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학(커뮤니케이션론)의 입문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책이 다른 입문서와 다른 점이라 하면 제목 ‘일본어와 커뮤니케이션’의 앞부분인 ‘일본어’와의 관계일 것이다. 커뮤니케이션학의 접근 방식에는 먼저, 커뮤니케이션에 반드시 포함되는 언어의 종류와는 상관없이 보편적인 과정이나 현상을 추출하려는 방향성이 있다.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이 늘 어떤 구체적인 특정 언어로 구사되는 활동이란 점에서 각 언어의 언어학적 특징이나 지리적·역사적 사정을 반영한 측면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일본어’라는 언어의 특징과 사정이 일본인의 커뮤니케이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주목했다.
---「서문」중에서
이처럼 인간관계에 따라 나타나는 비대칭적인 현상을 풀 수 있는 열쇠는 바람·희망이나 감정 등이 인간 내면의 보다 ‘사적’ 영역에 속한다는 점에 있다. 그 때문에 일본어의 경우,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발화에서는 말로 그 영역을 ‘건드리는’ 것 자체가 예의에 어긋나고 실례로 간주되는 것이 암묵적 룰의 정체이다. 한편, 대등한 관계나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발화에서는 이런 제약이 없다는 것을 (4), (5)의 예로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어나 중국어에 이러한 룰이 있는가 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이 책에서 이 주제와 가장 관계 깊다고 할 수 있는 것은 7장의‘칭찬’으로, 나이 든 세대일수록 ‘손윗사람을 칭찬해서는 안 된다’라는 예절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논리이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어 커뮤니케이션」중에서
주의할 점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에서 ‘대인 거리’는 물리적 거리를 말하지만, 이 장에서는 언어적인 인사도 포함하므로 상대와 직접·간접적으로 접촉하는 정도나 가능성의 크기로서 ‘대인 거리’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눈을 맞추는 두 사람의 실제 거리는 때에 따라 다르지만 간접적이어도 시선을 ‘주고받는’ 접촉이 생긴다. 이에 대해 일본식 의례에서는 허리를 깊숙이 숙이는 인사든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인사든, 상대의 얼굴이나 눈을 보는 것은 거북하므로 한순간이라도 시선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과 같이 눈 맞춤이 빠질 수 없는 문화에서 자란 사람은 일본식 의례를 행할 때도 시선을 피하지 않아서 기묘한 모습으로 비춰지기 쉽다. 반대로, 시선을 피한다는 의식이 강한 일본인이 악수 등을 할 때 시선을 피하면 무례한 인상을 주게 된다.
---「인사 커뮤니케이션」중에서
일본어 화자와 중국어 화자 간의 거절의 담화를 비교 검토한 연구를 소개하겠다(李, 2013). 이 연구에서 리하이옌(李海燕)은 실제로 의뢰와 권유에 대한 거절 방법을, 인간관계를 다양하게 바꾸면서 일본어 화자와 중국어 화자를 대상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두 언어 간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거절의 담화에서 최초로 무엇을 말하는가에 주목했더니, 일본어 화자는 인간관계와 상관없이 우선 사과를 하는 데 반해, 중국어 화자는 인간관계에 따라 사용되는 전략이 달랐다. 윗사람에게 의뢰받는 장면에만 사과가 이용되는 한편, 그 외에서는 공감을 나타내거나 이유에 대한 설명을 한다.
---「의뢰·권유와 응낙·거절」중에서
일본어의 수사에 적용해 보면, 고전 중국어인 한문의 영향과 히라가나 문학으로서의 와카의 전통, 그리고 가나문자의 성질을 이용한 언어유희적인 측면도 발달했다. 이것도 앞에서 다룬 것처럼 한중일(韓中日)의 세 언어에는 오노마토페(의성어, 의태어)가 많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일본어의 ‘오노마토페 선호’ 현상은 일본어의 특징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뚜렷하다.
그런 이유로 이 장에서는 ‘일본어’에 초점을 맞추어, 일본어가 발달시켜 온 수사 표현의 특징과, 수사 표현의 하나라 할 수 있는(설명은 뒤에서 하겠다) 오노마토페를 고찰하기로 한다.
---「일본어의 수사 표현과 오노마토페」중에서
인사말에도 신종(新種)이 출현하고 있다. 아직 평가하기에는 이르지만 출현 배경에 대한 해석은 가능하므로 마지막에 언급하기로 한다. (6) 「いらっしゃいませ、こんにちは!」 위의 표현은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 체인점에서 시작하여 마트 계산대에서도 쓰이게 되었고, 2014년 기준 많은 업종으로 확대된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인터넷상에서는 이 인사말에 비판적인 글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내용을 읽어 보면 손님 얼굴도 안 보고 먼 곳에서 「いらっしゃいませ、 こんにちは!」라고 해도 전혀 기쁘지 않다고 하는, 인사 방식에 대한 비판이 눈에 띈다. 표현 내용을 살펴보면 「いらっしゃいませ」와 「こんにちは」는 전혀 다른 인사말이고, 두 표현이 상정하는 상대가 다르기 때문에 같이 쓰는 것은 모순이라는 점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어와 커뮤니케이션」중에서
이 인사말들이 5년 뒤에는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으나, 지금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현상의 출현이 종래의 ‘접촉하지 않기’ 커뮤니케이션 일변도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사람들이 느끼기 시작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가까운 인간관계에서는 당연히 ‘접촉할 수 있는’ 거리감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만 사회적 인간관계 속에서도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그 속에서 일본어 커뮤니케이션이 보다 동적이고 풍부한 표정을 가진 모습으로 성숙해 나갈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다. 마트의 계산대에서도 「いらっしゃいませ」라고 한 뒤, 「こんにちは」의 타이밍에서 이쪽 눈을 바라보고 말하는 점원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면 이쪽도 뭔가 한마디 답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그 결과로, 마트 계산대를 통과할 때는 서로 한마디씩 주고받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새로운 공손 커뮤니케이션이 습관으로 정착된 일본어를 그려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일본어와 커뮤니케이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