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하다 보면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우선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결국은 교육이 제대로 돼야 한다고 말씀을 드린다. 교육을 누가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빠질 수 없지 않나. 누가 교육할 것인지는 물론,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학교에 안 나오는 아이들은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등 질문할 것들이 참 많다.
--- p.23, 「추적단불꽃 ‘불’」 중에서
청소년기부터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면서, 페미니즘 교육이 ‘교수자가 일방적으로 학생을 가르치고 계몽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바꾸어 내는, 공간이 공동체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스쿨미투가 고발한 교사와 학생 간의 수직적 위계, 교단의 권위성을 해체하는 게 페미니즘 교육의 목표이지 않을까?
--- p.31, 「양지혜」 중에서
N번방 사건에 대한 반응에서도 꼰대 의식을 본다. 영상 언어와 컴퓨터에 친숙한 세대가 일으킨 특수한 문제라는 시선이다. 이 사건이 특정 세대의 특수한 문제인 것처럼, 막 나타난 새로운 사건처럼 대해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 p.54, 「민지」 중에서
“너희들, 혹시 이 많은 우유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니?” 간식을 받아 든 아이들은 무덤덤하게 혹은 정답을 안다는 듯 대답했다. “소한테서요!” 나는 “그렇지. 그런데 엄마 소의 젖은 송아지를 먹이기 위한 거잖아? 하지만 우리 모두 매일 우유를 마시잖아. 엄마 소가 송아지한테 먹이고 싶었을 텐데, 우리가 마시는 우유가 정말, 정말, 많지 않니?”라고 말하다가 멈춰 섰다. 이 잔혹한 착취에 대해 아이들에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말하고 싶은 것인지 혼란스러운 채였다.
--- p.127, 「양정아」 중에서
회색지대에 있는 많은 아이들은 ‘가해자 되지 않기’가 아니라 ‘가해자처럼 안 보이기’ 학습을 훨씬 많이 하게 된다. 지금의 교육이 그렇다. 무엇이 가해인지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기보다 무작정 가해자가 되면 안 된다는, 가해자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 p.150, 「김병성」 중에서
서로에게 “화장은 예의지”라는 조언을 할 때, “아, 전 상남자라 그런 거 못해요”라고 할 때, 그 말이 어떤 생각을 내포하고 있는지 스스로 성찰하고 짚어 내기 힘들다. 흘러가듯 지나가는 말들을 붙잡아 “그게 무슨 의미일까?”, “왜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묻기로 했다. “그냥”, “다들 이렇게 말하니까”를 넘어서지 않는 답변들을 들으면서, 웃자고 한 말에 진짜로 죽자고 달려드는 한 사람쯤 만나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 생각했다.
--- p.202, 「유진」 중에서
학생으로서 각자 교대에 올 준비만 해 온 이들, 자기 경험 한 번 돌아볼 시간이 없었던 이들이 어떻게 단번에 학생의 권리에 대해 알 수 있겠나. 교대에 입학하고 나서도 학생 권리에 대해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하고, 곧바로 학생을 통제하거나 질서를 정돈하는 사람의 위치에 서게 된다.
--- p.237, 「장재영」 중에서
페미니즘 지식을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의사소통하고 그런 관계와 공론장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해 준다. 그래서 교사들의 자기 성찰이 중요하다. 페미니즘에서 자신의 위치성, 경험,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무척 중요한 주제이지 않나.
--- p.240, 「하영」 중에서
남녀공학 대학에서는 페미니스트 학생들이 굉장한 ‘가르침 노동’을 한다. 심지어 교수를 대상으로도 그랬다. 뭔가가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면 그게 왜 잘못됐냐는 반문을 마주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당사자가 그게 왜 잘못됐는지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이다.
--- p.292, 「김상애」 중에서
“엄마가 뽀뽀해도 될까? 네 몸의 주인은 너야. 모든 사람에 몸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어. 그걸 경계라고 해. 엄마가 뽀뽀하려면 너의 경계를 넘어가야 하니까 너한테 물어보는 거야. 엄마가 뽀뽀하는 게 싫으면 싫다고 말해 줘.”
--- p.367, 「이성경」 중에서
나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생각과 삶을 일치시키는 실천을 하고 계신 분들을 만나면 ‘나도 해 볼 수 있겠다. 이 사람처럼 조금 더 실천해 볼 수 있겠다. 저렇게 살아 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 p.397, 「류소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