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거대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할 땐
돈 벌기 힘들다는 것을 머리로만 알았다. 개척하고 ‘일목생활’ 7년 동안 대리운전 · 택배 · 부식배달 등을 거쳐보니 돈 벌기가 참으로 고역이라는 것을 가슴으로 절절히 느끼고 있다. 이것을 안 것만도 하나님의 큰 은혜라 확신한다.
그렇게 첫날밤 신고식을 호되게 치르고 교회로 왔다.
십자가 아래 강단에 무릎을 꿇고, 대리운전 첫날 비록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별 사고 없이 마무리하게 해주신 것에 감사기도를 드렸다.
그 밤, 하나님께서 머리에서 가슴으로 박 목사에게 다가오고 계셨다.
아, 괘씸죄에 걸렸구나!
거대교회에서 괘씸죄에 걸려들면 이래저래 곤욕을 치른다.
인사의 불이익은 물론, 연봉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역에 대한 사형선고와 마찬가지다.
한편 괘씸죄는 박 목사를 기도굴에 오래 앉아 있게 해주었다.
내가 지금 교회에 있는 건가, 기업에 있는 건가?
내가 지금 사역을 하는 건가, 영업을 하는 건가?
식당에만 개업빨이 존재한다고 믿으면 오산이다.
개척교회에도 개척빨이 엄연히 있는 게 현실이다.
슬슬 인원수와 헌금액이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자연히 설교초점이 부흥이나 축복 쪽으로 맞춰지고 있었다.
나의 개척을 아주 적극적으로 말렸던 선배목사님의 말이 생각났다.
“박 목사, 개척하면 바로 절벽이야 절벽!”
맞다. 우리 부부는 절벽 앞에 섰다.
눈물이 났다. 추석날 밤에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아, 나는 무능한 남편, 무능한 아빠, 무능한 목사구나!
후회라는 놈이 내 가슴 한복판을 모질게 후벼팠다.
돈이 궁했다. 사례비 한 푼 없는 개척교회 목사가 대학생 자녀 둘의 학비를 감당한다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그렇게 5년을 버텨왔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처럼, 박 목사를 낮에는 택배로 밤에는 대리로 인도해가셨다.
나의 이전 사역은 관계지향이 아니라 관리중심이었다.
영혼구원을 빙자한 내 야망 채우기였다.
매일 저녁 8시 기도회로 성도들의 ‘저녁이 있는 삶’을 빼앗았다.
실적현황판 비교로 지역장, 구역장들의 마음에 폭력을 가했다.
그들의 ‘일상의 육지’를 무시하고 ‘교회의 섬’으로만 유도했다.
설교가 끝나고 봉헌기도 시간이 되었다.
헌금함을 붙잡고 기도하는데 힘에 부쳤던 내 한 주가 필름처럼 스쳐갔다. 손님들에게 시달렸던 일, 인격적인 모욕, 뺑소니 차…. 여기에 성도님들의 한 주도 오버랩되었다. 저들도 나처럼 돈벌기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렇게 피땀 흘려 번 돈을 지금 하나님께 드리시는구나. 눈물이 울컥 솟구쳤다. 헌금함을 붙들고 그냥 으흐흑 울음이 터져나왔다. 한동안 봉헌기도 때마다 그렇게 눈물이 났다.
그래, 성도들의 이 헌금은 저분들의 땀과 피다.
이런 헌금을 목사가 막 써대면 하나님께 벌 받지. 암, 받고말고!
그때부터 교회헌금을 지출할 때면 꼭 세 번은 망설이는 습관이 생겼다.
그해부터 성 집사 일당이 난리 치고 떠날 때까지 쭈욱
박 목사의 연봉은 120만 원으로 책정되었다.
생활고의 고공행진.
어제는 하루종일 비 맞으며 택배를 배송했다.
택배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아파도 안 된다.
장례 같은 경조사에도 자기 돈으로 사람을 사서 대체해야 한다.
얽히고설킨 상황에서도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걸까?
그분의 존재하심, 그분의 사랑하심이 나를 붙잡고 계심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절대로!
다 합하니 두 딸 기숙사비까지 낼 수 있는 금액이 들어와 있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랑의 손길들이었다.
농협 자동화코너에서 통장을 붙들고 울었다.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었다.
성 집사는 어느새 교회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걸림돌이 되어 있었다.
박 목사가 후회 섞인 한숨을 토해냈다.
후-, 재정을 맡긴 게 실수였구나. 주여!
그날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폐쇄예배의 난동을
지방회 임원들이 목격하고 말았다.
“박 목사, 저런 사람들이랑 5년을 같이 있었다고?
하나님께서 오늘 똥들을 치워주셨네.”
지방회장이 박 목사의 등을 토닥토닥해주었다.
TV에서나 보던 대리기사 폭행사건을 내가 직접 겪은 날이다.
그날 부상으로 병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외적인 상처보다도 마음의 상처가 크게 남았다.
인격적인 모욕감에서 헤어나오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가장의 역할을 성실히 감당하고 계신
대한민국의 대리기사님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길 기도한다.
그날, 이 차 내 꺼였으면, 하는 짧은 3초 욕심에서
교회의 주인을 생각해보았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큰 교회건 작은 교회건 주님이 머리 되신다.
그날 고급차를 운전한 내 뒤에 차주가 앉아 있었던 것처럼
목사는 교회의 주인이 아니라 운전자일 뿐이다.
