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란 말에는 ‘변두리’란 뜻이 담겨 있다. 사전에도 ‘서울 이외의 지역’이란 설명이 붙는다. 말에서부터 뿌리 깊은 편견이 담겨 있는 셈이다. 그래서 ‘로컬(local)’이란 말을 쓰기로 했다. 멋을 부리려는게 아니다. 편견을 덜어내고 서울과 별다를 것 없는, 우리나라를 이루는 똑같은 지역 가운데 하나로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프롤로그_새로운 삶의 패러다임, 로컬」중에서
그동안 강화 청년들은 큰 도시로 나갈 생각만 했으니 이러한 움직임은 결코 작지 않은 변화다. 강화군의 평균 연령은 55세로 높은 편이다.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고 있지만 퇴직한 장년층과 고령층이 많아 모두를 생산인구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카페, 식당, 공방 등 강화 청년들이 새롭게 연 가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2017년부터는 이렇게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 온 청년들이 서로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이곳 강화에서 청년들의 공동체가 처음으로 싹을 틔운 것이다. 서점과 같은 생활문화 공간을 중심으로 지역민과 함께 하는 문화활동도 하나둘 선을 보이고 있다. 청풍은 청년 가게들을 돌면서 문화 공연을 하는 ‘읍내 안 라이프’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루는 이 가게, 다음 날은 저 가게를 돌았다. 아직은 서로 큰 부담이 없을 만큼 거리를 두고 있는 느슨한 공동체다. 목적을 앞세우다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다.
---「협력과 연대의 공동체로 섬과 세상을 잇다_강화 청풍 협동조합」중에서
강화도로 이주하고 책방 ‘시점’을 개업한지 이제 막 1년이 조금 지났다. 1년 만에 인스타 팔로워가 천 명이 넘을 만큼 책방 ‘시점’은 마을에서 강화도에서 그리고 책방으로서 입지를 야무지게 다지고 있다. 책이 안 팔리는 시대에 ‘시점’은 이를 타계하기 위해 북스테이를 함께 하는데 한 달 동안 모든 방이 예약될 만큼 북스테이도 호황을 누렸다. 동네사람들이 편하게 오가며 연결되고 모임도 이루어지는 쓰임새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는데 지역주민들이 알음알음 찾아와 인연이 맺어지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함께 할 시점_강화 책방 시점」중에서
월곶에서 꿈을 펼치기로 한 우 대표는 평소 페이스북에서 부동산 관련 정보를 공유하던 임효묵(현 빌드 부대표) 씨를 만났다. 우 대표는 자본이 자본을 버는 속도가 노동이 자본을 버는 속도보다 빨라서 생기는 부동산에 의한 불로소득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당시 부동산학을 전공하고 부동산 신탁회사에 다니고 있던 임효묵 씨도 그의 생각에 공감하고 함께 하기로 했다. 그들은 부동산의 문제점 외에도 노동과 삶의 불균형, 워라밸의 붕괴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했다. 특히 여성이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면서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아이와 가정을 자신보다 우선해야 하는 상황에 주목했다. 그들은 그녀들의 워라밸을 찾아줄 수 있는 콘텐츠를 사업의 초기 방향으로 설정했다. 함께 할 동지들도 모았다. 시흥시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창업교육을 하던 우 대표는 수강생 중 카페 창업과 운영 경험이 있던 카페 전문가, 착한 김밥 집 프랜차이즈 운영의 꿈을 가진 호주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ue)’ 요리학교 출신 요리사 그리고 빌드의 콘텐츠에 디자인을 담당할 디자인 전문가, 마지막으로 홍보 마케팅 전문가까지 각각의 능력과 개성을 갖춘 7명의 동지를 규합했다. 그리고 그들은 2016 년 9월 20일 빌드를 창업하며 월곶에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우리가 살고 싶은 마을을 빚다_시흥 월곶 빌드」중에서
무등산 브루어리는 고집스러울 만큼 지역을 향한다. ‘Drink Local(로컬을 마시다)’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서부터 그러한 고집이 느껴진다. 로컬에서 나는 밀로 만든다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로컬에서 나는 것으로 로컬 사람들이 로컬만이 가진 가치를 담아 만들어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로컬만의 그 무엇을 다시 로컬 사람들이 기꺼이 품어주고 아껴줌으로써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로컬 안에서 이러한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나아가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브루어리도, 로컬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윤현석 대표와 무등산 브루어리의 생각이다. 그래서 무등산 브루어리는 정 말로 로컬에 깊이 뿌리내리고 싶어한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어우러진 라이프스타일 생태계_광주 무등산 브루어리」중에서
최 대표의 바람은 소박했다. 이곳에서 계속 배를 만들지는 못 하더라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계속 쓸모 있는 공간이자 살아 있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가족의 추억이 깃든 공간이어서만은 아니다. 이곳은 로컬의 흔적과 역사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모두의 공간이 기도 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가 가장 공을 들여 한 일은 칠성 조선소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모아 정리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공간과 콘텐츠로 다듬는 것이었다. 속초라는 로컬의 역사를 정리해 다음 세대에게 전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먼저 ‘칠성 조선소의 오래된 미래’라는 거창한 마스터플랜을 세웠다. 그리고 그동안 이 공간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보기로 했다. 공간 곳곳에 먼지가 켜켜이 쌓인 채 숨어 있던 조선 소의 이야기들을 찾아내 먼지를 털어내고 사람들 앞에 꺼내놓았다.
