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을 기념하여 덕수궁관에서 개최되는 《광장》 1부는 19세기 말 개화기에서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해방 공간까지의 근대 미술을 ‘의’에서 시작, ‘예술과 계몽’, ‘민중의 소리’, ‘조선의 마음’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사회?역사적인 관점에서 훑어보는 전시이다. 그 중 ‘의로운 이들의 기록’에서는 자결로서, 의병으로서,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한 많은 사람들의 흔적을 보여주며, 또한 ‘의’를 지키고자 했던 이들의 초상을 남긴 채용신의 작품이 소개된다.
박미화(국립현대미술관 전시3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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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독립이 된 땅에서 이른바 ‘지사화가’들은 역사 속에서, 미술사 속에서 소멸해 갔다. 이들 지사화가의 탈락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었다. 수절자정의 세 갈래 길에 나선 이들이 아니라 침략제국에 타협과 훼절의 길을 걸어간 이들이 국가권력과 미술권력을 장악하고서 일어난 일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 덕수궁관 전시인 1부 《1900-1950》 첫머리에 “의로운 이들의 기록(義)”을 배치함으로써 그들이 그렇게나 지키고자 했던 국가가 처음으로 역사의 첫머리를 차지했다. 다시 말해 빼앗겼던 미술사의 자리를 회복한 것이다. 물론 그들 한 명 한 명에겐 금의환향 같은 화려한 복권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논공행상보다도 국립현대미술관의 이러한 배치는 미술사에서 ‘근대정신의 복권’이라는 보다 본질적이고 폭넓은 가치를 실현하는 결정이다. 근대정신의 핵심은 조선역사 속에서 탕평(蕩平), 균역(均役), 대동(大同)이고 서구역사 속에서 자유, 평등, 박애다. 이 3대정신의 근본을 이루는 것은 인권의식, 다시 말해 휴머니즘이다.
최열(미술평론가), 「근대의 불꽃, 지사의 영혼 그 상징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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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계몽’은 일제 강점기 계몽 운동의 차원에서 일어난 예술가들의 역할과 활동에 주목한다. 다수의 민중을 계몽하는 수단으로 신문, 잡지, 도서 등의 발간을 위한 출판과 인쇄 사업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3?1운동의 민족대표 중 한 명인 오세창은 『한성순보』 기자를 역임했고, 『근역서휘』 및 『근역화휘』를 편찬하였으며, 『근력서화징』을 집필하여 근대미술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를 남겼다. 오세창은 이 시기 문화 활동에서 정신적인 지주였으며, 뛰어난 안목과 심미안으로 고서화를 수집하였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한편, 당시 초등학생용 교과서에 해당하는 『유년필독』은 초등학생부터 청장년층까지도 널리 읽힌 책으로, 국가·역사·지리·인물·풍속·종교 등을 다루었다. 이 책의 도안은 안중식이 맡았고, 내용은 “우리 청춘 소년들아 우리 나라 독립하세, 슬프고 분하다 우리 대한 나라 어이하여 이 지경”이라는 창가의 문구를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애국심을 고취하였다. 또한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최남선이 설립한 신문관에서는 『소년』, 『아이들보이』, 『청춘』 등 어린이를 위한 계몽 잡지도 발간하였는데, 안중식, 고희동 등이 표지화를 그려 동시대의 미감을 반영하였을 뿐만 아니라 삽화를 통해 교육적 효과를 높이기도 했다.
박미화(국립현대미술관 전시 3팀장)
--- p.81
문학의 경우, 1910년대에 최남선, 이광수, 김억 등의 선각자들이 『소년』, 『청춘』, 『학지광』, 『태서문예신보』 등의 잡지를 발판 삼아 한국문학의 근대적 기초를 닦았다. 1920년대 초반에는 『창조』, 『폐허』, 『백조』, 『장미촌』, 『금성』, 『영대』 등의 동인지와 『학생계』, 『개벽』, 『동명』, 『조선지광』, 『조선문단』 등의 잡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의 민족지를 기반으로 김소월, 황석우, 이상화 등의 시인들이 낭만주의적 시 창작을 주도하였다.
김미영 (홍익대학교 교수), 「도전과 항전의 문예운동사-3?1운동 이후 1930년대까지의 문예운동」
--- p.83
일제 강점기 조선 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 예술을 추구한 미술가들은 처음에 신흥 예술의 파괴적인 힘에 이끌렸다. 1923년 김복진, 안석주 등이 결성한 파스큘라는 유럽 다다(DADA)와 무라야마 토모요시(村山知義)가 1923년 일본에서 결성한 마보(MAVO) 운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파스큘라(PASKYULA)’라는 명칭은 구성원들의 이니셜 ? PA(박), S(상화), K(김), YU(연), L(이), A(안) ? 을 조합한 조어10인데, ‘다다’나 ‘마보’와 마찬가지로 기존 질서, 또는 종래의 의미작용에 대한 반발을 나타낸다. 김복진에 따르면 파스큘라는 “현상에 대한 불만으로만” 모인 ‘잡다한 종족’의 ‘진묘한 회합’이었던 것이다.
홍지석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프롤레타리아 미술 운동의 이념과 국제적 양상」
--- p.159
일본은 조선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대량으로 치밀하게 확보한 후 자신들의 이익을 산출하는 방향에 맞추어 조선과 조선인의 정체성 담론을 주도하였다. 이른바 ‘만들어진 정체성’이 제시되고 주입되는 작업이 진행된 것인데, 주입되는 작업이 진행된 것인데, ‘조선다움’은 ‘조선 향토색’이라는 명패를 단 도플갱어들로 이미지화되어 갔다. 물동이를 인 아낙네, 흰옷을 입고 담뱃대를 든 긴 수염의 노인, 쓰러져가는 초가집과 구부정한 농부, 빈 들판에서 방황하는 헐벗고 배고픈 누이, 아이를 업은 소녀, 빨래하는 아낙네들, 절구질하는 여인, 지게꾼 등 빈곤하고 무지하며 순박한 모습의 도플갱어들이 거울 앞을 느리게 배회하고 있었다. 저 멀리 ‘대 경성’이라는 활자가 찍힌 깃발이 펄럭이고 있지만 그건 ‘표본실의 청개구리’처럼 냉랭하고 잔혹한 먼 친척의 이야기일 뿐이다.
김현숙 (KISO미술연구소장), 「’조선다운’ 그림의 궤적-조선의 도플갱어들」
--- p.244~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