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인간의 발달 과정과 정신 장애를 단순히 자연 과학적 관점이 아닌 인문 사회학적, 철학적 관점을 접목해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의 발달 과정이 〈인식의 발달〉과 〈관계의 발달〉이라는 두 가지로 이루어졌다고도 말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내내 아이의 마음을 파악하는 과정에 대한 참신한 안목을 가지게 될 것이며, 아이들의 정신 장애를 바라보는 통합적 시각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아동 심리 전문가 독자라면 기존 소아 정신 의학이나 발달 심리 교과서에서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얻어 아이들의 치료에 임하게 될 것이다. 부모나 교사와 같이 일상에서 아이를 직접 양육하고 가르치는 독자라면 아이의 발달과 마음, 관계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양육과 교육에 대해 자신감이 배가될 것이다.
---「추천의 말」중에서
인생이란 사람마다 개별적이며 단 한 번으로 끝난다. 이때 육아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에 관계하는 일이다. 이렇게 하면 반드시 〈좋아〉라고 할 만한 모범 답안은 없다. 정은이가 이러했으니까 은정이도 이러하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이 책에서는 되도록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생각해 나가겠지만, 실용적인 기술을 담은 〈지침〉이나 만능열쇠 같은 〈공식〉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한 번뿐인 인생길을 막 걷기 시작한 아이들을 대할 때 활용할 수 있도록 아이라는 존재, 아이의 정신 장애에 대한 〈기본 생각〉이나 〈돌보는 자세〉를 전해 주고 싶다.
--- p.21
〈정신 발달〉을 떠올릴 때 우리는 다양한 환경 요인에 따라 백지상태로 태어난 아이가 각기 다른 〈개성〉을 부여받는다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다. 미국의 정신 의학자 스텔라 체스Stella Chess 등이 진행한 영아의 기질 연구에 따르면, 아이는 생물적인 개체차로서 감각성, 감수성, 반응성, 활동성 등 다양한 자질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들은 아이가 저마다 다른 기질을 타고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세상에 태어난 때부터 원래 〈개성적〉이다. 다만 각기 다른 자질을 그대로 보존하는 상태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개성(생물적인 개체차)의 차이가 환경과 서로 작용하며 차츰 조화를 이루어 사회적인 〈평균인〉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정형적인 정신 발달이다. 물론 세상에 완전한 〈평균인〉은 존재하지 않지만 말이다.
--- p.156
〈호소〉에 대응하는 부모 ─ 모성적 돌봄
이 아이는 무엇을 호소할까? 부모는 생각한다. 〈배가 고프다〉는 뜻일까? 〈춥다〉는 뜻일까? 〈외롭다〉는 뜻일까? 기저귀가 젖어서 차갑다는 뜻일까? 부모는 이렇게 젖먹이가 응애응애 우는 행동을 어른이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감각이나 감정에 빗대어 생각한다. 배가 고프다고 생각하면 젖을 주고, 추울 것 같으면 이불을 덮어 주고, 기저귀를 살펴보고 젖었으면 갈아 주는 식으로 그때마다 다른 상황 판단과 시행착오에 따라 갓난아이의 〈호소〉에 부응한다. 영아에 대한 이러한 보살핌을 모성적 돌봄이라고 한다. 이로써 응애응애 울도록 만든 불쾌감이 사라지면 갓난아기는 울음을 그친다. 영아를 보살피는 일은 단순하지만 인내심과 배려하는 마음으로 더듬고, 또 감으로 어림잡는 과정을 반복한다.
--- p.161
프로이트 식으로 설명하면, 손바닥으로 가린 〈얼굴〉이 나타나면서 부모의 웃는 얼굴이 보이면 아기가 기뻐서 웃고, 또 부모는 그 모습이 귀여워 〈여기 없~다!〉를 되풀이한다. 이때 생겨나는 성애적?정애적(情愛的) 일체감, 정동의 공유 체험이 이 놀이의 중심축이다. 모방을 먼저 〈놀이〉 동작으로 시작하는 이유로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① 양육자가 직접 자기를 향해 동작을 보여 준다는 점, ② 알기 쉽고 명확한 유형이라는 점, ③ 즐거운 정동의 공유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 p.181
〈자해 행동에 이르면 어떻게 할까?〉
자해 행동까지 이르면 위험하기 때문에 멈추게 해야 한다. 그러나 막으려고 하면 격하게 저항한다. 이는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대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따라서 있는 힘껏 말린다면 역효과를 일으킬 뿐이고,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① 부하를 찾기
그 아이에게 무엇이 강한 정동 부하가 되는지를 찾는다. 불안과 긴장을 높일 것처럼 보이는 요소나 그 아이에게 불쾌한 감각 자극 등을 찾아야 한다. 그것을 찾아 제거할 만한 것이면 제거해 준다. 그 자리에서는 당장 효과를 보지 못하더라도 다음에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시간 여행 현상〉을 일으키는 사례도 있다(제10장-6 참조).
