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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들

유령들

: 어느 대학 청소노동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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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414g | 145*210*30mm
ISBN13 9788966551170
ISBN10 8966551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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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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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의 임직원들이 그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존재를 없애기 위해 어떻게 부정한 세력과 결탁하는지를 목도했다. 그 이후로는 대학에 대한 어떠한 기대도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사학 비리를 저지른 재단 소유주에게는 한없이 머리를 조아리지만,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조롱과 혐오를 일삼는다. 불법을 자행하고, 비리에 침묵하는 일이 마치 그곳의 학풍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대학은 이미 자본을 능가하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대학의 실체다.
---「작가의 말」중에서

현재까지는 강자든 약자든 부정한 짓을 저지르는 이들이 살아남았다. 불편한 역사다. 그 속에는 억압받는 자들이 힘겹게 걸어온 길이 지워져 있다. 억압자의 더럽고 추악한 모습은 걷어내고 자랑하고 홍보하고 싶은 내용으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 이들은 오늘도 자신들이 짓밟은 자들을 향해 승리의 축배를 든다. 이들의 얼굴에서 부끄러움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에게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

비리에 눈감고, 약자를 억누르는 사회에서 정의는 움트지 않는다. 죽은 진리의 전당에서 지식인이 태어날 리 만무하다. 그런 곳에서 학생도, 교수도 어차피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에는 무관심하다. 그들에게 피억압자들의 운명을 맡기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오로지 짓밟힌 자들끼리 힘을 합칠 수밖에 없다.

나는 억압자들의 승리를 바라지 않는다. 아직 그들이 이겼다고 보지도 않는다. 억압자들만 승리하는 세상에서 피억압자들은 더 이상 희망을 품을 수 없다. 미래에 대한 꿈이 있어야 저항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억압자들의 실패를 보고 싶다. 그러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피억압자들의 역사가 억압자들의 기록으로 새롭게 덧칠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민주노조 파괴는 현재진행형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잊지 않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썼다.
---「작가의 말」중에서

입사 후, 그녀는 식당에만 오면 다른 동료들의 식사 속도를 맞추느라고 자주 위장병에 걸려서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녀가 생각해낸 방법은 바로 ‘빨리 먹고 체하느니, 천천히 적게 먹기’였다. 그녀의 방법에는 단점이 있었다.

퇴근할 즈음, 적은 식사량 탓에 눈앞이 깜깜해질 정도로 허기가 졌고, 그러면 집에 허겁지겁 달려가서 ‘두 번째 점심’을 먹어야 했다. 그럼에도 마음은 편했단다. 그녀가 밥을 늦게 먹는다고 나무랄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었으니까. 당시에는 양푼에 밥과 반찬을 쏟아붓고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는 게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는데, 그때가 하루 일과 중 유일하게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당시는 지영처럼 모든 청소노동자가 ‘생존식사’를 했던 것이다.
---「1. 첫만남」중에서

유령이 되란다. 청소노동자가 되기 위해서는 새벽 출근이나 일도 일이지만 지영이 말하는 것처럼 유령이 되어야 했다. 나는 빈 강의실을 골라 다섯 곳만 청소하고 그녀를 따라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직 두 곳이 남아 있었는데 화장실 청소를 끝내고, 마무리할 참이었다.

때마침 소변을 보던 학생이 있었다. 그는 지영을 보고도 투명인간처럼 대했다. 반면에 그녀는 그의 존재를 확인하자 몸을 틀어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그는 지영보다 청소복 차림에 고무장갑을 끼고 있던 나를 더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2. 유령들」중에서

공대 건물 휴게실만 특별하게 열악한 건 아니었다. 청소노동자들이 쓰는 휴게실은 대개 비슷한 형태를 띠었다. 특히 도서관 휴게실은 공대 건물 휴게실처럼 계단 아래 자리한 것이 판박이였다. 3평(5.843㎡) 남짓한 면적에 천장까지 높이는 100㎝ 정도로 더 좁고 더 낮다는 것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일 수 있었다. 도서관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실제 창고로 쓰이던 곳이었는데 도서관에서 사용하는 책상과 의자를 주로 보관했었다.

그전에는 도서관 옥상이 그들의 휴게실이었다. 옥상에 설치된 수십 개의 실외기에서 나오는 소음이 너무 커서 휴게실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굉장히 열악한 곳에서 그보다 조금 덜 열악한 곳으로 바뀐 것이었다. 나이 70을 바라보는 한 노동자는 그곳에서 4년 정도 생활하고 이명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3. 숨겨진 감옥」중에서

추미애법에 의해 태어날 수 있었던 ㅈ노조의 배후에는 ㄱ대가 있었다. 추측건대, 복수노조 설립 계획은 박 사장 형제의 머리에서 나올 만한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박 사장은 원청인 학교의 지시에 따르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민주노조가 이미 조직되고 얼마 후, ㄱ대 총무처장실에서 민주노조 와해 문서가 발견되기도 했을 정도였다.

만약에 박 사장의 지원을 받는 ㅈ노조가 다수 노조의 지위를 얻으면 민주노조는 교섭권을 잃게 된다. 그러면 자연히 박 사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임단협 내용이 바뀔 수 있었다. 교섭창구단일화 제도의 문제는 ㄱ대만의 일이 아니었다. ㅊ노조가 다수 노조인 곳이 꽤 있었다. ㄱ대보다 3개월 앞서 민주노조를 조직한 ㅈ대분회는 ㅊ노조가 다수 노조 지위를 유지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7. 그들의 배후」중에서

1층에서 대걸레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일찍 출근한 교수인지 교직원인지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엘리베이터에 오르면서 지영을 이상하게 째려보았다. 그때 알아챘어야 했다. 그가 올라갈 층수 버튼을 누른 다음 지영이 7층 버튼에 고무장갑 낀 손을 갖다 대려는 찰나였다. 그는 인상을 쓰며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막았다. 놀란 지영은 버튼을 누르려다 말고 가만히 있었다. 그는 5층에 다다르자 한마디를 남기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10. 익숙한 차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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