---「공간에 깃든 역사와 자연의 가치를 지키다_속초 칠성 조선소」중에서
서울에서 나고 자란 장재영 대표는 대학을 졸업하고 여행 가이드를 하며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지금까지 가본 나라만도 60여 개국에 달한다. 그러던 그가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로컬의 아름다움에 빠져 2016년 여름 순창의 오래된 게스트하우스에 작은 카페를 열었다. 그로부터 벌써 5년째, 그는 동네 곳곳을 무대로 재즈 페스티벌을 여는가 하면, 할머니들에게 랩을 가르쳐주고 랩 배틀을 벌이기도 했다. 방랑싸롱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 모든 발자취 들을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
---「순창에서만 만날 수 있는 세상 하나뿐인 그 무엇_순창 방랑싸롱」중에서
2020년 지리산 이음은 또 다른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 4년 전 지리산 이음은 전국 곳곳에서 변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모여서 발표하고 토론하고 공부하고 교류하는 커뮤니티 공간을 상상하면서 낡은 농협 창고를 매입했다. 비록 은행 빚을 내기는 했지만, 지리산 이음 입장에서는 미래를 위한 투자이자 공익자산화 차원에서 과감하게 땅과 건물을 샀다.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이 마을과 지리산을 잇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면, 이 공간은 리모델링을 거쳐 지리산과 세상을 잇는 거점 역할을 할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이 사는 로컬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세상의 중심에서 로컬을 외치다_남원 사회적 협동조합 지리산 이음」중에서
2018년 11월 말 60명이 모여 진행한 괜찮아마을 1, 2기 프로그램은 막을 내렸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집도 절도 없는 이곳에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서른 명 남짓 남기로 했다. 남는 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창업을 했고, 다른 누군가는 그 회사에 취업했다. 목포의 관공서나 회사에 들어가기도 하고, 살던 곳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2019년에는 서울시 청년청의 지역 활성화 사업인 ‘연결의 가능성’에 뽑혀 8,0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아 3기 주민 16명을 뽑았다. 1, 2기를 겪으면서 주민의 요구는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막 회사를 그만두고 이곳을 찾은 누군가에게는 쉼이 절실하지만, 벌써 한참을 쉬었던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도전에 목말라 있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거나 불편한 존재가 되기도 했다. 처음부터 모두에게 딱 맞는 6주의 시간을 설계하는 일은 불가능했던 셈이다. 3기에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기획해야 한다는 부담은 줄였다. 또 첫 6주를 보내고 나서 더 머물고 싶은 이들에게는 6주간 더 머물 수 있도록 했다.
---「청년, 고향의 품에 안기다_목포 괜찮아 마을」중에서
창업을 서울도 아닌 지역에서, 그것도 이익 창출뿐만 아니라 도시재생이라는 사회적 가치까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지만 로컬라이즈군산은 23팀, 총 70명의 로컬 창업가를 어렵지 않게 모집하고 선발했다. 과제의 문턱이 높은 만큼 시도에 대한 문턱을 낮추었기 때문이다. 인큐베이팅 창업가에게는 1,000만원, 엑셀러레이팅 창업가에게는 5,000만 원의 사업화 지원금을 지원하되 창업가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자율성을 보장했다. 낯선 지역에서의 정착을 돕기 위한 주거 공간, 창업에 대한 빠른 집중과 몰입을 위한 업무 공간도 함께 제공했다. 언더독스의 창업 교육과 코칭, 지역 전문가의 지역 이해 교육, 로컬 창업 교육을 제공하며 막막한 창업 과정을 통과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도 구축했다. 많은 지원이 있었지만 이 프로젝트에서 받은 최고의 지원은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라고 창업가들은 입을 모았다.