목사의 교회사유화는
대리기사가 손님차 운전하면서
내 차라고 우기는 것과 똑같은 짓이다.
박 목사의 페이스북에 페친이 퍼올린 기사가 떴다.
“무진장교회 김 목사, 교회돈 30억 횡령, 도박탕진.
징역 4년6개월 확정, 법정구속”
뭐? 교회돈 30억 횡령해서 도박으로 날려?
와, 나는 지금 3만 원 벌자고 비바람 치는 주일 밤에
대리운전하러 나와 있는데. 후, 주여-!
하늘을 쳐다봤다. 깜깜했다.
박 목사 마음에 슬픈 비가 내렸다.
“이 전도사, 나 외로운 사람이야. 나 좀 위로해줘.”
이 전도사가 홱 손을 뿌리치며 “목사님, 왜 이러세요. 남편이 있는 유부녀에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고 소리쳤으나 이미 양 목사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짐승으로 돌변해 있었다. 목양실에서 나가려는 이 전도사를 끌어다 밀쳐 소파로 넘어뜨리고 그 위로 자신의 몸을 덮쳤다. ‘앗차,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속았구나. 하나님, 도와주세요!’
이 전도사가 완강하게 밀어냈지만 이미 욕정의 짐승이 돼버린 양 목사를 떨쳐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이 전도사의 블라우스가 찢기고 치마가 벗겨졌다. 그래도 끝까지 저항하며 손으로 다급히 허공을 휘졌던 이 전도사의 손에 단단한 물체 하나가 잡혔다. 책상 위에 놓인 명패였다.
“성 전도사 아버지랑 배 목사랑 나이가 똑같대요. 딸 같은 여자를 위력으로 건드린 거예요. 어쩌다 한 번이었으면 실수로 봐줄 수도 있다 쳐요. 그런데 상습적으로 그런 짓을 버젓이 기도원에서 해왔다니, 죽일 놈! 그 자식도 목사 아닙니다. 마귀새끼지.”
이 전도사의 말에 박 목사는 할 말을 잃고
바다 위에 둥실 떠 있는 애드벌룬만 올려다보았다.
“세상에, 몇 년 전 왕ㅇㅇ 목사가 부서 여직원이랑 바람피워 임신해서 해외로 도망갔는데, 오늘 버젓이 나타나서 설교하네요. 사모랑은 이혼하고요. 빽없는 목사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지네요….”
장로들이 B국을 떠나고 3개월 후.
낯선 현지인 중년남자가 앳된 아가씨를 데리고 교회를 찾아왔다. 원 선교사에게 자신의 어린 딸이 지금 임신 3개월째라고 하며, 놀랍게도 뱃속 아기의 아빠가 3개월 전에 선교지를 다녀간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원 선교사는 장로들이 환락가를 전전했으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손녀뻘의 어린 십대를 성노리개로 상대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전국을 돌며 하나님을 빙자해 순진한 신자들의 주머니를 털던 그 목사는 결국 돈문제에 얽혀 외국으로 도망갔다. 교민교회에서 비슷한 수법으로 사기를 치다가 중풍으로 쓰러져, 똥오줌도 못 가리고 몇 년을 고생하다 쓸쓸히 죽어갔다. 그는 숨이 넘어가면서 “예수가 어딨어! 예수는 개새끼야!”라고 욕까지 해댔다고 하는데, 그 사기꾼에게 속아 빚내서 건축헌금하고 평생 그 빚 갚느라 고생하는 신자들만 불쌍하다.
교인들이 목사에게 하는 말 중 제일 한심한 말이 뭔 줄 아는가?
“우리가 뭐 아나요. 목사님이 다~ 알아서 하세요” 다.
이 말은 곧 “목사님이 헌금도 다 해잡숫고 교회도 몽땅 가지세요”라는 뜻이다.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베뢰아 성도들처럼
덮어놓고 믿지 말고 성경을 펼쳐놓고 믿자.
“목사 따르는 고생길 걷지 맙시다.
주님 따르는 고난길 함께 걸읍시다.”
청년 지체들에게 그렇게 말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하늘뜻푸른교회는 서로 함께 손을 잡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한 발 한 발 걸어가고 있다.
그루터기에 새순이 오늘도 파릇파릇 자라나고 있다.
결혼기념일을 맞아 중년부부가 펜션을 예약해서 1박2일 여행을 왔다.
바닷가 횟집에서 술 한잔하고 콜을 불렀다.
펜션숙소까지 손님을 모시는데 뒷자리에서 부부가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아내의 목소리가 불만투였다.
아내: 펜션에 퀴퀴한 냄새가 나. 짜증나네.
남편: 그래 봤자 하룻밤이야.
아내: 사진으로 본 것과 숙소가 너무 달라.
남편: 하루만 참아.
아내: 완전 바가지야.
남편: (소리를 버럭 지르며) 거 참, 내일 집에 가잖아!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다인 줄 알고 사는 건 분명 착시현상이다.
진리의 원천인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이곳이 다가 아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빌3:20).
이 땅은 그저 잠시 여행하는 펜션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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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도착지에 섰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감사합니다.”“네, 기사님, 수고하셨습니다.”
펜션에 도착한 아내가 속이 상했는지 남편을 앞서 종종걸음으로 들어가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그래, 내일이면 집에 간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