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다 한 아름 아이의 초등학교 1학년 입학에 대한 걱정을 안고 살고 있구나….’ 우리 부부는 도훈이의 성장을 통해 ‘자폐성 발달장애 아이도 일반학급에서 완전통합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두고 아이를 키웠습니다. 진단을 받은 4세부터 7세까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착석, 간단한 의사표현에 집중하여 달렸습니다. 도훈이가 장애진단으로 학교에 입학하여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다른 아이의 부모님들도 각자 아이들이 부족한 모습에 걱정하며 학급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제 눈에는 전혀 특이사항이 감지되지 않는 사소한 행동을 각자 부모님들은 걱정하며 살고 있다는 것에, 우리도 도훈이의 조금은 다른 행동에 너무 집착하여 살아가는 건 아닐까 스스로 반문하곤 했습니다. 도훈이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자폐성 발달장애’ 아이들은 언어적·비언어적 표현의 미숙함으로 사회와의 소통을 원치 않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일 뿐, 어느 누구보다도 사회와 소통하고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가족, 그리고 이웃이 한 번이라도 더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 주시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함께해야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에필로그」중에서
우리 쌍둥이들은 2.48㎏, 2.38㎏의 저체중으로 미숙아로 태어났다. 생후 3일 만에 두 아이 모두 노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종합병원 신생아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 결혼 3년차에 우리 부부에게 아이를 통해 서로를 격려하고 사랑으로 마음을 잡아 준 계기였다. 젊은 두 남녀가 서로만 생각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누군가의 보호자로서 나보다 더 약한 누군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던 모습으로 서로에게 사랑을 심어 주었다. 다행히 그 간절함이 통하여 우리 아이들은 10일 만에 퇴원을 하게 되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고, 다시는 아이들이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하였지만, 그게 어찌 희망처럼 되겠는가?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 우리 부부에게는 더 막대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맑음 그리고 먹구름」중에서
발달장애 아이들의 발악과 자학은 만 2세~5세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텐트럼’이라고 포괄하는 성질부리기, 심한 떼쓰기, 그리고 발악은 무언가를 요구하는 분명한 자기만의 표현 방법인 거다. 이는 비장애 아이들에게도 나오며, 표현력이 잘 나오는 사람에게도 나이가 들어서 나오는 행동이다. 핵심은 상대가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적·행동적 표현이 수반되는지가 중요하다. 소통에 있어서 가장 기본인 언어적 수행이 없다면, 무수히 많은 신체적 표현을 다 알아듣기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사실 한 번에 해결되는 솔루션은 없지만, 아이와 부모의 함께 노력하여 가정과 치료를 진행한다면 분명히 개선의 여지는 볼 것이라 굳게 믿는다. 부모도 어리둥절한 시기를 지나고 많은 정보를 접하면서 우리 아이들의 다름을 인정하고 감안하게 된다. 이는 당사자만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다.
---「맑음 그리고 먹구름」중에서
결국 진단을 받은 후 도훈이에게 ‘치료’라고 명명하는 교육을 시작하였다. 10년 넘게 유치원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라는 말처럼 도훈이를 100% 케어할 수가 없었다. 먼저 집에서 가까운 센터를 찾기 시작했다. 서초 내곡동에 위치한 서울시 어린이병원을 다니려 했지만 집에서의 거리와 비용 부담에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집에서 차로 30분 이내의 발달센터와 발달장애 재활치료 및 서비스가 가능한 병원들을 찾아봤다. 그렇게 인근 발달센터에서 인지치료수업, 감각통합수업을 시작으로 도훈이와의 뺑뺑이가 시작되었다.
---「현실과 맞이하다: 자폐? 그게 뭔데?」중에서
가정의 단합과 화목은 정말 중요한 명약이다. 수십 수백 가지 좋은 치료와 수업보다 훨씬 더 필요한 부분이다. 발달장애를 비롯해 장애 아이를 키우는 많은 가정에서 다툼이 일어나곤 한다. 인간이 싸움을 일으키려면 말도 안 되는 시비를 잡아서라도 싸움을 건다. 장애가 있든 없든 아이를 키우는 모든 가정은 늘 지쳐 있다. 시한폭탄처럼 터질 날만 기다렸다가 폭발하는 부모의 감정, 사실 우리 가정은 시어머님의 큰 우산과 같은 보살핌으로 그 위기를 많이 극복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가급적 세미나, 교육, 최초 치료 상담 시에는 같이 다녔다.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라, 부부가 함께 양육자라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실낱같은 가능성을 만들어 가는 우리」중에서
ABA프로그램 관련 서적과 강의를 들어 보면서, 도훈이한테 적합한 교육 방법을 접목시키려 했다. 뭐든 좋은 것이 있다 하면, 남편과 나는 시간을 할애하여 장점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림카드를 통한 인지 향상, 단어 습득 등 많은 시도를 했다. 하루에 한 가지 학습 목표를 세웠던 적이 있다. 모든 상황과 하루하루가 배움의 연속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학습적으로 하루에 새로운 한 가지를 가르치는 게 쉽지 않았다. 배웠던 것의 복습이 다수였고, 새로운 것을 가르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생활 속에서의 모든 상황을 새로운 학습이라 판단했다. 옷 입고 벗기, 바지 내리고 오줌 누기, 칫솔질하기, 우유 열고 빨대 꼽고 먹기 등 뭐든 일상이 가르침의 연속인 것이었다. 사실 도훈이에게 학습을 통해 교육적인 부분에서 발전을 기대하는 것보다 사회 속 적응을 위해 더 큰 미래를 보고 교육을 시키고자 노력한다.
---「좌충우돌 퍼즐 맞추기!」중에서
여전히 우리 아이는 혼자서 행동하는 것에는 제약이 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여전히 도훈이는 59점이라고 서로를 응원한다. 60점이 넘어야 낙제를 면하는 시험문제에서, 아들은 아직 1점이 모자란다고 판단한다. 우리 가족에게 가져다주는 행복감으로는 이미 100점짜리 아들이지만, 냉정한 사회적 관점으로 볼 땐 59점도 후한 점수이다. 그러나 여전히 심리적 마인드 컨트롤은 여전히 갈 길을 못 잡곤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터놓지 못하는 불안감이 우리 부부에겐 가장 큰 난관이었다. 부부간 불화가 있을 때마다 도훈이를 중심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곤 했다. 우리의 심리는 올라갈 일만 있다고 생각하며 산다. 오르다가 잠시 쉴 수도 있지만, 도훈이 덕분에 우리 가족은 계속 오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 오름의 끝이 어딘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노력은 도훈이와 도연이, 그리고 우리 가족을 더욱 단단히 건강하게 해 주고 있다.
---「마라톤을 달리는 가족」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