---「섬과 같던 청년 사업가들이 모여 군도를 이루다_군산 로컬라이즈군산」중에서
‘사이다’의 발간은 100여 명에 이르는 지역 시민들, 문인, 역사학자, 예술가, 사진작가, 스님 등의 참여와 재능 나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처음에 세 명이 모여 공부하듯 시작했던 잡지에 대한 고민에 많은 지역민들이 동참해준 덕분에 6년 가까이 잡지를 발간 해올 수 있었다. 오랜 기간 포기하지 않고 발간해온 덕분에 이제는 수원에서 제법 알려졌고 잡지가 나올 때쯤이면 주민들이 더페이퍼에 방문해 잡지를 찾는다고 했다. 큰돈을 번 것은 아니지만 발간을 통해 얻은 수익금은 다시 ‘사이다’를 발간하는 데 사용되거나 지역민이나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데 쓰인다.
---「잊히고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다_수원 더페이퍼&잡지 사이다와 행궁동 골목박물관」중에서
북성로 사회혁신 클러스터는 소셜 벤처, 사회적 기업가, 청년 기업가들이 모여들면서 물리적 재생에 머물지 않고 그들이 마주하고 소통하면서 융복합되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생산기지가 되었다. 생산방식은 협업, 호혜 구조로 이루어진다. 삶의 방식을 사회적 경제로 체화한 공간이다. 북성로를 사회적 경제와 도시재생이 결합 된 학습관광지로 만들고자 했던 꿈은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다. 한 해에 100팀 이상이 방문하고 있으며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또 다른 시너지가 일어나고 있다. 이제는 북성로 3.0을 꿈꾼다. 기술융합생태계를 복원해 이를 바탕으로 북성로 내에 입주해 있는 혁신가들과 새로운 계획을 세워나가며 실험하고 있다. 하나의 거대한 리빙랩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북성로 시간과 공간의 재생 그리고 사람_대구 북성로 사회혁신 클러스터」중에서
정부는 청년에게 농촌으로 들어오라며 청년 농업인을 육성하려고 하지만 청년 농업인이 농촌 사회에 정착하는 데는 농지와 자본이 필요한데 이 점이 높은 진입 장벽이 되고 있다. 농지가 없다면 빌려서 농사를 지어야 하고 자본이 없다면 자본이 들지 않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것이 바로 농촌 공동체와의 융합이다. 외지에서 스며들어 온 낯선 청년이 처음부터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농사를 시작하는 청년 농업인들은 해당 지역에서 오랫동안 농업을 영위한 공동체와의 융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창업 매뉴얼을 그대로 적용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막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좀 더 체계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기존 농촌 공동체와 농업인들에게 접근해야 한다. 이에 안재은 씨는 사회적 기업의 설립이나 다양한 정부 지원을 활용해 청년들이 농촌에서 살아보며 농촌 공동체에 서서히 적응 해가고 농업이 자신에게 맞는지 탐색해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 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고용계약이라는 사회적 안전장치를 통해 농촌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청년들이 농촌에 머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농촌에 청년들을 유입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통해 마동리뿐만 아니라 더 많은 농촌들이 활성화되 는 ‘긍정적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상상도 하고 있다.
---「촌에서 배우는 로컬의 미래_청주 촌스런」중에서
사실 제주도로 이사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첫 계기는 2009년쯤 군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미래에 결혼하게 되면 살게 될 집을 미리 알아보면서였다. 그 당시에도 서울 집값은 사회 초년생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나는 문득 전국 아파트 가격이 궁금해 알아보았다. 당시 제주도 아파트 가격은 4천만 원 수준이었다. 그 정도 가격이라면 내 힘으로도 집을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주도라는 곳에서 한 번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제주살이의 씨앗이었다. 어떤 한 가지 이유나 큰 결심을 해 제주로 이사하게 된 것이 아니라 작은 이유들 이 쌓이고 오랜 시간 마음에 담아둔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은 것이다.
---「낭만 가족의 제주살이_서귀포 솔앤유 독립출판사 & 어썸제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