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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집 밤의 집

낮의 집 밤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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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9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476쪽 | 518g | 140*210*24mm
ISBN13 9788937479908
ISBN10 893747990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눈앞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시작과 끝에 관한 질문은 그 어떤 가치 있는 지식도 주지 못한다.
--- p.18

그리고 깨어났을 때 비로소 그녀는 자신이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전까지는 장소를 인식하지 못한 채 습관적으로 공간을 떠돌았을 뿐이었다. 오직 잠만이 옛것을 닫고 새것을 연다. 한 사람은 죽어 가고 다른 사람은 깨어난다. 하루하루 사이에 형태 없이 존재하는 이 어두운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다.
--- p.55

이게 꿈을 믿지 말아야 할 증거는 아니라고 마침내 크리시아는 생각했다. 그것들은 언제나 어떤 의미가 있으며, 결코 틀리지 않는다. 현실 세계가 꿈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전화번호부는 거짓말을 하고, 기차는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거리는 비슷하게 보이고, 도시 이름은 글자가 뒤섞이고,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잊어버린다. 꿈만이 진짜다.
--- p.62

여행할 때는 스스로에게 조언하고, 자신이 이 세상과 잘 어울리고 있는지 돌아보기 위해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 그것은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을 생각하며, 자신을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 여행할 때 사람들은 그것 자체가 목적인 양 결국 자기 자신과 만나게 되어 있다. 자신의 집에서는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다. 무엇과 싸울 필요도, 무엇을 성취할 필요도 없다. 철도 연결이나 열차시간표를 걱정할 필요가 없고, 기뻐하거나 실망할 필요도 없다. 말뚝에 스스로를 묶어 놔도 좋다. 그리고 그때 가장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 p.72

마르타는 자라나는 머리가 사람의 생각을 모은다고 말했다. 머리카락은 불분명한 입자의 형태로 생각을 축적한다. 그래서 만일 무언가를 잊어버렸거나, 변화하고 싶거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머리카락을 잘라서 땅에 묻어야 한다.
--- p.110

인류의 나머지 절반이 지켜보고 있는 동안, 또 다른 절반은 잠에 얽혀 있다. 어떤 사람들이 잠에서 깰 때 다른 사람들은 잠자리에 들어야 하고, 이런 방법으로 세계는 균형을 유지한다. 어느 날 밤 사람들은 잠을 자지 못하고 생각으로 가득 차기 시작할 것이고, 세상 모든 신문들의 글자가 뒤죽박죽이 될 것이고, 뱉어진 말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서 사람들이 그것을 다시 입속으로 밀어 넣으려 할 것이다. (……) 행성의 다른 쪽에서는 어둡고 유동적이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칙칙한 순간들이 이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 p.137

내가 무언가를 경험했다는 사실이 내가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미래와 마찬가지로 과거도 똑같이 두렵다. 내가 알고 있었고 지금 까지 이해하고 확실하다고 여겼던 어떤 일이 전혀 다른 이유로, 내가 의심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 p.138

사람들이 “모든 것”, “항상”, “절대 없다”, “모든 사람”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고, 왜냐하면 외부 세계에는 그런 일반적인 것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만일 누군가가 “항상”이라는 단어로 문장을 시작한다면 그것은 세상과 무관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의미이므로 그녀는 나에게 주의하라고 충고했다.
--- p.158

어떤 이유들로 인해서 사람들은 중대한 사건의 끝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장 사소한 사건의 끝도 상상할 수 없다. 어쩌면 무언가를 상상하면 현실이 소진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현실은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을 원치 않을지도, 반항적인 십 대처럼 자유로워지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은 언제나 상상과 다르다.
--- p.247

밤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어둡지 않다. 그 안에 하늘에서 산과 계곡으로 흐르는 부드러운 조명을 품고 있다. 지구 역시 빛을 발한다. 맨 뼈와 항아리의 광채처럼 차가운 회색빛의, 살짝 인광성이 도는 광채다. 이 희미한 빛은 낮에도, 달 밝은 밤에도, 조명이 밝게 켜진 도시와 마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진정한 어둠 속에서만 지구의 빛이 보인다.
--- p.261

