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담긴 생물들이 그려내는 경이로운 풍경은 당시 유럽의 사상과 관념과 관련하여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상상 속 동물을 만들어낸 원천은 대체 무엇일까? 어떻게 이런 모습을 지
니게 되었을까? 당시 유럽인들은 이 상상 속 생물에 무엇을 투사하려 했던 걸까? 여러 괴물 형상은 어떤 사상이나 관념을 반영하는 걸까?
이러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의문을 가슴에 품고, 동시대의 비슷한 책들을 끈질기게 뒤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콘라드 폰 게스너와 울리세 알드로반디 등의 박물학자들은 르네상스 시기에 계시록처럼 여겨졌던 어떤 ‘전조’를 그 원천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고대 중국의 관념과 매우 유사한데, 이상한 생물의 출현이나 괴이한 천문 현상을 하늘이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 혹은 장차 재앙이 닥칠 징조로 여겼다는 점이 그러하다. 다른 점이라면, 당시 유럽은 종교개혁 시기였고 개신교는 이런 현상을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불의함을 공격하는 빌미로 사용했으며 이것이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이 시대 사람들은 ‘괴물’ 출현 소문에 늘 둘러싸여 지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여러 괴이한 일을 담아내고 있다. 과거에 사람들이 미지의 존재를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한껏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빚어진 갖가지 오해를 수집한 셈이 되었다. 더 나아가 이 오해를 심도 있게 파헤쳐 그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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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수(Lamassu)는 아시리아 신화에 나오는 수호신이다. 민가에서 처음 출현했으며 보통 라마수를 새긴 진흙 판을 출입문의 문지방 아래 묻어두었다고 한다. 이후 왕궁에서도 라마수 조각상을 세우면서 왕실 수호자로 발전했다. 일반적으로 한 쌍의 라마수 조각상이 궁궐 입구나 도시의 성문에 서 있으며 그 크기는 하나같이 거대하다.
초기에는 다리가 다섯 개였다. 라마수의 사람 머리는 지혜를 의미하고, 황소나 사자의 몸은 힘을 상징하며, 새의 날개는 민첩함을 나타내는데 뿔이 달린 관은 신성(神性)을 드러낸다고 알려졌다. 라마수의 모습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천체나 황도대 혹은 별자리에서 유래했으며 라마수는 이들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라마수가 언급되는데 여기서는 자연의 정령으로 묘사된다. 그 뒤로 메소포타미아 역사 속에서 지속적인 변화 과정을 겪는다. 그리고 신아시리아 시대에 이르러 이처럼 날개 달린 인간 머리의 황소 형상이 라마수로 불리기 시작한다.
고대 유대인은 아시리아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성경 에스겔서를 보면 인간, 사자, 독수리, 황소가 혼합된 이상한 존재가 등장하는데 ‘네 생물’ 혹은 ‘커룹’이라 부른다. 네 가지 생물은 각각 4대 복음서의 예표로 여겨지며, 사람, 사자, 독수리, 황소에 대하여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의 대응관계는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그중 사자로 상징되는 마가복음과 관련하여 베니스인은 산 마르코(마가)의 유해를 베니스로 옮겨와 도시 곳곳에 날개 달린 산 마르코 사자상을 세운 적이 있다.
--- pp.46~47
켄타우로스와 라피타이족(Lapithai,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부족으로 그리스 북부 테살리아의 펠리온 산 부근에 살았다) 사이의 전쟁은 이후 수많은 고대 그리스 예술작품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켄타우로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야만적인 종족으로 그려지는데 특히 술을 무척 즐겼다.
라피타이족의 왕 페이리토오스는 익시온의 아들이며 켄타우로스와는 친척 관계였다. 페이리토오스는 히포다메이아와 결혼하면서 켄타우로스 무리도 연회에 손님으로 초대한다. 그런데 포도주를 마시고 거나하게 취한 켄타우로스가 결혼식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는 신부까지 빼앗아 달아나려 한다. 그러자 다른 켄타우로스들도 여성들을 하나씩 가로채기 시작한다. 결국 두 종족 간에 싸움이 벌어지고 라피타이족은 테세우스의 도움으로 켄타우로스를 물리친다. 이 이야기는 당시 그 지역의 약탈혼 풍습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고대 로마의 학자이자 작가 플리니우스는 『박물지』에서 켄타우로스 전설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테살리아인이 말의 등에 타서 적과 싸우는 방법을 처음 개발했는데 그들을 켄타우리(Centauri)라 불렀고 펠리온 산에 주로 거주했다. 초기 테살리아인은 말 등 위에서 평생을 보낸다고 할 정도로 자주 말을 탔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이 주변 민족에게 인간과 말이 합쳐진 것 같은 인상을 남겼고 이것이 와전되면서 켄타우로스의 전설이 탄생했다는 설명이다.
--- pp.83~85
몰록은 성경의 레위기, 열왕기, 예레미야서, 이사야서, 신명기에서 모두 언급된다. 여기에 기록된 몰록 숭배의 가장 큰 특징은 제물을 불에 태워 바치는 번제다. 번제는 가나안 사람들이 몰록에게 지내던 일종의 제사 방식이었다.
랍비들의 기록에 따르면 사람들은 몰락의 동상을 황동으로 제작했다. 동상은 소머리에 인간 몸을 하고 있으며 손바닥이 위를 보도록 손을 내밀고 있다. 그들은 몰록 동상을 불로 가열한 뒤 갓난아기를 몰록의 손 위에 올려놓고 제사를 지냈다. 의식에서는 제사장이 계속 북을 치는데, 이는 아기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게 해서 부모가 동요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스와 로마의 문헌에는 페니키아인 역시 어린이를 불태워 크로노스라고 불리는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크로노스가 자기 자식을 모두 잡아먹는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본래 페니키아의 주신은 바알 하몬(Baal Hammon)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클레이타르쿠스는 플라톤에게 그 의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카르타고인들 사이에 크로노스 신상이 우뚝 서 있는데 두 손으로 화로를 받쳐 들고 있다. 화로의 불길이 아이 몸에 닿으면 아이가 불속에서 팔다리를 움츠리면서 입을 벌리는데 그 모습이 마치 웃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아이 몸을 완전히 삼켜버린다.”
고대 로마의 그리스인 작가 플루타르코스 또한 카르타고인의 제사 의식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카르타고인은 이 의식에 절대적으로 동조하면서 자신의 아이를 기꺼이 제물로 바친다. 아이가 없으면 가난한 집에서 아이를 사왔고, 새끼 양이나 어린 새를 죽이듯 그들의 목을 베었다. 이 과정에서 아이 엄마는 절대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되며, 슬픈 표정을 짓는 순간 거래가 취소되면서 돈도 못 받고 아이는 제물로 희생되었다. 의식이 치러지는 신상 앞에는 언제나 북소리와 피리 소리가 가득했다. 주변 사람들이 아이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한 장치였다.”
현대에는 번제 의식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다. 사실상 번제 의식이란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기 위해 갓 태어난 아기를 불 위로 지나가게 하는 정화 의식일 뿐이지 실제로 아이를 제물로 바치지는 않았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1932년 프랑스 고고학자들은 가나안 지역에서 제물로 바쳐진 아이의 유골을 대량으로 발굴했으며, 이 유골은 동물의 잔해들과 한데 뒤섞여 있었다.
--- pp.146~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