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던졌고, 그 답을 느낄 때도 많았다. 그건 늘 내가 무척 그리워하는 것들이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단 한순간도 나 자신을 느끼지 못하고, 단 한순간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한 날이 이어지면 그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풀려는 보상 심리를 잘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딜레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자기만의 시간과 휴식 그리고 자유로운 생각인 듯하다. 이것들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로 보상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물건들은 일시적인 만족감만 줄 뿐 장기적으로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필요 없는 물건들을 잔뜩 쌓아 두어서는 좋은 삶을 살 수 없음을 본능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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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와 차를 나누어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해 왔어. 부모든 친척이든 번번이 차를 빌리는 건 번거롭고 미안한 일이거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렇지 않아도 남편과 나는 몇 주 전에 벌써 그런 방법을 의논하다가 현실적으로 그 계획을 우리와 함께 실천할 상대가 떠오르지 않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건 마르틴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인 카셰어링, 차 공유제를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아직까지 적당한 파트너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우리랑 한번 해 보는 건 어때. 잘될 것 같은데.”
--- p.62
설거지가 끝나면 나는 그릇을 트렁크 안에 있는 상자 안에 다시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촛불을 켜 놓고 남편이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할 때면 야외에는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빨랫줄에 걸린 젖은 수영복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변에 물건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다. 어쩐지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느낌이었다.
--- p.66~67
육식과 관련해서 우리 가족은 상당히 격정적인 과정을 거쳤다. 말레네는 여덟 살 때부터 채식을 시작했고, 남편은 우리 실험 초기에 더 이상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그전에도 다른 집에 비해 고기를 잘 먹지 않는 편이었지만, 두 채식주의자 때문에 우리 집 식단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채식으로 변해 갔다. 그건 고기광인 레오나르트에게는 정말 고역이었다. …나도 마침내 비건식을 시도해 보겠다고 식구들에게 알렸을 때 레오나르트는 점심을 먹으면서 결국 오랫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아 내더니 울먹거리면서 말했다.
“엄마까지 그러면 이제 나한테 고기를 해 줄 사람이 없잖아! 난 할머니 집에 가서 살 거야!” …
“레오, 너도 알겠지만, 결국 중요한 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는 거야. 그래야 마음이 편해져. 중요한 건 너 자신이야. 누구도 너한테 그렇게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어.”
나는 그사이 레오나르트가 저렇게 버티는 것이 ‘강제적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을 싫어해서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따라서 아들을 안심시키고 싶었다.
--- p.78~82
스물 살 때였다. 고등학교 동창 엘케가 미국에 1년 일정으로 가 있었는데, 나는 엘케를 만나러 미국으로 갔다. 도착하고 바로 그다음 날 나는 그 시절 고향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곳을 알게 되었다. 엘케의 안내로 가게 된 ‘쇼핑몰’이었다. 이 거대 쇼핑센터는 내가 그때까지 보았던 모든 것을 뛰어넘는 규모였을 뿐 아니라 지금 생각해도 그 이후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컸다. 이곳은 수많은 상점과 음식점, 화장품 가게, 미용실을 비롯해 놀이공원과 작은 카지노까지 갖춘 도시 속의 도시였다. 엘케는 뭔가 살 게 있어서 그곳으로 갔는데, 미국에 온 지 이미 1년쯤 된 때라 상품들의 홍수에 꽤 적응이 된 듯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물건에 대한 막무가내식 욕구’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자극이 봇물처럼 내 속에서 깨어났다. …나는 시간이 가면서 쇼핑센터나 다른 비슷한 장소에 아이들과 함께 가는 것을 되도록 피했다. 물론 나 자신도 가능하면 그런 곳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군침을 돌게 만드는 다양한 상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구매욕은 강하게 자극받았고, 그로써 애초에 필요 없거나 산 뒤에 꼭 후회하게 되는 물건을 다시 사고 있는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경험은 플라스틱 없이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여러 번 확인할 수 있었다.
