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학 연구자들에게 『바파유』가 끼친 심원한 영향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필독서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책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문적 훈련을 받지 않은 이에게는 넘기 어려운 산이기도 합니다. 샌더스가 이 책에서 자신의 논지를 여러 번 반복하기 때문에 그가 말하려는 바를 대략 파악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그가 상당한 분량의 일차 자료를 인용하며 논증을 전개하기 때문에 세부적인 논의를 대할 때 독자는 쉽게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번역본 출간은 무척 감사하고 반가운 일이었는데, 아쉽게도 많은 독자가 이 책을 완독하지 못하거나 읽더라도 중요한 지점을 놓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전문가도 어렵다고 한 책이니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온갖 어려움을 극복한 끝에 나온 이 책이 제대로 읽히지 않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 「간추린이의 말」 중에서
이 40주년 기념판의 하이라이트는 내 논지를 꿰뚫어보면서 명쾌하게 설명해준 마크 챈시〔Mark Chancey〕의 서문〔foreword〕이다. 챈시 교수는 내 저작이 나온 정황과 학계의 내 저작 수용 역사를 제시했을 뿐 아니라, “바울을 바라보는 새 관점〔the new perspective on Paul〕”이라 불리는 견해들과 복잡하게 뒤엉켜 한 덩어리가 되어버렸던 내 저작을 그 덩어리에서 풀어주었다. 그가 쓴 서문은, 바울 연구가 계속되는 한, 아주 큰 도움을 베풀어 줄 중요한 학문 업적이다.
--- 「40주년 기념판 머리말」 중에서
샌더스는 이전에 그가 학자로 살아오면서 “가장 중요한 교훈”이라 여기는 것을 이렇게 밝혔다: “여러분이 원전을 연구하면 여러분 자신이 배우는 것을 실제로 알게 된다”〔You really know what you learn for yourself by studying original sources〕. 물론 그가 언급한 것은 고대 텍스트를 꼼꼼히 분석하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취지는 학자들의 고전 연구에도 역시 타당하다. 수많은 책과 논문이 샌더스의 여러 기여를 요약하고, 그가 제시한 논리의 흐름을 바꾸거나 더 발전시키며, 그의 주해 방향에 맞서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고, 바울과 유대교에 관한 다른 해석을 지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가 지금도 중대한 의미를 갖고 학자들의 연구와 계속하여 관련성을 가지는 작품으로 남아있는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려 한다면, 원전을 읽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이 40주년 기념판이 바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시의적절하게 제공한다.
--- 「40주년 기념판 서문」 중에서
유대교 자료를 연구하면 할수록, 내가 본디 신약 학도가 아닌 것처럼 서술하려 애쓰는 것이 잘못이요 부질없다는 것이 더욱더 분명해졌다. 유대교를 다룬 책을 쓴 신약 학자들은 때때로 자신들이 관심도 없고 실제 가지지도 않은 “종교사”의 관점과 교육 배경을 가진 것처럼 행세했는데, 나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반면, 나는 유대교를 바울에서 볼 수 있는 모티프와 아주 유사한 혹은 그의 “배경”과 직접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개개 모티프들 쯤으로 좁혀 보려는〔제약해버리는〕 반대쪽 함정도 피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유대교 자체의 관점에서 이해한 유대교와 바울 자신의 관점에서 이해한 바울을 비교해보려했다. 나는 이런 노력이 바울 및 바울과 유대교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유대교 자체를 이해하는 데도 기여한다는 것이 증명되리라고 기대한다. 설령 내가 탈무드 신봉자에게 랍비 종교〔유대교〕에 관하여 무언가를 가르쳐 주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최소한 랍비 종교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논증과 랍비 종교와 유대교의 다른 형태들을 비교할 때 쓴 방법만큼은 유용하다는 게 드러나리라고 기대한다.
--- 「1977년 저자 머리말」 중에서
종교 패턴은 조직 신학과 동일하지 않으며, 사변에 의존하는 수많은 신학 질문들과 무관하다. 그렇지만 종교 패턴은 분명 사상과 관련이 있으며, 종교 행위의 외면뿐 아니라, 종교 행위 뒤편에 자리한 이해와 분명 관련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종교의 신자들이 그 종교의 제의가 그들의 신앙생활에서 어떤 기능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되었는지를,그 종교의 제의 행위에서 끌어낼 수 있겠다. 그 제의를 지켜 거행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 제의의 의미에 관한 신자들의 이해도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꼭 신자들이 그 제의가 조직 신학에서 어떤 논리적 위치를 갖고 있는지 자세히 진술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설령 이런 자세한 진술이 없더라도 신자들은 어느 한 전체 패턴이 서로 연관된 여러 요소로 이루어져 있음을 볼 수 있듯이, 그런 제의도 종교 속의 다른 요소들과 일관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나는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미국 텍사스주 그랜드프레리〔Grand Prairie〕에서 자랐다. 그랜드프레리는 댈러스와 포트워스에 가깝지만, 경제 형편이 하류층에 속했던 우리와 같은 집들은 거의 다 우리가 살던 작은 도시에 살았으며, 근처 도시들로 여행을 가본 적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커다란 문화 세계의 영향 밖에 있기도 했지만, 동시에 고등교육세계에서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대학 다니실 때 사용하던 교과서 덕분에 영문학과 세계사 책을 폭넓게 읽었다. 그러긴 했어도, 나는 학자로서 평생을 살아가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으며, (당연한 말이지만) 학자로서 살아간다면 뭐가 필요할 것인가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여러 언어를 터득하려는 분투가 내 삶을 지배하는 요소가 되었다. 나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외국인은 구경도 못했고, 심지어 외국어를 쓰는 이도 만난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열여섯 살에 들어갔다) 배울 수 있었던 외국어는 두 해 동안 배운 에스파냐어가 전부였다(물론 내가 사는 동네에는 그때까지 에스파냐어를 쓰는 이가 정착한 적이 없었다).
--- 「유대교와 기독교를 비교함」 중에서
나는 아래에서 학자들이 “언약적 율법주의”와 관련하여 제기한 몇 가지 비판을 다뤄보겠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언약적 율법주의를 내가 대체하고자 한 신학 구조인 율법주의와 대조해보겠다. 나는 페르디난트 베버〔1836-1879〕의 저작(1897)까지만7 거슬러 올라가 율법주의 비판을 살펴봤지만, 내가 학자 생활을 시작할 때에 신약학계는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런 율법주의 비판을 널리 해왔으며, 그런 비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 「다시 살펴본 언약적 율법주의」 중에서