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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

죽은 시인의 사회

b판시선-034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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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3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51쪽 | 218g | 124*194*10mm
ISBN13 9791189898243
ISBN10 1189898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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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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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정에서 취재하러 남한에 온
조선족 난민의 후손 윤동주 시인이
말이 통하지 않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를 데리고 예멘 청년들을 만났다
나는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아랍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윤동주 시인을 보면서
시를 잘 쓰면 절로 아랍어가 터득되나 보다 했다
윤동주 시인은 대화 내용을
바로바로 나에게 통역하였다
난민 신청했다가 인도적 체류 허가받은 예멘 청년들 중에는
시를 습작하는 시인지망생 하산 씨가 있어
시인인 우리를 알아본다고 했다
예멘 청년 하산 씨는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 도시에서 공부했으며
어릴 적부터 시인이 되기를 꿈꾸었노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은 내가
윤동주 시인도 마당에 자두나무가 있고
울 밖에는 살구나무가 많고 쪽문을 나가면 우물이 있고
대문을 나서면 텃밭이 있는 집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어릴 적부터 시인이 되기를 꿈꿨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예멘 청년 하산 씨가 인도적 체류 허가받은 지금 처지로는
시를 습작하기에 난망해 보여
요즘은 무슨 꿈을 꾸느냐고
윤동주 시인에게 물어봐달라고 부탁했다
윤동주 시인이 내 질문을 전했는지
혹은 전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했는지 몰라도
몇 마디 중얼거리는데도
낯빛이 빛나 보이는 예멘 청년 하산 씨와
윤동주 시인이 환하게 웃으면서 악수를 해서
나도 따라서 환하게 웃으면서 악수를 했다
윤동주 시인은 용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한에 머물면서 예멘 청년들과 자주 만나야겠다면서
시인지망생 예멘 청년 하산 씨가 한 대답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
한국어로 시를 쓰고 싶다,
난민이 된 예멘인들에 대해서 한국어로 시를 쓰고 싶다,
예멘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은 보통 예멘 사람들이 벌린 전쟁이 아니라는 걸 보통 한국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한국어를 가르쳐달라, 고…
--- 「죽은 시인의 사회·1」 중에서

천상에서 놀러 나온 이육사 시인을 뵈려고
죽은 지 몇 십 년 되지 않은 시인들이 모였다
헛된 시를 많이 쓴 죄로
지하 이편에서 떠돌다가 돌아온 내가
독재자에게 시 한 편씩 써서 바친
조병화 시인*과 서정주 시인과 김춘수 시인에게
지하 저편에서 잘 지내다가 돌아왔는지 물으려는데
조병화 시인과 서정주 시인과 김춘수 시인이
이육사 시인에게 천상이 어떤 곳이냐고 물었다
이육사 시인이 동문서답하기를
시인이 독재자에게 부역하기 위해 쓴 헌시를
독자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시인이 쓴 서정시랄까 순수시랄까
그런 시도 독자가 기억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병화 시인과 서정주 시인과 김춘수 시인을 제외한
나머지 시인들 모두 고개를 숙였고,
지하에서 보낸 인생에서 깨달은 점은
시를 잘못 쓴 죄가 가장 큰 죄라는 진실이었다고
어떤 시인이 고백했을 때,
천상에 계시는 한용운 시인과 이상화 시인과 윤동주 시인도
그런 말씀을 해서 마침 전하려던 참이었다고 화답한 이육사 시인은
다음번에 천상에서 놀러 나올 때엔
그 시인들과 함께하겠다고 언약했다
천상과 지하 사이에서 아직 살고 있는 시인들이 짝짝짝 박수를 쳤다
빈손을 잡고 서 있는 조병화 시인과 서정주 시인과 김춘수 시인에게
지하 저편에서 잘 지내다가 돌아왔느냐고 내가 물어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지하에 바치는 헌시를 쓰면 지하에서도 잘 지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어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저 세 시인과 지하 저편에서 같이 떠돌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던 나는
이육사 시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가장 먼저 지하 이편으로
되돌아왔던바,
그 뒷이야기는 알 수 없다
--- 「죽은 시인의 사회·18」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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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오의 시들은 한국 시문학사에 족적을 남긴 시인들의 생애와 작품을 나침반으로 삼아 우리 사회의 모순과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가령 “참혹한 전쟁을 피해/한국에 와서 난민 신청한 예멘인들”([죽은 시인의 사회·44])을 품으며 점점 심각해지는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맞서고, “친일한 시인과 독재정권에 부역한 시인들이/이 세상에 남긴 시들을 청산”([죽은 시인의 사회·22])함으로써 역사를 바로 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인간 존엄과 역사 정의를 추구하려는 하종오 시인의 목소리는 당위성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시를 잘못 쓴 죄가 가장 큰 죄”([죽은 시인의 사회·18])라는 자기 고백을 토대로 하고 있기에 울림이 크다. 그리하여 우리는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고, 인간답게 살아가야 할 길을 내다본다. 57편의 연작시에서 호명된 한용운, 이상화, 이육사, 윤동주, 김소월, 김기림, 박인환, 김수영, 신동엽, 박봉우, 천상병, 문익환, 김규동, 권정생, 김남주…… 시인들이 걸어간 길은 얼마나 험난했던가. 시인들의 사랑은 얼마나 담대했던가.
- 맹문재 (시인, 민족문학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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