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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LES ILES

섬 LES ILES

[ 개정판 ] 그르니에 선집-01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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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0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300g | 152*195*10mm
ISBN13 9788937402852
ISBN10 8937402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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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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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다른 수많은 순간들의 퇴적 속에 깊이 묻혀 있다. 다른 순간들은 그 위로 헤아릴 수 없이 지나갔지만 섬뜩할 만큼 자취도 없다. 결정적 순간이 반드시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 --- p.21

공(空)의 매혹이 뜀박질로 인도하게 되고, 우리가 외발로 딛고 뛰듯 껑충껑충 이것저것에로 뛰어가게 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공포심과 매혹이 한데 섞인다. ― 앞으로 다가서면서도 (동시에 도망쳐)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그칠 사이 없는 움직임의 보상을 받는 날이 찾아오는 것이니, 말없이 어떤 풍경을 고즈넉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욕망은 입을 다물어 버린다. --- p.29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자신에 대하여 말을 한다거나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 보인다거나, 내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지닌 것 중 그 무엇인가 가장 귀중한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나는 늘 해 왔다. 무슨 귀중한 것이 있기에 --- p.178

꿈을 사라져 버리게 하는 것은 꿈의 헛됨에 대한 깨달음이 아니다. 이상하게도 그 같은 비밀의 감정은 마치 끈질기고 머리 아픈 어떤 냄새, 심지어 창문을 활짝 열어젖혀 두어도 가시지 않는 냄새와 같은 것이다. --- p.77-78

노동으로 살아가야 하는 개인들 ― 그러니까 거의 모든 사람들 ― 에 대하여 사회가 요구하는 바는 너무나 잔혹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단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물론 혁명에 대한 희망 이외에) 그것은 병에 걸리는 일뿐이다. (……) 가난한 사람에게 병이란 여행과도 같은 것이며 병원 생활이란 그 나름의 으리으리한 고대광실 생활이다. 만약 부자들이 그걸 알았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 p.87-88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은 불가능한 일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예수회 신자들이 육체적 단련을, 불교 신자들이 아편을, 화가가 알코올을 이용하듯이, 그럴 경우 여행은 하나의 수단이 된다. --- p.92

세비야에서는 궁전, 성당, 과달키비르강 등등을 무시해 버리고 나면 삶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유쾌해진다. 그러나 그 고장의 의미심장한 ‘매혹’을 참으로 느끼려면, 히랄다의 꼭대기에 올라가려다 그곳 수위에게 제지당해 보아야 한다. “저기는 두 사람씩 올라가야 합니다.” 하고 그는 당신에게 말한다. “아니 왜요?” ― “자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지요.” --- p.95-96

바다 위에 떠가는 꽃들아, 가장 예기치 않은 순간에 보이는 꽃들아, 해초(海草)들아, 시체들아, 잠든 갈매기들아, 배의 이물에 갈라지는 그대들아, 아, 내 행운의 섬들아! 아침의 예기치 않은 놀라움들아, 저녁의 희망들아 ― 나는 또 그대들을 이따금씩 다시 보게 되려는가? 오직 그대들만이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그대들 속에서만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 티 없는 거울아, 빛 없는 하늘아, 대상 없는 사랑아. --- p.103-104

섬들을 생각할 때면 왜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일어나는 것일까? 난바다의 시원한 공기며 사방의 수평선으로 자유롭게 터진 바다를 섬 말고 어디서 만날 수 있으며 육체적 황홀을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섬 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섬에 가면 ‘격리된다(isole).’ ―섬( Ile)의 어원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섬, 혹은 ‘혼자뿐인’ 한 인간. 섬들, 혹은 ‘혼자씩일 뿐인’ 인간들. --- p.120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광증(狂症)의 주된 증상은 ‘관심 상실(desinteret)’이다.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개인적, 사회적 미래에 대한 큰 희망과 관심이 발달하는 반면, 환자는 조금씩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무관심해진다. 공부는 따분하게 느껴지고 놀이나 스포츠에도 별 흥미가 없어지며 자연은 빛을 잃은 듯 회색으로 보인다. 큰 사건이 일어나도 마치 옛날이야기 속의 사건인 것처럼 냉담하게 받아들인다.’ --- p.146

인간은 변할 수가 없다고 누가 말하는가? 인간은 지금까지 변화밖에 한 것이 없다. 기독교의 성인은 고대의 현자와 닮은 것도 아니고 현대의 시민과 닮은 것도 아니니 말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어떤 ‘새로운 인간’을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 p.156

여행을 해서 무엇 하겠는가? 산을 넘으면 또 산이요 들을 지나면 또 들이요 사막을 건너면 또 사막이다. 결국 절대로 끝이 없을 테고 나는 끝내 나의 둘시네아를 찾지 못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말했듯이 이 짧은 공간 속에 긴 희망을 가두어 두자. 마조레 호반의 자갈밭과 난간을 따라가며 사는 것은 불가능하니 그저 그것의 영광스러운 대용품들이나 찾을밖에!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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