하지만 말과 사물은 버섯과 자작나무 같은 공생의 공간을 형성한다. 말은 사물에서 자라고 그때에야 비로소 의미가 무르익으며, 풍경에서 자랄 때 소리 내어 말할 준비가 이루어진다. (...) 이런 말들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말은 자신의 또 다른 의미를 활성화하고, 세상을 향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전체 언어가 죽지 않는 한.
이것은 사람들도 분명히 비슷할 것이다. 사람들도 장소와 분리되어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이 된다. 그제야 비로소 그들이 진짜가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이 마르타가 내게 충격을 준 어떤 말을 했을 때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네가 너만의 장소를 찾으면, 너는 불멸의 존재가 될 거야.”
--- pp.279-280

시원한 집에 앉아 차를 마시고 파이를 베어 먹으며 책을 읽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이며, 얼마나 큰 인생의 달콤함인가. 그는 긴 문장을 곱씹으며 그 의미를 즐기고, 문득 그 속에 감춰진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의미에 놀라고, 직사각형 유리창을 바라보는 일을 즐겼다. (……) 종이 위의 글자 열들은 그의 눈과 이성, 사람 자체에 안식처를 제공한다. 세상은 이로 인해 발견되고 마음이 열리고 안전하다.
--- p.292

도공들은 영혼이야말로 몸에 꽂힌 칼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인생이라고 부르는 끊임없는 고통을 겪도록 강요한다. 그것은 몸을 소생시키는 동시에 죽인다. 왜냐하면 하루하루의 삶이 우리를 신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영혼이 없다면 고통 받지 않을 것이다. 햇빛 속의 식물처럼, 양지바른 목장에서 방목하는 동물처럼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몸속에는 영혼이 함께하고, 한때 바로 그의 존재의 시작점에서 형언할 수 없는 신의 광채를 바라보았던 영혼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모든 것이 어두워 보인다. 전체에서 갈기갈기 부서진 작은 조각이지만 이 전체를 기억해야 한다. 죽음을 위해 창조되었지만 살아야 한다. 죽음을 맞았지만 살아남아야 하다. 이것이 바로 영혼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다.
--- pp.327~328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려 주시기 위해 세상을 이렇게 창조하셨다.
--- p.358

“죽음이 나쁘기만 하다면, 사람들은 죽어 가는 걸 완전히 그만두게 될 거야.”
--- p.363

나는 이미 아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 하루하루 점점 더 많은 이미지와 몸짓, 연속되는 사건의 순서, 공기의 색깔과 냄새를 인식했다. 새로이 만나는 선물을 영원히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배우기를 멈춘 것처럼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알고 있었다. (...) 그러나 이 지식은 나에게 더 이상 아무런 필요가 없다. 그것으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어떤 방법으로도 결코 그 지식을 사용할 수가 없다. 나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의문점은 지금까지 내가 어째서 그토록 분명한 질서를 보지 못했냐는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생각과 사상, 수학 공식, 수학적 확률에서 내가 생각했던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자체에 존재했다. 세계의 축은 순간과 움직임, 몸짓의 반복적인 구성이다.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 pp.393-395

말은 해를 끼치고, 혼란을 부추기고, 명백한 것을 약화한다. 말을 하면 내 속이 부들부들 떨린다. 내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을 말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일에는 단어가 부족한 법이다.
--- pp.410-411

인생이 갈망이 될 때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종이처럼 보이고, 손가락 사이에서 바스러져 떨어진다. 모든 동작들과 모든 생각들 이 자신을 지켜보고, 각각의 감정은 시작되긴 하지만 결코 끝나지 않으며, 마지막으로 그리움의 대상조차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것이 된다. 오직 그리움만 진짜이고, 중독성이 있다. 있지 않은 곳에 있어야 하고, 소유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만져야 한다. 이런 상태는 물결치는 본성이며 자기 모순적이다. 이것은 인생의 정수이고 삶에 위배된다. 피부를 통해 근육과 뼈로 침투하여, 그때부터 고통스러운 실존을 시작한다. 상처를 입는 것이 아니다.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들 존재의 근본이 고통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그런 그리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마도 술에 취함으로써 당신 자신의 육체로부터, 심지어 당신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아니면 몇 주 동안 계속 자면서? 미친 듯이 일에 몰두해서? 아니면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 pp.43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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