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머니즘이란 거기 나오는 것처럼 ‘옛날 사람들이 믿었던 원시적인 종교’라는 뜻이야. ‘원시종교’란 동식물이나 바위 같은 자연 물체뿐만 아니라 물, 바람, 번개, 달, 해, 별까지도 다 신으로 모시는 걸 말해. 작은 나무 하나, 돌 하나도 신이 될 수 있었단다. 아주 오래 전에는 성경이나 불경 같은 경전도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종교가 아니라 원시인 같은 종교라는 뜻으로 그렇게 불러. 물론 난 그 말에 찬성하지 않아. 경전이 없다고 해서 원시적이라고, 혹은 세력이 약하다고 해서 함부로 ‘미신’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생각해. 그건 각자 판단할 일이지만 나는 종교란 그 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 p.18
삼신이란 별거 아니야. 쌀이 든 작은 독이나 바가지 같은 그릇을 삼신이라고 하여 집안에다 두고 소원을 빌었어. 그 안에는 주로 쌀이 들어 있어. 쌀이 없으면 보리, 밀, 옥수수, 콩을 넣어 두고 그것도 없으면 한지나 실 같은 것을 넣기도 했어. 지푸라기로 만든 씨오쟁이를 삼신이라고 생각하고 걸어 두기도 했지. 그래서 삼신은 모시는 사람에 따라서 다 다를 수밖에 없었어. 이모, 근데 살짝 헷갈리네. 삼신이라는 것은 쌀이나 실 같은 것을 넣어 둔 그릇을 말하는 것 같은데, 역할을 보면 결국 삼신할미와 같은 존재 아니야? 그렇지. 삼신할미는 삼신을 인격화해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 아기를 갖게 해 주고 아기가 잘 성장하도록 돕는 신이기 때문에 자상한 할머니처럼 생각한 것이야. 그러니까 사람들은 삼신 앞에서 기도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자상한 할머니 얼굴을 떠올린 것이지.
--- p.46
옛날 사람들은 죽은 자의 영혼이 별이 된다고 생각했어.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혼인 ‘혼불’이 빠져나가는데, 그 혼불이라는 것이 작은 별처럼 생긴 빛들이 뭉쳐진 모양이거든. 그래서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하나하나 영혼으로 본 거야. 보통 별은 계절이나 시간에 따라 사라지기도 하거든. 근데 늘 자리를 지키는 별이 있으니 이를 보고 수명을 관리하는 신이라고 믿을 수밖에. 이 때문에 칠성신을 모셔 놓고 소원을 빌면 어른들은 오래 살고 아이들은 큰 병이 없이 잘 크며 집안이 평화로워진다고 생각한 거야. 효자라고 소문이 난 사람들은 집 근처에 칠성당을 지어 놓고 날마다 부모님의 장수를 기도했지. 집 근처에 있는 칠성당은 효자의 상징이었어. 민속박물관에 가면 칠성당 사진을 볼 수가 있는데, 보통 우물처럼 동그랗게 돌을 쌓아서 만들었어. 그것도 지역에 따라 다르단다. 그냥 헛간처럼 거적만 덮어 놓은 곳도 있고, 암자처럼 근사하게 지어 놓은 곳도 있지.
--- p.75
천연두에 걸린 사람은 열이 나면서 막 헛소리를 한단다. 그걸 본 사람들은 천연두라는 신이 사람 몸에 들어와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전염병을 하나의 신으로 생각한 것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온갖 신을 이겨 낼 수 없다고 생각한 거야. 앞에 있는 그림 [무신도 호구아씨]를 보면 여자들이 있지? 그중 가운데 서 있는 여자가 마마신이야. 말도 안 돼요! 전염병을 여왕처럼 모시다니……. 어떻게 전염병을 여왕으로 모실 수가 있을까? 옷차림도 엄청 화려하네요.
하하하, 일부러 그렇게 그린 거야. 최대한 곱고 예쁘게. 그래야 마마신이 좋아할 거 아니야? 생각해 보렴. 너희가 마마신이라면 자기 얼굴을 악마처럼 그리거나 못생기고 밉게 그리면 좋겠니? 그거랑 똑같은 이치란다. 입고 있는 옷을 보면 대단히 신분이 높은 사람으로 그려졌지. 평민은 저런 옷을 입을 수가 없다는 거 알지? 마마신은 왕비나 쓰고 다닐 법한 화려한 모자를 쓰고 있는데 실제로 왕비만큼이나 예우했단다. 그래서 천연두를 마마라고 부르는 거야. 상감마마, 대비마마, 중전마마 하고 부르듯이 ‘천연두마마’ 하고 부른 것이지. 그러다가 천연두라는 말은 빼고 그냥 마마라고 한 거야.
--- p.126
이순신은 왜군과 몇 차례 전쟁에서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모략을 당해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는 마지막 전투에서 장렬하게 죽잖아? 죽어 가면서도 자신을 모함한 이들을 탓하지 않고 나라와 백성들만 생각했어. 그런 이순신의 마음이 모두를 감동시켰고 죽은 뒤에도 위대한 신으로 탄생하게 됐지. 신이 되려면 여러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하지만 결국 뭔가 한(恨)이 있어야 하는 거야. 앞서 말한 최영은 자신이 모시고 있는 왕이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이성계 쪽으로 붙지 않아. 이성계에게 충성하면 엄청난 부와 명예가 따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타협하지 않지. 또한 이성계를 거부하면 당연히 죽음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간 거야. 그런 충성과 절개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그래서 사람들이 신으로 부활시킨 것이지.
--- p.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