--- p.86~88
어느 평일 저녁이었다. 우리는 어둠이 깔린 직후 대형 마트로 출발했다. 나는 좀 흥분되었다. 이런 식의 ‘식품구조 운동’은 합법과 불법 사이를 오갔기 때문이다. 붙잡히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마르틴은 달랐다. 이런 일에 경험이 많은 백전노장답게 차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우리는 배낭을 메고 자전거에다 가방까지 몇 개 실은 채 마트 주차장으로 갔고, 울타리 뒤에 자전거를 세워 놓은 뒤 헤드램프를 쓰고 물류 창고 쪽으로 갔다. 마침내 ‘쓰레기장’ 문을 여는 순간 첫인상은 쓰레기하고는 별 상관없는 장소처럼 보였다. 그저 약간 뒤죽박죽으로 보관해 놓은 식품 창고 같은 느낌이었다. 크기는 우리 부엌보다 작았는데, 온갖 식품과 음료가 담긴 플라스틱 상자와 종이 상자가 수없이 쌓여 있었다. 나는 조금 당황해서 한순간 뻣뻣이 서 있었다. 이게 정말 전부 ‘쓰레기’일까?
“혹시 우리가 식품 창고에 들어온 건 아니죠?”
당혹스러움에서 풀려나자마자 마르틴에게 던진 말이었다.
--- p.124
세계적으로 생산된 식품의 3분의 1이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있었다. 유럽연합에서는 1인당 1년에 평균 173킬로그램의 식품이 쓰레기가 되었다. 독일에서는 매년 1,100만 톤의 식품이, 오스트리아에서는 약 80만 톤이 버려졌다.
--- p.126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상품의 과잉, 어떻게든 소신에 맞는 상품을 찾으려는 진 빠지는 과정, ‘올바른’ 결정을 내리려는 말레네의 진지한 노력과 의구심을 내팽개치고 그냥 마음에 드는 것을 사도록 설득한 나, 재고 떨이로 파는데도 팔리지 않고 남는 무수한 스키복?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든다. 재고 떨이로 팔고 난 뒤에도 남는 스키복은 어떻게 될까? 중국에서 들여온 스키복은 어떻게 40유로밖에 하지 않을까? 얼마 전 나는 대학의 한 강연에서 전 세계적으로 1년에 생산되는 티셔츠가 80억 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스키복은 얼마나 될까? 그중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쓰레기가 되는 것은 또 얼마나 될까?
--- p.139
미국의 환경 운동과 제로 웨이스트 운동은 오래전부터 3R을 신조로 내세웠다. Reduce, Reuse, Recycle, 덜 쓰고 다시 쓰고 재활용하자는 것이다. 나 혼자의 생각은 아니지만, 여기다 한 가지 더 보탤 것이 있다. 어쩌면 이 세 가지에 앞서 실천해야 할 것인데, 바로Refuse(거부)가 그것이다. ‘과잉’을 거부하자는 말이다. 나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 실험 이후 수년 동안 쌓은 새로운 소비 습관에 완전히 길들여졌다. 게다가 자발적으로 결정해서 일부 소비재를 포기하고 거부함으로써 생활비가 오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영역에서 내려갔다. 특히 세제와 위생용품 같은 경우 수년 넘게 특정 품목들을 포기함으로써 꽤 많은 돈을 아낄 수 있었다. 변기 세정제, 키친타월, 화장솜, 유리창과 바닥 전용 세제 같은 물건들은 전체적으로 없어도 되는 것으로 드러났고, 아니면 장시간 다시 쓸 수 있는 물건으로 바꾸었다.
--- p.151
오늘날 기후학자와 과학자들은 말한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최대 10년이라고. 영구동토층이 완전히 녹아내리는 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과 걷잡을 수 없는 기후변화가 인간 문명에 몰고 올 파국적 결과를 막으려면 말이다. 그 시간 안에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설득해서 과거와는 다르게 소비하고, 다르게 여행하고, 덜 소비하고, 최소한 덜 낭비하는 쪽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가능할까? 10년 안에 그럴 수 있을까?
--- p.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