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 밥을 지어 먹는다는 것은 삼시 세끼 매일 돌아오는 행복할 기회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며, 내가 나를 스스로 대접하고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삶은 늘 내가 뜻하는 대로 되지 않지만, 적어도 오늘 먹을 내 한 끼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해 먹을 것이다. 이 집에서 이 주방에서, 나는 안전하게 행복하다.
--- p.15, 「손수 밥을 지어 먹는다는 것」 중에서
한국에서 의대에 다니다 유급당해 쫓기듯이 왔는지 어쨌는지 묻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설령 묻는다 해도 대답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그저 나였다. 오롯한 나였다. 그동안 프랑스 요리가 좋아서 돈을 아끼고 아껴 힘겹게 외식하곤 했는데, 파리에서는 널린 게 프랑스 음식이었다. 고급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길거리 음식도, 카페 음식도 모두 다 프랑스 음식이었다. 프랑스 요리는 비싸고 고급스러우며 잘 차려입고 먹어야 한다는 편견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나는 자연스럽게 프랑스 요리와 더욱더 친해졌고 더욱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 p.22, 「어찌할 수 없었던 날들」 중에서
나는 물을 넣어 졸이는 요리를 하거나, 파스타 면을 삶을 때, 심지어는 떡볶이를 만들 때도 물 대신 닭 육수를 넣는다. 그러면 어딘가 2% 비어 있는 맛을 닭 육수가 딱 채워준달까. 이렇게 한번 만들어놓으면 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한 달 정도 쓴다. 한 달에 한 번씩, 이렇게 집 안 벽지 구석구석까지 닭 냄새가 배어든다. 그러면 혼자 사는 집인데도 온기가 가득 차고 다가올 한 달이 두렵지 않아진다. 어떤 음식이든 감칠맛 나게 만드는 최고의 요리 비법이자 모든 요리의 기본 중의 기본, 그건 바로 육수다.
--- p.49, 「단 한 번도 어긴 적 없는 일」 중에서
혈중 고기 농도가 떨어진 어느 날, 나만을 위한 스테이크 요리를 준비했다. 먼저, 콜리플라워와 대파로 퓌레를 만들었다. 곁들일 허브로는 소럴을 준비했고, 예쁜 미니당근까지 구웠다. 200g짜리 소고기 스테이크에 나머지 200g으로 쥬(jus)를 만들었다. 스테이크 굽는 것보다 이 쥬를 만드는 게 더 일이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위에 소스를 멋지게 부어주었다면 그것이 쥬였을 것이다.
--- p.78, 「사줄 돈 있지만, 만들어줄게」 중에서
아버지, 오래오래 사세요. 아무래도 다 갚을 수는 없겠지만 제게 시간을 좀 주세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선물받은 와인 라벨은 읽을 줄 모르셔도 돼요. 그러면 저는 라벨을 읽어드리며 이건 얼마쯤 하겠다고, 누가 선물해준 와인이냐고 물을게요. 그러면 아버지는 지금처럼 “난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이거 비싼 거냐?” 이렇게 되물으세요. 그럼 저는 “이거 얼마쯤 하겠는데, 이런 와인을 받았으면 특별히 감사를 표하셨어야죠.” 그렇게 책망하다가 “그래도 할인해서 샀으면 그것보다 저렴할 수도 있겠어요. 김영란법에 맞춰 샀나 봐요.” 그렇게 아버지를 들었다 놨다 할게요. 우리 그렇게 같이 살아요. 그러니까 지금처럼 곁에 있어주세요. 저는 아버지의 멋없음을 계속 사랑할 거예요.
--- p.102, 「아버지도 홍합을 좋아하셨지」 중에서
자취 요리라고 해서 궁상맞을 필요가 있을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다. 그렇다고 절대 과하게 하지는 않는다. 접시 위에는 먹을 수 있는 것만 올린다는 것이 내 철칙이다. 불필요한 것을 올리는 것은 제아무리 식용이라 한들, 맛이나 영양에 특별히 득 되는 것이 아니라면 지양한다. 예쁜 플레이팅의 핵심은 접시 위에 모든 것을 다 담아내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더 채울까가 아니라 무엇을 더 비울까를 고민한다. 여백이 필요하다. 사람의 일과 똑같다. 너무 바쁜 사람,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이에게는 이내 관심을 접게 된다. 매력에는 빈틈이 필요하다.
--- p.153, 「한입이어도 제대로 먹자」 중에서
어디서 주문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합의해둔 레시피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다시금 나는 오로지 나만을 위한 셰프가 되었다. TV나 유튜브를 보다가 따라 해보고 싶은 음식이 생기면 재료를 사서 시도해보았다. 식용유 대신 올리브유를 쓴다든지, 플레이팅을 프랑스 요리처럼 한다든지, 어떻게든 나의 색을 더했다. 일하던 식당의 프렌치 어니언 수프 레시피가 나에게는 간이 맞지 않아 소금이 더 필요하다고 건의했는데, 나는 총책임자가 아니었으니 타인의 결정에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집에서는 넣고 싶은 만큼 맘껏 넣었다. 치즈도 모차렐라 대신 그뤼에르를 넣었다. 나 하나 먹이는 일인데 원가 따져서 무엇 하리.
--- p.180-181, 「에필로그 : 모쪼록 최선이었으면 하는 마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