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나의 태양을 끓여요
뜨거운 김이 벽을 타고 오르다 트멍 없음에 탄식하는 소리
묵음으로 들어요
하늘에 들지 못한 한 방울의, 한 방울의 투명
헐렁해진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불안하던, 불안한, 불안할,
이 기막힌
단문,
이해할 수 없어요
아지랑이로나 가물거리는 저것
--- 「숨」 중에서
1
세월에 물렸을 때 이빨 독은 성난 파랑이다
2
미처 빨아내지 못한 독은 자라
이브는 숲으로 가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고
하얀 꽃잎은 밤의 멍든 잎이었다가
벨로캉왕국의 ‘메르쿠니우스 임무’를 맡은 103683호처럼*
꽃과 잎 사이 메신저가 되었던가
개미도 기계도 아닌 모호
살아남은 손가락의 감정은 장애에 가깝다
3
지하에 갇힌 허공에서 추락한 세계는
암반수가 흐른다
말라붙은 피딱지 너머
진화일까 퇴화일까
초록이 가슴으로 낳은 초록에 가까운 연두는 불구
불구의 원인은 초록
초록은 망설임 없이 초록을 지운다는데
추운 겨울을 나는 동안, 정신은
청옥처럼 푸르고 투명하고 단단하고
아름다워진다는데
4
문명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니다
무화과 쏟아지고 수두룩한 이브
종종색색 옷을 껴입으면
혁명의 무렵 사람들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읽는다
진보는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는 탄생할까
신화처럼…
5.
날개는 혁명을 꿈꾼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참고.
--- 「날개는 혁명을 꿈꾼다」 중에서
그늘을 감각하는 구름이 있다 잊히지 않는 것은 구름 안쪽이 두껍다는 말,
언니에게 전화를 건다
먼 별에서 보내오는 신호만
뚜뚜뚜
감자 꽃 떨어지는 소리를 낸다
감자보다 감자 꽃을 더 좋아한다며 감자처럼 웃던
옻갓 마을 떠나지 못한
언니,
전화를 걸기 전엔 몰랐다
그녀가 구름의 주민이었다는 것을, 골수암이 깊어져 하늘 너머로 주소를 옮겼다는 것을, 이승도 저승이요 저승도 이승이었다는 것을, 먼 듯 가까운 별과 별 사이 구름의 주소록 펼쳐 밤마다, 기착지 없는 비행기를 탄다
내릴 곳은 없고 빈 하늘만
빙빙빙 돈다
몰려오는 구름 속
열빙어 떼가 지나간다
우기雨期를 몰고 오는 그늘 아래
시나브로
감자 꽃 진다
--- 「열빙어」 중에서
비밀은 구석을 좋아한다
햇살이 오늘을 굴릴 무렵
이슬 달고 온 슬픔이 슬픔에게 인사한다
잠자는 땅* 그 너머 온, 하얀 슬픔
안개 덥석거리는 불곰의 서식지에는 혀가 없어
불을 삼킨 눈동자로 온다
자작나무의 흰 몸피 뜯어 먹으며
기적 소리 밟는다, 갔다
툰드라 눈보라가 콘트라베이스를 켠다 한 권의 매혹 안쪽으로 몇 개의 별을 건너듯 갔다 당신, 을 본 적 있었다 이야기에 눈을 묻으면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나를 모르고 나는 박달나무처럼 선 채 숨찬 기적의 끝을 뿌리에 숨겨둔다
은여우처럼 낑낑거리다 시베리아산 늑대 주둥이에 붙은 한 잎의 주홍글씨와 몸 바꾸었을까 한 번쯤 혁명의 뒤꿈치 물거나 체 게바라가 되어 바람을 숭덩숭덩 베거나 숱한 정적과 조우하지 않았을까
― 시를 쓴답시고
낙엽송이 자작나무에 자작나무가 사시나무에 바람은 다른 바람에
밤마다 어는 붉은 달에 집착하며 젖은 문장을 말렸을까, 감각
‘매혹과 슬픔’*에 하얀 나비 한 마리 앉는다
조연은 주연의 역할에 무난하지 않지만
시베리아를 읽는다
― 모국을 줍는 것이다 모음을 움켜쥐는 것이다
* 시베리아는 타타르어로 ‘시비르’로 잠자는 땅이란 뜻.(최돈선, 『매혹과 슬픔』에서).
--- 「슬픔의 장례 의식에 대하여*」 중에서
수식은 잊어요
날개는 반성 없이 퇴화하고 발로 뛰는 새는 신버전
나는 요리사죠
슬픔의 미각에 길들여진 혀 짧은 새
냄새에 취해 길어지는 코도 잊어요
풀들이 햇빛 쪽으로 키가 크는 것처럼
그건 원칙이니까요
한계 너무 분명한 젊음 따위 버렸다고 믿지만
쿡쿡, 그럴 리가요
세상에, 갈수록 신파도 그런 신파 본 적 없지만
모든 게 너무 늦은 거 알지만
하지만 뭐, 어때요
사랑이 있는 쪽으로 코가 마구 자란대도
그게 뭐 어때서요
나는 아직 누구나를 사랑해요
제발, 이란 파도는 이미 서쪽으로 간지 몇몇 해
새벽처럼 영롱한 모모
떠날까요? 그래요 떠날래요
까짓, 놓지 못할 건 없어요
손아귀 아귀아귀 붉더니 칫, 그믐 달빛에 홀려서는
손바닥 골목 어귀 가로등 별빛 복사하는
혀는 짧고 코는 긴 음이월
밖을 향한 손가락은 외로워요
--- 「음이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