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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 음식 : 나라 잃은 백성처럼 마신 다음 날에는

해장 음식 : 나라 잃은 백성처럼 마신 다음 날에는

띵 시리즈-00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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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3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180쪽 | 172g | 115*180*11mm
ISBN13 9791190403542
ISBN10 119040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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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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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양냉면을 사랑하는 이유는 해장으로 완벽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냉면 한 그릇을 비우는 전체 과정이 해장에 딱 최적화되어 있다. 먼저 메밀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면수를 홀짝거리며 냉면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메밀면을 삶은 면수는 숭늉처럼 구수하고 따뜻해 과음으로 뒤집힌 속을 살랑살랑 달래준다. 이윽고 냉면이 나오면 그릇을 두 손으로 단단히 받쳐 들고 국물부터 쭈우우욱 마신다. (나는 이때 거의 3분의 1을 마시기 때문에 얼음 없는 적당한 온도의 국물을 선호한다.) 입안에 맴도는 고기육수 맛과 동치미 맛을 천천히 음미한다. 시원한 국물은 위장으로 내려가 술의 화기를 가라앉혀준다.
--- p.34

이윽고 거무죽죽한 선지 덩어리와 음침하게 생긴 내장들, 그 사이를 마구 휘감고 있는 우거지와 콩나물, 피처럼 붉은 고추기름이 부글부글 끓고 있어 마치 지옥탕의 미니어처 같은 것이 한 그릇 내 앞에 놓였다. 마른침을 한번 삼켰다. 한창 마실 나이 서른 살이었고 자타공인 이 구역의 미친 술꾼이었지만, 해장국 앞에서만은 ‘쪼렙’이었다. 선지도 내장도 못 먹었기 때문이다. 바싹 구운 소곱창이나 진한 양념에 볶은 돼지곱창 정도는 몇 점씩 먹었지만 물에 빠진 내장들은 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렸다.
--- p.58

해장은 ‘기분’의 지분이 90% 이상인 것 아닐까? 속이 풀린 것 같은 ‘기분’, 머리가 맑아진 것 같은 ‘기분’. 그걸 느끼게 해주는, 자기에게 잘 맞는 음식과 방법이라면 콜라를 끓여 마시든 피클 국물을 마시든 남이 뭐라고 할 순 없는 거다. 그러니 무릇 훌륭한 술꾼이라면 ‘이색적’이니 ‘엽기적’이니 하는 포인트 에만 꽂힐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해장법을 엿보고 참고하면서 자기만의 해장법을 찾아 끝없이 정진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 맛있고 참신한 해장 음식을 먹기 위해 나는 오늘도 거나하게 술을 마신다. (응?)
--- pp.87-88

통증 받고 통증 더! 어제의 과음으로 생긴 통증에 오늘의 통증을 새로 덮어쓰면서 국면을 전환하기 위함은 아닐까? 울렁거렸던 속은 이제 울렁거리지 않는다. 쓰라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두통으로 깨질 것 같던 머리는 이제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설사가 시작되어 똥꼬가 맴맴해졌기 때문이다. 가히 통증의 돌려 막기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일종의 자학적 쾌감도 동반되는 게 아닌가 싶은데… 과학적인 분석은 이렇다. 매운맛이 입안의 통각세포를 자극하면 대뇌에서는 ‘아픔’으로 인지하여 그 대응책으로 천연 진통제인 엔도르핀을 분비한다는 것이다. 엔도르핀이 나오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 효과 때문에 매운맛을 자꾸 찾게 된다는 것.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 pp.94-95

어불성설 같지만, 숙취는 꼭 필요하고 소중하다. 너무 많은 독성을 해독하느라 혹사당한 장기들이 보내는 강력한 경고 사인. 그러니 숙취가 오셨다 하면 겸허히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참고 견뎌야 한다. 최선을 다해 해장을 하고, 그것조차 힘들면 잠,물, 똥 3원칙이라도 충실히 따라야 한다.
--- p.111

밖에서 사 먹을 때는 토렴식, 즉 뚝배기에 밥과 콩나물을 담은 뒤 육수를 부어 내는 방식의 국밥을 주문한다. 온도가 적당해서 위에 부담이 덜하고 입천장이 홀랑 까지는 일도 없다. 이 토렴식 국밥을 남부시장식이라고도 한다. 가끔 전주에 가면 남부시장 안에 있는 ‘현대옥’에 반드시 들르는데, 그 전날은 또한 반드시 엄청나게 과음을 하고 만다. 왜일까? 다음 날 현대옥 콩나물국밥이 나를 살려낼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일까? 한마디로 든든한 ‘빽’이 있어서? 정답: 전주에는 맛있는 술과 안주가 너무 많아서 과음을 할 수밖에 없다. (50점) 나는 언제 어디서나 과음을 한다. (100점)
--- p.139

아무튼 그날 나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곧 있으면 삼십대니까 이미 어른이 맞는데도, 내가 찾아낸 허름한 노포에서 아빠와 마주 앉아 술국에 소주를 마시고 있으니 이제야 진짜 어엿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앞으로 여기 술값은 내가 계산할 거라고 큰소리도 빵빵 쳤다. 고기는 또 어쩜 그렇게 맛있는지. 아빠도 기분이 좋으셨다. 엄마가 옆에 있다면 하지 않았을 옛날 이야기도 술술 들려주셨다. 우리는 그 뒤로도 몇 차례 햇빛촌 순댓국집에 갔다. 모둠고기, 술국, 소주 두 병이면 딱 좋았다. 아빠 젊었을 적 이야기도 하고, 같이 엄마 흉도 봤다. 그런 날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주전부리를 사서 들어갔다. 다른 가족들과는 햇빛촌에 가지 않았다. 그곳은 온전히 아빠와 나만의 장소였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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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평소 성실하고 철저한 과음으로 최적의 숙취 상태를 유지해온 미깡 작가의 해장 임상실험기이다. 숙취와 해장 음식이 환상의 하모니를 이루는 과정을, 각종 해장 음식과 그에 얽힌 추억들을 어찌나 맛깔나게 그렸는지, 살다 살다 안주도 아니고 단지 해장 음식이 먹고 싶어서 술 생각이 간절해진 건 또 처음이다. 안 웃고 넘긴 페이지가 없고 끝에 가선 눈물을 쏟았다. 정말 당해낼 수가 없다. 이 타고난 술꾼, 이 타고난 이야기꾼을.
- 김혼비 (『아무튼, 술』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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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 + 나라 잃은 백성처럼 마신 다음 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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