② 장소 옮기기
그 자리에 정동의 부하를 가져다주는 것이 있다면, 그 아이에게 낯익은 다른 곳, 평온하고 자극이 적은 장소로 옮긴다. 자리를 바꾸어 줌으로써 정동을 교체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③ 안아 주기(꼭 안아서 옴쭉 못하게 하기)
뒤에서 꼭 안아 주어 위험한 행동을 막는다. 두려움으로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를 부모가 〈괜찮아〉 하며 꼭 안아 주면서 안심시키는 감각이 중요하다. 확실하게 감정이 전해지는 포옹은 불안을 누그러뜨린다.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평화롭고 차분한 정동, 즉 안심하는 마음을 전하며 진정시킨다. 감각성이 높고 인지적으로 체험을 파악하는 발달 장애 아이들에게 정동은 직접 〈피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느끼면 아이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평온을 되찾는다. 따라서 안아 주기 전에 정동적인 불안이나 초조함이 있으면 잘 통하지 않는다. 정동이 혼란을 일으켜 공황 상태가 될 때마다 이러한 대처를 반복함으로써 아이가 정동의 부하를 혼자 처리하는 게 아니라 주위 힘을 빌려 서로 나눔으로써 해결하는 기술을 익히도록 한다.
--- p.312
지능이 높은 아이에게 아스퍼거 증후군이 의심되는 사례가 나오는 이유는 지적 능력이 높아서 주위를 둘러보거나 어른의 표정을 살피기에 앞서 자신의 머리로 바로 판단해 버리기 때문이다. 대인적?사회적인 요구가 단순한 어린 나이에는 그런 식으로 사안에 대처할 수 있고 창의적이기도 해서 별문제가 없지만, 그 결과 사회적 참조의 기량을 익히지 못한 채 성장하고 만다. 주변 분위기를 읽는 등 미묘한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나이에 이르면 걸림돌에 부딪힌다.
물론 지능이 높은 아이가 모두 그렇지는 않다. 관계를 맺는 힘이 충분히 있는 아이라면 자신의 지적 능력에 기댈 뿐 아니라 사회적 참조도 동시에 동원한다. 한편 관계를 맺는 힘이 약하더라도 자신의 지적 능력에만 의지하지 않는 아이도 나름대로 사회적 참조의 기량을 키울 수 있다. 이에 비해 관계를 맺는 힘이 선천적으로 약한데 지적 능력이 높은 아이에게는 그 지적 능력이 자폐증 스펙트럼으로 기울게 하는 부하 조건이 된다.
--- p.361
〈위험에 빠질 조건〉
그러나 다음과 같은 조건이라면 고민을 넘어서 정신적인 실조에 빠질 위험이 있다.
(A) 사람과 맺는 관계가 아주 미약하고 고립성이 높은 채 자신을 형성해 왔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에 맞서 자신을 지탱하는 힘을 전혀 기르지 못했을 때
(B) 초등학교 시절 등 예전에 체험한 소외감이나 피해 의식이 계속 그림자를 드리워 지금의 고민과 연관해 생생하게 다시 떠오를 때
(C) 감각과 지각에 큰 어려움이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힘에 벅찰 때
(D) 현재 놓여 있는 환경이 자신에게 아주 가혹할 때
이럴 때는 등교를 거부하거나 은둔형 외톨이가 되거나 마음이 답답해지면서 어떤 정신 실조, 정신 질환으로 향할 수 있다. 이러한 사태를 미리 막으려면 발달 초기부터 한결같이 보살핌과 지원을 쌓아 나가야 한다.
--- p.376
〈등교 거부를 극복하는 단계〉
1. 집에서 아이가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한다.
2. 가족의 마음도 안정을 찾기 시작한다.
3. 학교에서도 아이에게 관심을 두고 지켜본다.
4. 아이의 생활에 리듬이 생긴다.
5. 아이의 생활 리듬과 가족의 생활 리듬이 맞아 들어가기 시작한다.
6. 아이가 집에서 능동적인 감정을 가지고 즐길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한다.
7. 놀이나 취미를 즐길 뿐 아니라 사소하게나마 집안일을 돕기 시작한다.
8. 아이의 흥미나 관심이 집 밖의 세계로 향하기 시작한다.
9.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 학교를 어떻게 할까? 장래 희망 같은 주제를 아이가 나름대로 생각해 보고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10. 아이나 가족에게 미래의 전망이 열린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11. 전망을 향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 p.5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