 추구하는 삶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의존해 늘 속박된 상태이므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수를 통해 자신의 행복감을 확인하려는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붙잡혀 있는 셈이라는 것이죠.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이런 행복은 자족적이지 않으므로 불완전합니다. 반면 관조하는 삶은 다른 사람에 의존해 속박되어 있지도 않고, 또 일시적이 아닌 지속적인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가장 높은 수준의 행복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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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그리스에는 ‘이소노미아(isonomia)’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소’는 같다는 뜻이고, ‘노미아’는 법을 뜻합니다. 그 뜻이 여러 가지로 해석되지만, 대개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말로 옮겨집니다. 돈이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약한 처벌을 받고 가난하고 힘이 없다고 불평등한 처벌을 받는다면, 그 사회는 정의롭지 못합니다. 강자가 약한 자를 배려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대하는 행동이 뭐가 잘못이냐고 생각한다면, 그런 갑질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해서인데요. 세상에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되물을 수 있지만, 우리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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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투쟁, 인정받기 위해서는 먼저 인정해야 한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욕망 하나를 분석합니다. 그것은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인데요.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애씁니다. 이 욕망은 주체성의 형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신을 독립적 주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죠. 투쟁이라는 용어는 그런 과정이 대개 갈등의 양상으로 나타나곤 하기 때문입니다. 청소년기에 좌충우돌하는 경험은 이런 인정 투쟁의 욕망과 관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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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홉스는 무질서한 상황이 초래하는 위험을 잘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 자신이 정치적 혼란으로 인한 폭력과 전쟁의 상황에서 성장했기 때문인데요. 홉스는 이런 혼란을 종식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강력한 힘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이런 생각을 다듬어 『리바이어던』이라는 책으로 만들어냅니다. 리바이어던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거대한 바다 괴물인데요. 홉스는 국가라는 강력한 힘을 리바이어던이라고 묘사합니다. 『리바이어던』은 국가의 탄생을 다루는데요. 당시 국가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던 시절이었던 만큼, 홉스의 이 책은 근대 정치학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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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 삶을 속박했던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죠. 하나의 딜레마적 상황, 마치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의 끈끈한 연대감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지만 그 대가로 자신의 자유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든, 아니면 자신만의 자유를 누리되 고독하고 불안한 상황이든, 그 어느 쪽도 만만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우만은 개개의 음들이 자기만의 색깔을 갖고 있지만, 그런 음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협주곡이 바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삶의 공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물론 서로 다른 음들이 조화롭게 연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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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명의 의견이라도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자유론』에서 단 한 명의 의견이라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잘못 판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누군가의 의견을 단지 그가 소수라는 이유로 무시한다면, 이는 온 인류가 한 걸음 더 발전할 기회 자체를 날려버리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밀은 신체의 자유처럼 생각의 자유와 자기 생각을 표현할 자유는 신성하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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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는 자신이 예루살렘의 재판정에서 겪은 소회를 [뉴욕타임스]에 기고해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는데요. 그 이유는 아이히만을 평범한 사람으로 묘사해서였습니다. 같은 유대인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는데, 그런 악인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묘사한 사실 자체에 희생자들이 분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렌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를 더욱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아렌트는 일상을 평범하게 사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거대한 악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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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이론 중에 토머스 정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토머스 정리는 1928년 사회학자 윌리엄 토머스와 그의 조교 도로시 토머스가 출간한 책에서 나온 말로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만일 사람들이 어떤 상황들을 실제라고 믿는다면, 그 상황은 현실이 될 것이다.” 사회학자인 로버트 머튼은 토머스 정리를 좀 변형해 자기충족적 예언이라고 개념화합니다. 자기충족적 예언이란 잘못된 예언으로 인해 어떤 행동을 하게 되고, 그 행동이 결국 그 예언을 현실로 실현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어떤 뉴스에서 올해는 기후 변동 때문에 커피콩 작황이 좋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사람들은 조만간 커피값이 오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커피콩 사재기를 시작해 실제로 커피값이 올라갑니다. 커피값의 상승은 커피 작황이 안 좋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예측 때문이지 실제 커피 작황하고는 상관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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